우리는 국가적 현상을 어떻게 이해해왔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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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국가적 현상을 어떻게 이해해왔는가?
  • 이명아 기자
  • 승인 2023.01.29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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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에 관한 질문들: 정치철학의 역사 | 기욤 시베르탱-블랑 지음 | 이찬선 옮김 | 오월의봄 | 364쪽

 

‘정치철학은 무엇을 대상으로 하며 어떤 것을 탐구하는가’ ‘정치철학의 한계와 경계는 무엇인가’. 이 질문들에 답하고자 할 때 피할 수 없는 주제가 바로 ‘국가’다. 저자는 여러 층위의 복잡성을 띠는 국가를 구체적이고 실증적이면서도 역사적이고 비판적인 방식으로 탐색해보자고 제안한다.

이 책은 19~20세기, 즉 프랑스혁명에서 시작해 러시아혁명을 거쳐 사회주의 체제의 몰락에 이르는 200년간의 정치철학의 역사를 다룬다. 이 시기 동안 정치철학은 국가라는 역사적 현실과의 관계 속에서 고유하고 독특한 담론으로 구성되어왔다. 문제는 1789년 프랑스혁명 이래 국가라는 현상이 수많은 양상으로 등장하며 변화해왔고, 정치철학 또한 그에 결부되어 대단히 다양한 갈래로 변화해왔다는 점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근대 정치철학은 “불안정한 이론적 종합”에 머무를 수밖에 없는 한계를 갖는다. 따라서 이 책은 국가라는 현상이 역사적으로 변화해온 과정과 원인들을 분석하며 어떤 형태의 국가가 어떤 형태의 법과 권력, 그리고 지식과 실천과 결부되어왔는지 살펴본다.

프랑스혁명 이후 혁명정신을 계승하고자 하는 이들과 혁명에 반대하는 이들이 다양한 전선을 이뤄 이념적 쟁투를 벌이기 시작했다. 결국 그로부터 200여 년간 철학자들과 정치가들은 각각의 정치 요소들이 맺는 관계가 만드는 구조를 자기 이론의 대상으로 삼아 그 구조에 대한 논쟁을 이어왔다. 이 같은 철학적 논쟁은 혁명 이후의 공화정, 파리 코뮌, 러시아혁명, 사회주의체제 몰락을 거치며 굵직한 담론과 이론을 양산했다. 이 책은 그 200년간 국가를 위시하여 축적되어온 역사적이고 사회적인 현상들을 놓고 철학자들이 어떻게 대응했는지를 비판적이고 체계적으로 집대성해낸, 역사와 철학 그리고 정치 담론의 연대기다.

정치철학은 국가 경계 너머의 존재에 대응하는 외교적이고 군사적인 지식으로서, 그리고 국가 내부의 개개인을 결속하는 도덕적이고 법적인 지식으로서 역할을 한다. 이 책의 1부는 민족과 국가에 관한 학설들 속에서 정치사상과 역사적 지식이 어떻게 긴밀히 연관되는지를 살펴보면서, 국가에 대한 가장 첫 번째 현실적인 논쟁들, 즉 프랑스혁명 이래 계몽주의와 합리주의의 논쟁, 자연권 이론과 사회계약 이론 간의 협의와 종합의 과정을 소개한다. 이를 통해 우리는 각 시대마다 수립된 정치체들이 얼마나 불확실한지를, 정치적 경험의 축적이 국가에 대한 현실적 학문을 얻기 위해서는 얼마나 오랜 시간이 필요한지를 알 수 있다. 

이 책 2부에서는 정치경제학과 사회학이 정치철학과 접합되는 방식을 설명하며, 정치철학에 고유한 생명력을 불어넣는 철학 내부의 변화와 그러한 변화 속에서 정치철학이라는 담론의 장이 어떻게 경제적 자유주의, 사회주의, 신자유주의, 복지국가, 관료주의 국가 같은 수많은 국가 형태의 정치적·이론적 각축장이 되는지를 입체적으로 살펴본다. 여기서 주요한 준거점은 바로 ‘카를 마르크스’다. 마르크스 경제학과 사회학은 자본주의의 태동기에 발생한 산업혁명 등의 대전환을 이해하는 틀을 제공한다. 경제학과 사회학은 국가가 자기 통치를 합리화하는 양상들을 어떻게 쇄신해가며 그 목적과 수단, 고유한 논리를 어떻게 정립해가는지를 이해하는 데 필수적이다. 정치철학은 정치적 제도와 국가 통치술을 한 단계 높이는 데 경제학과 사회학을 적극 활용한다. 

이 책의 3부는 20세기 초반 전 세계의 정치를 위협한 치명적인 혼동의 정치 ‘전체주의’를 카를 슈미트의 시선을 바탕으로 검토하는 데서 출발한다. 여기서는 국가가 ‘총체적 국가’라는 목표하에서 결국에는 전체주의 지배의 단순한 수단으로 어떻게 전락하는지를 철학적으로 점검한다.

슈미트는 법과 정치를 연관지으면서, 법을 실질적으로 만드는 것이 정치이고 법의 실질적인 성격이 정치 영역에 속하며 이로써 법이 그 자체로 정치가 됨을 역설했다. 이런 식의 연계는 각종 사회 현상들이 지녀온 공통의 경험들과 정치적 의미의 상실을 초래하며, 시민사회의 운동들은 국가의 권위에 종속된다. 이와 같은 변화는 국가가 그 자체의 역량과는 상관없이 전쟁을 이끄는 데에 밑거름이 된다. 국가는 전쟁 기계를 완전히 전유하며 그 총체화 기획의 정점에서 전쟁은 시민들의 공적이고 사적인 삶 전반을 장악해버린다.

저자는 정치철학의 고유한 대상으로서의 국가가 양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심대한 양가성을 띠게 되었으며, 그리하여 정치철학이 위기에 봉착했다고 진단한다. 결국 ‘국가’의 문제는 혁명인 것과 혁명 아닌 것, 공상적인 이론과 과학적인 이론, 사회를 개혁하는 원동력과 이를 막는 장애물을 다루는 모든 담론의 핵심 주제다. 국가는 계몽주의, 합리주의, 보수주의, 자유주의, 관료주의, 사회주의 등 모든 사상의 핵심에 놓여 있다. 

우리는 국가라는 대상의 우연성과 정치철학이라는 담론 자체의 우연성을 성찰해야 한다. 저자의 이러한 성찰에는 20세기를 특징짓는 양 극단의 국가, 곧 한편으로는 전체주의적인 국가와 다른 한편으로는 혁명적인 국가의 생성의 원인과 그 실패의 이유를 성찰의 중심으로 삼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다른 한편으로 이러한 관점은 보통 세계화라고 부르는 조건 속에서 우리가 알고 있는 국가 및 그에 대한 담론으로서의 정치철학이 근본적인 우연성, 즉 소멸 가능성에 직면해 있음을 사유하겠다는 뜻 역시 담고 있다. 자신의 불가능성의 조건을 성찰하는 정치철학만이 국가와의 상호정당화라는 악순환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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