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곤하지만 결정적인 반철학의 군주, 니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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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곤하지만 결정적인 반철학의 군주, 니체
  • 이현건 기자
  • 승인 2023.01.29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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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랭 바디우 세미나: 프리드리히 니체 | 알랭 바디우 저 | 박성훈 역 | 문예출판사 | 464쪽

 

이 책은 알랭 바디우가 1992~1993년에 진행한 세미나를 엮은 책이다. 바디우는 니체를 비트겐슈타인, 라캉, 성 바울로 이어지는 위대한 반철학자 계보의 첫 번째에 놓고 그의 텍스트를 독해한다. 서구 사유의 역사를 철학과 반철학의 전투사로 보는 바디우는 니체를 ‘빈곤하지만 결정적인 반철학의 군주’라 명명한 후 니체의 여러 텍스트를 살피며 니체 반철학을 정초해나간다.

니체는 ‘유럽이 플라톤이라는 질병으로부터 치유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더불어 철학자를 ‘범죄자 중의 범죄자’로 일컫기도 했다. 무엇보다 ‘진리, 선, 미, 정의’ 등 철학의 보통명사에 진정으로 분노했다. 때문에 니체는 철학을 구성하는 모든 가치를 전복하여 완전히 끝장내버리기를 작정한 듯 자신만의 사유를 전개했다. 

니체의 사유는 철학에 대한 ‘망치질’이라고 할 수 있다. 그가 철학의 논증 체계를 망가뜨리고 기존 철학 논증과는 다른 방식으로 사유를 벼려냈기 때문이다. 대화로서의 철학이라는 플라톤주의적 형상을 거부하기, 변증법이 아닌 방식으로 사유하기 등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철학자’인 바디우는 ‘반철학자’인 니체와 대화하기를 포기하지 않는다. 바디우는 니체를 형이상학과 비극의 틀로 해석한 하이데거와 들뢰즈의 주장을 검토한 후 본격적으로 자신만의 니체론을 펼친다. 먼저 니체와 혁명에 관한 바디우의 해석을 살펴보자. 바디우는 니체가 철학을 혁명의 경지로 가져가고자 노력한 사상가라고 평한다. 여기서 혁명의 의미는 기존 용례를 초과한다. 니체는 자신의 사유가 프랑스 혁명처럼 ‘새로운 달력’을, 즉 새로운 시대의 절대적 열림을 초래하기를 고대했다. 여기서 더 나아가 프랑스 혁명보다 자신이 해낸 사유의 혁신이 더 위대하다고도 확신했다. 니체가 보기에 프랑스 혁명은 처음의 공언과 달리 ‘세계의 역사를 둘로 쪼개기’에서 크게 실패했다. 구 세계의 상징인 기독교적인 것과 완전히 단절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반면 니체의 사유, 즉 혁명적 급진성을 품은 사유는 ‘절대적인 단절’, 즉 ‘인류 역사를 둘로 쪼개는 균열’을 생산해내며 완전한 새로움을 도래하게 한다는 점에서 급진성을 잃지 않는다는 것이 바디우의 해석이다.

바디우는 니체의 사유가 프랑스 혁명과 모방적 경쟁 관계에 있다는 점을 근거로 니체에게서 ‘원元정치적’ 차원을 읽어낸다. 니체의 원정치적 사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세계를 긍정하는 일이다. 세계를 긍정함으로써 모든 잠재적 주권에 내재하는 긍정적 역량을 해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긍정하면 ‘있을 수도 있는 세계’를 긍정할 가능성도 열린다.

철학이 대변하는 근대적 합리성을 거부하는 니체는 그리스 비극으로 나아간다. 바디우는 니체의 그 유명한 개념 ‘영원회귀’를 그리스 비극, 즉 위대한 예술로의 복귀와 연결한다. 니체에게 그리스 비극이 복귀해야 할 위대한 예술인 이유는 그리스 비극이 철학에 종속된 예술의 가능성을 다시 꽃피워 사유와 정념에 속박된 꿈, 환상, 도취를 되돌려주기 때문이다. 즉 철학의 그림자를 걷어내고 삶에 부과된 우연을 있는 그대로 긍정하기 위한 깨달음의 장치인 신화를 인류에게 돌려주기 위한 예술이라는 데 그리스 비극의 의의가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니체와 바그너의 일화(그리고 비참하게 마무리되는 니체의 생애)를 독해하는 바디우는 위대한 예술과 원정치적 행위를 연결하여 니체 반철학의 위상을 제고한다. 바디우는 니체의 예술론이 예술과 철학의 관계에 대한 20세기의 중대한 물음을 촉발했다고 평가한다.

니체 반철학의 흐름과 의의를 면밀히 살핀 바디우는 ‘철학자’로서 니체를 어떻게 이해할지를 고민한다. 그리고 철학이 반철학의 유산 위에서 혹은 그 잔해 위에서 나아갈 길을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것이 바로 ‘현대 철학은 반철학을 가로질러야 한다’는 바디우의 말이 의미하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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