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캉 정신분석은 최후의 반철학이자 가장 정교한 반철학이다
상태바
라캉 정신분석은 최후의 반철학이자 가장 정교한 반철학이다
  • 이현건 기자
  • 승인 2023.01.29 11:2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알랭 바디우 세미나: 자크 라캉 | 알랭 바디우 지음 | 박영진 옮김 | 문예출판사 | 360쪽

 

이 책은 알랭 바디우가 1994~1995년에 진행한 세미나를 엮은 책이다. 바디우는 라캉의 여러 텍스트를 ‘반철학’이라는 키워드로 독해한다. 반철학은 철학의 제일 목표인 ‘진리’를 해임하고자 하는 담론을 말한다. 따라서 반철학의 관건은 철학자라고 하는 지독하게 아픈 인간을 낫게 하는 것이다. 서구 사유의 역사가 철학과 반철학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보는 바디우는 라캉의 텍스트를 정교하게 독해한 후 라캉을 ‘최후의 반철학자이자 가장 정교한 반철학자’라고 규정한다. 나아가 라캉 반철학의 비판으로부터 철학을 옹호하며 라캉 반철학 담론이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를 지적한다.

라캉은 철학의 진리를 ‘실재(트라우마, 성, 죽음, 오르가즘, 악몽, 육체적 증상 등)’로 대체하고자 했다는 점에서 명백한 반철학자다. 바디우는 헤라클레이토스와 파르메니데스, 사도 바울과 그리스 철학자, 파스칼과 데카르트, 루소와 백과전서파, 키르케고르와 헤겔, 니체와 플라톤, 비트겐슈타인과 러셀 등 철학과 반철학의 역사를 경유하여 라캉 반철학을 역사화한다. 나아가 다른 반철학과 구분되는 라캉 반철학만의 특징을 제시한 후, 라캉 정신분석과 반철학이 맺고 있는 관계를 면밀히 검토하여 왜 라캉 정신분석이 최후의 반철학이자 가장 정교한 반철학인지를 논한다.

철학자들이 반철학의 문제의식을 다루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칸트, 하이데거 등의 작업에도 반철학의 주제가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반철학의 문제의식을 ‘철학’이라는 틀 내부에서 다루고자 했다. 무엇보다 그들에게는 ‘일관되게 철학을 하나의 병리성으로 지칭하는 급진적인 추월의 명제’가 부재하다는 것, 때문에 그들은 반철학자가 아니라는 것이 바디우의 해석이다.

바디우는 라캉 반철학의 주요 특징을 분석한다. 그는 라캉 반철학이 ‘철학은 수학에 막혀 있으며, 정치의 구멍을 메우고, 사랑을 담론의 중심에 배치한다’는 세 가지 핵심 공식을 갖고 있다고 명료화한 뒤, 이들 공식에 관한 해석을 차근히 전개해나간다. 나아가 진리를 탐구하는 철학 작업을 실재에 대한 지식 축적으로 대체하고자 하는 라캉 반철학의 시도를 면밀히 분석한다. 바디우는 철학에 대한 라캉의 비판이 날카롭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반복적으로 라캉의 공격으로부터 철학을 지켜내고자 하는데, 이 과정에서 바디우만의 독창적 라캉 해석이 빛을 발한다.

나아가 바디우는 라캉 반철학이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물음에 제대로 답변하지 못한다는 결정적 약점을 지녔다고 비판한다. 이 물음에 답하지 못하기 때문에 라캉 반철학이 철학으로 복귀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바디우의 진단이다. 바디우가 보기에 라캉은 정신분석의 실천과 치료에 대한 구체적 해명을 제공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는 필연적이다. 애초에 분석 행위가 일어나는 장소를 이론적으로 분석할 수 있다면, 그것은 반철학이 아닌 철학이기 때문이다. 바디우는 세미나 참석자들의 강한 반발에도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는다. 바로 여기에 라캉 반철학 담론으로부터 철학을 옹호할 결정적 근거가 내재하기 때문이다.

요컨대 바디우는 끝내 라캉 반철학으로부터 철학을 옹호해내고, 라캉의 급진성을 철학 내부로 끌어온다. ‘저는 철학에 대항합니다’라는 라캉의 선언을 철학의 역사로 편입하는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