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과 행복한 삶의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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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과 행복한 삶의 딜레마
  • 이명아 기자
  • 승인 2023.01.22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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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약한 선: 그리스 비극과 철학에서의 운과 윤리 | 마사 너스바움 지음 | 이병익·강명신·이주은 옮김 | 서커스 | 852쪽

 

이 책은 인간의 좋은 삶은 외부(및 내부) 세계의 우발적인 상황에 어느 정도 취약한가, 하는 윤리의 핵심 문제를 정면으로 탐구한다. 인간의 삶에서 운이 행복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에 비해 그에 대한 논의는 칸트 윤리학 이래 놀라울 정도로 빈약했는데 누스바움은 그런 흐름에 정면으로 반발하며 운과 행복이라는 윤리적인 딜레마를 희랍 비극,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를 종합하면서 이 책에서 논의하고 있다. 

누스바움은 윤리적 사고에 대한 희랍 비극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아가멤논, 안티고네, 헤카베의 이야기를 주의 깊게 읽음으로써 그녀는 비극적인 세계의 비전이 철학적 의미가 풍부한 일관성 있는 것임을 조심스럽게 보여준다. 누스바움은 플라톤의 대화편들이 희랍 비극과 공유하는 형식적인 면을 새로이 조명하면서도 플라톤이 희랍 비극이 다룬 인간 운명의 운에 대한 취약함을 제대로 평가하지 못했다고 비판한다. 윤리적인 척도를 변덕스러운 인간으로부터 떼어놓고 외부에 절대적인 기준을 상정했던 플라톤은 희랍 비극이 윤리를 위한 텍스트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플라톤의 대화편들은 논증적 지성의 변증적 활동을 통한 초월이 필요의 작용을 통한 윤리적 기준의 탐구로서 주목할 만한 텍스트다.

특히 후기 대화편인 〈파이드로스〉에서 플라톤은 자신의 초기 저작들에서의 주장을 반성하며 훨씬 더 복합적인 면모를 보여준다. 궁극적인 현상학자라 할 수 있는 아리스토텔레스는 희랍 비극에 대해서도 뛰어난 통찰을 보여준다. 그는 플라톤이 혼란스럽게 만든다고 철학에서 내치려 했던 현상들에 대한 면밀한 관찰자이자 보호자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평범한 것으로 돌아가는 길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그것을 흥미와 즐거움의 대상으로 만들 수 있는 전문적인 인간’이다. 누스바움에게 아리스토텔레스는 단순히 존경할 만한 독창적인 논리학자가 아니라 인간이 노출될 수밖에 없는 삶의 혼돈 속에서 질서를 찾아내려 한 스승이다.

저자 누스바움은 ‘우리의 노력과는 대체로 상관없이 돌아가는 세계 속에 우리가 살고 있다’는 전제에 대한 검토가 철학에서 충분치 않았으며 그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촉구하고 있다. 단순히 모호한 개념화를 받아들이고는 그것을 반복하지 말고 진지하게 고전적인 텍스트들을 읽으며 그것의 복잡성을 인식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누스바움은 우리에게, 거의 역설적으로, 우리가 이성적인 통제를 벗어난 세계에 대한 비극적인 취약성에서 인간의 아름다움과 선함의 진정한 원천을 어떻게 찾아야 하는지를 물을 것을 강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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