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대의 영웅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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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의 영웅을 찾아서
  • 이영준·이황 고려대 ICR센터
  • 승인 2023.01.22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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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말하다_ 『우리 시대의 영웅을 찾아서』 (이영준·이황 지음, 테오리아, 332쪽, 2022.12)

 

우리 인간은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영웅과 영웅이 전하는 모험과도 같은 삶의 이야기에 매료되어왔다. 그것은 그들의 영웅적 행동이 사회 전체로 보면 유익할 뿐만 아니라 그 자체로도 찬사를 받을만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우리 사회 곳곳에는 ‘살아있으면서도 죽어있는’ 무수한 영웅들이 있다. 

자유를 위해 싸우는 사회활동가나 불복종시민, 흔히 법률에 따라 반역자나 이단아로 낙인찍힌 자도 영웅일 수 있는지에 대한 학문적 논의나 사회적 합의는 빈약하고, 감염의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조용하게 환자를 돌보는 간호사, 뻔히 붕괴할지 알면서도 화마가 집어삼킨 건물 안으로 뛰어드는 소방관, 곧 폭발할 것 같은 불타오르는 자동차에서 운전자를 구조하는 시민, 호수에 빠진 어린아이를 구하기 위해 거친 물속으로 뛰어드는 고등학생은 학문적, 사회적 논의는 고사하고 언론의 짧은 보도라도 있으면 그것에 그저 만족해야 한다.

영웅은 전통적으로 전쟁이라는 배경 속에서 무(武)와 용기를 기초로 장군이나 왕과 같이 초인적 또는 초자연적 능력의 소유자로 인식됐으나 현대사회에서는 현실적으로 존재하기 어렵다. 그것은 인류의 문명과 역사가 인간 개개인의 생명과 가치를 존중하여 발전해왔고, 이는 기본권 보장을 비롯한 헌법적 결단에 충실히 반영되어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불가피한 선택이었을지언정 누군가를 죽여 우리를 살리는 사람이 영웅이라면 그 사람을 인류 문화의 정수이자 인간 정신의 상징으로 여기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따라서 개인을 일방적으로 희생하여 국가나 조직의 목표를 달성하고자 하는 가치관은 과거의 유물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현대사회는 범죄, 약자를 괴롭히는 행위, 테러, 방관자적 무관심, 비인간적 행동, 부정부패, 불공정 등과 같은 반사회적 행위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가가 더 중요해지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사회 일반에서는 국가와 민족을 위해 희생한 인물 외에도 타인을 구하기 위하여 위험 속으로 뛰어드는 평범한 시민도 영웅일 수 있다는 인식이 폭넓게 확장하고 있다.

 

                어린이를 구조하는 마모두 가사마(Mamoudou Gassama) 출처: The New York Times<br>
                어린이를 구조하는 마모두 가사마(Mamoudou Gassama) 출처: The New York Times

서구에서는 2000년대 중반 영웅과 영웅적 행동이 학문적으로 탐구할 가치가 있는 주제라는 생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2006년 프랑코와 짐바르도(Franco & Zimbardo)의 논문 「영웅적 행동의 일상성」(The Banality of Herosim)과 그 이듬해 출간한 짐바르도의 저서 『루시퍼 효과』(The Lucifer Effect)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들의 연구는 영웅 연구의 촉매가 되었는데, 이는 현대라는 상황에 유용한 몇 가지 개념을 제시한 데 있다. 그 하나는 ‘영웅적 행동의 일상성’이라는 문구가 말하듯 소수의 엘리트만이 아니라 일상 속의 모든 사람이 영웅적 행동을 수행할 수 있다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영웅적 행동은 그것을 지켜보는 다른 사람에게 심리적으로 영향을 미쳐 그 사람 또한 영웅적 행동을 하도록 자극한다는 것이고, 마지막으로 영웅적 행동은 교육이나 학습을 통해 배양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런 점들이 동기가 되어 많은 학자가 영웅연구에 동참하면서 영웅의 모범성과 바람직함을 밑바탕으로 영웅적 행동을 인간 삶의 정점으로 인식하고 영웅적인 세상을 만들며 영웅적 행동을 윤리의 한 축으로 구성하자는 ‘영웅학’(heroism science)이라는 새로운 학문이 탄생했다. 이후 20여 년도 채 안 된 현재, 영웅은 심리학, 철학, 디지털인문학, 예술학, 법학, 공공정책학, 기호학, 리더십학, 조직관리론, 종교학, 윤리학, 정치학, 사회학, 교육학 등의 인문사회 분야를 뛰어넘어 의학, 간호학, 진화생물학, 뇌과학 등의 분야까지 연계되어 연구되고 있다.

이 책은 영웅적 행동이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이며 비범하지 않은 평범한 개인도 영웅일 수 있다는 영웅학의 ‘영웅적 행동의 일상성’ 개념을 토대로 우리 시대의 영웅을 조명하고 영웅적 행동을 확산시키는 데 목적이 있다. 

이를 위해 <첫 번째 여정>과 <두 번째 여정>은 동서양에서 영웅이라는 용어가 어떻게 사용되기 시작했고 세월의 흐름 속에서 의미가 어떻게 변하였는지 살펴본 후 우리 시대의 영웅을 찾기 위한 방향타로서 현대라는 콘텍스트 속에서 영웅을 정의하고 유형을 다양화하였다.

<세 번째 여정>은 영웅이 개인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학자들의 다양한 연구결과를 통해 살펴봄으로써 영웅의 존재 의의를 피력하였고, <네 번째 여정>은 정치권력과 대중문화가 한편에서는 자신들의 이념과 가치에 봉사하도록, 다른 한편에서는 사적 이익을 위해 영웅을 무분별하게 이용, 악용, 오용함으로써 영웅의 가치가 퇴색되고 있는 현상을 비판적으로 제시하였다.

<다섯 번째 여정>은 영웅을 희생을 두려워하지 않고 우리 사회와 구성원들을 보호하는 사람이라고 칭송만 할 것이 아니라 공동체에 더 큰 이익을 가져오는 선순환효과를 불러일으키도록 영웅을 보호하는 우리나라를 비롯한 해외의 법적 장치와 한계 및 개선 방향을 살펴보았다.

<여섯 번째 여정>은 교육과 훈련을 통해 평범한 사람이라도 영웅적 행동을 할 수 있음을 다양한 연구결과로 제시하였고 영웅을 길러내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된 서양의 비영리교육기관들의 실태와 교육과정을 소개하였다.

<일곱 번째 여정>은 ‘자아’ 대 ‘타자’ 또는 ‘나[우리]’ 대 ‘적’ 간의 대결 구도로부터 탄생한 영웅을 고전영웅으로 분류하고 그리스 신화의 헤라클레스에서부터 20세기 베트남의 보 구엔 지압에 이르는 13인을 나라별, 시대별로 행적을 제시하였다.

마지막 <여덟 번째 여정>은 무력, 전쟁, 싸움 등이 아니라 타인이나 사회의 보호에 초점을 맞추어 나치로부터 어린이 2,500명을 구조한 이레나 센들러 등 국내외 17가지 사례를 통해 현대의 평범한 사람들의 영웅적 행동을 조명하였다.

앤드류 카네기(Andrew Carnegie)는 동료 인간을 불구로 만들거나 살상하는 ‘야만의 영웅’이 아니라 생명을 살리는 ‘문명의 영웅’이 존경받는 시대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야만’이라는 말이 거슬리기는 해도 카네기가 이렇게 말한 배경은 오랫동안 ‘죽임’이 영웅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닌 데 있다. 사실, 냉철하게 생각해보면, 우리나라만 하더라도 영웅으로 추앙받아온 인물 대다수가 전쟁이나 싸움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지 않은가. 이 때문에 조선말 사상가 강증산은 영웅의 행동이 재민혁세(災民革世), 즉 백성에게 재앙을 안기면서 세상을 혁신하는 것이라며 그 이면을 들여다볼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이제 영웅을 바라보는 시선이 바뀔 때가 되었다. ‘살림’을 실천한 평범한 시민의 영웅적 행동이 더욱 조명 받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이 책을 통해 위험을 무릅쓰고 위기에 처한 이들에게 선뜻 손 내미는 우리 시대의 평범한 영웅들이 조금이나마 우리 사회 곳곳으로 스며들어 가기를 바란다.

 

이영준 고려대학교 ICR센터 연구위원 한국의 1호 영웅학(heroism science) 연구자

이황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및 ICR센터 소장세계 경쟁법⋅경제학 분야 영향력 있는 학자 25인 선정(Global Competition Review, 202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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