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 재난에서 피어난 이야기들 ― 그 무한한 대화의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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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 재난에서 피어난 이야기들 ― 그 무한한 대화의 가능성
  • 한순미 조선대 인문학연구원·국문학
  • 승인 2023.01.22 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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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쿠스]

 

“못된 모범은 전염병과 갓흔 것이라”

1920년 무렵, 경성에서는 “회”, “대회”라는 이름을 붙인 각종 “단체”들이 셀 수 없이 생겨났던 모양이다. 신문의 「휴지통」 에 실린 조각 기사에서 깊은 고뇌 한 자락이 피어오른다. 

▲ 근일에 경성에는 큰 시톄의 한가지로 「회」가 극히 만히 생기는 모양이다. 모슨 「회」이니 무슨 「대회」이니 하는 것이 엇더케 만히 생기는지 손가락열개쯤 가지고는 도뎌히 세울 수 업다. (…) 못된 모범은 전염병과 갓흔 것이라 내용이 부실한 것을 불계하고 난산으로 생겨난 「회」가 작고 쓰러지기 시작하는 때에는 건강한 다른 회도 그 병에 전염될 것이 두렵지 아니한가.(「휴지통」, 『동아일보』 1920. 5. 10.)

기사문에는 별 내용도 없는 모임들이 많이 생겨나는 것도 문제이지만 그런 현상이 건강한 모임들까지 병들게 할 수 있다는 우려를 표명했다. “못된 모범”을 가까이 하면 어느새 그것에 “전염”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물론 “사람이 혼자 이 세상에서 살지 못하는 이상에” 참가할 수 있는 모임이 많아져야 하고, 식민지 조선에서 다양한 대회들이 늘어난 것은 한편 “총독정치의 조금 개량된 점이라고” 긍정적으로 여기는 입장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건강한 다른 회도 그 병에 전염될 것이 두렵지 아니한가.”라고 탄식하면서, 앞으로 전개될 사태에 대한 관심을 호소했다. 

경성의 소란한 풍경을 소묘한 한 편의 기사는 팬데믹 재난과 함께 살고 있는 우리 시대에도 낯설지 않은 느낌을 준다. “부실한” “대회”들은 곧 “전염병과 같은 것”이며 건강한 모임들을 병들게 할 수 있는 잠재적인 전염균처럼 보였던 듯하다. 여기에서 흥미로운 곳은 부실한 대회들이 건강한 모임들에도 나쁜 영향을 줄 수 있으리라는 가능성을 “전염병”의 비유를 동원해 표현한 부분이다. 

그런데 바꾸어 생각해 보면, 각종 대회들에 대한 우려와 탄식은 신지식을 배우고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등 다양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대회들이 전염병과 같은 보이지 않는 파급력을 지녔다는 것을 감지했던 결과일 수 있다. 

백 년 전, 경성의 거리를 잠깐 떠올려 보았다. 각종 대회들이 앞다투어 만들어지고 어떤 모임들은 소리 없이 생겨나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가운데, 무궁무진한 이야기들이 펼쳐지던 길목이 희미하게 그려졌다. 


바이러스에 전염된 말들

최근 여러 곳에서 일어난 사건, 사고, 재난 현장을 보도하는 뉴스와 방송을 들으면서 나는, 비참한 재난 장면을 떠올리면서 건조한 글자들을 자판 위에 타이핑한다. 연속되는 재난들 앞에서 감정과 생각을 전달하는 문장은 논리적인 구조를 갖추어야 한다. 이것은 분명 팬데믹 이후에 직면한 글쓰기의 경험에 속한다. 

코로나 바이러스와 함께 태어나, 그것과 더불어 살아가고 있는 말들은 무수한 말들을 집어삼킬 듯한 표정으로 지상에 내려앉는다. 거처를 상실한 말들, 잘못된 곳에 가닿는 말들, 본래 말하려고 했던 것과 무관하게 제멋대로 떠돌아다니는 말들. 새삼스럽게 소쉬르가 말한 ‘언어의 자의적 성격’에 관한 부분을 꺼내 다시 읽어 본다. 

▲ 달리 말하면 언어는 형태이지 실체가 아니다. 이 사실은 아무리 명심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들이 쓰는 학술 용어의 모든 오류와 언어 현상을 지칭할 때 우리가 보이는 모든 그릇된 방식은 언어 현상 속에 어떤 실체가 있으리라는 무의식적 가정에서 기인하기 때문이다.(페르디낭 드 소쉬르, 최승언 옮김, 『일반언어학 강의』, 민음사, 1990, 145쪽.)

알다시피, 소쉬르에 따르면 언어는 실체가 아니라 형태이다. 언어 안에 무엇인가가 들어 있는 것이 아니라 언어는 관계이다. 학술 용어조차도 어떤 실체가 있다고 가정하는 것은 “오류”에 지나지 않는다. 게다가 소리를 듣고 글자로 정확히 표현하기 어려운 이유는 소리를 듣는 사람이 들리는 대로 듣고 옮겨 적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소리는 소리 그 자체가 아니라 듣는 사람과 들리는 소리 사이의 ‘믿음’과 관련된 문제일 수 있다. 

팬데믹의 유행 가운데에서, 어떤 소리들을 듣고 믿고 신뢰할 수 있을 것인가. 바이러스에 전염된 말들을 치유하려면 그 말들을 어디로 보내야 할 것인가. 신뢰할 수 없는 말들을 추방해 감금할 수 있는 장소는 어디인가.


모루히네(모히) 중독과 나병 환자, 그리고 소록도

1920~30년대 신문을 검색하면 “모루히네(모히)” 중독과 아편밀매단에 관한 기사가 상당한 분량을 차지한다. 모루히네 중독 문제가 매우 심각한 상황이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당시 신문에서는 광고 <모루히네 해독약의 세계적 발견! 명약 안티모힌(アンチモヒン)>를 수록하고 <모루히네 방독강연회>를 개최한다는 소식을 전했다. 

모루히네 중독자를 퇴치하기 위해 중독자를 등록하게 하거나 치료소를 설치하였지만, 중독자 수는 쉽게 감소하지 않았다. 그래서 모루히네 중독자를 소록도(小鹿島) 나환자 수용소에 격리하자는 의견이 제출되기도 하였다. 당시 일부 여론에서는 나병(한센병) 환자들을 치료하기 위한 소록도 수용소는 모루히네 중독자들을 포함해 사회 질서를 어지럽히고 일반인의 건강을 위협하는 사람들을 추방하기 위한 장소로 소환된 것이다.

언어는 시대를 함께 겪고 앓는다. 감염병 바이러스는 몸의 건강을 위협하는 것만이 아니라, 생각과 마음까지도 바꿀 수 있다는 점에서 두려움과 공포를 가져다준다. 바이러스의 진정한 본질은 신체의 건강을 해치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생각과 마음을 점차 파괴하고 변화시키는 잠재적인 힘에 있다는 듯이. 

비대면 학술 모임과 대회가 진행되는 영상을 바라보면서, 문득 이런 생각에 잠겼다. 이제 팬데믹 재난 시대의 소통 언어는 바이러스의 상상력과 감수성을 바탕으로 한 감각의 확장을 요구하는 것은 아닐까.


이동하는 말, 흐르는 감각

팬데믹 이후, 온라인 학술대회가 점차 늘어났다. 온라인 학술대회 갤러리는 사각형에 들어 있는 얼굴, 까만 바탕 위에 하얀색으로 표시된 이름, 참가자가 설정한 사진 이미지, 그리고 발표 자료와 대화가 이어지는 채팅창으로 구성된다. 대면 학술대회와 사뭇 다른 풍경이다. 

무엇보다 온라인 학술대회에서 나의 시선이 머무는 곳은 흘러다니는 정보를 해석하는 방식과 감각의 변화이다. 대면 학회에서는 발표문의 내용을 이해하는 것에 관심을 기울였다면 온라인 학회에서는 정보가 공유되는 흐름과 속도, 방향을 해독하는 데에 감각을 사용한다. 

바이러스는 각자 다른 공간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몸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 준다. 영상 위로 흘러가는 말들의 흐름을 포착하기 위해 망막이 움직이는 속도는 더욱 빨라진다. 갤러리에서 흘러나온 말들이 어디에서 어느 곳으로 이동하는지, 그리고 그 말들은 다른 말들과 어떤 지점에서 교차하는지를 살피는 공간 감각이 필요하다.


말들이 접속/교차하는 장소에서 전개되는 무한한 대화

감염병의 재난으로 인해 대면 모임의 횟수는 줄어들었지만 정처 없는 말들의 물결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무엇인가를 함께 이야기하려는 사람들은 온라인/오프라인 공간에 접속하려고 시도한다.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가 접속/교차하는 장소들은 향후 재난 역사 기록 아카이브에 주요한 자료로 추가될 것이며 재난인문학 연구 대상으로 재발굴될 것이다. 

오래전 신문 기사에서 읽었듯이 식민지 조선 경성에 대회들이 난무하는 현상을 두려워하면서 경계하던 목소리와 다르게, 나는 팬데믹의 유행 아래에서도 지속되고 있는 대면 혹은 비대면 학술 행사에서 이야기들이 더 왕성하게 번식하길 바란다. 

어떤 모임이나 학술대회가 비록 “못된 모범”에 지나지 않는다 할지라도, 서로 다른 생각과 마음을 전염하는 시공간으로서의 가치는 더욱 빛난다. 이것은 언젠가 코로나 바이러스 재앙이 뜻하지 않게 가져다준 선물 중의 하나로 기억될 수 있을까.

이야기가 탄생하고 소멸하는 과정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팬데믹의 통증을 앓고 태어난 말들은 실체가 없는 바이러스와 같이 도처에 이야기들을 짓고 파괴하면서 어딘가로 정처 없이 흘러다닐 것이다. 

팬데믹 재난에서 피어난 이야기들은 오직 “형태”로만 감각할 수 있는 또 다른 공동체의 형상이 아닐까. 말들의 이동 경로를 감각하면서, 서로 다른 방향에서 흘러온 말들이 접속/교차하는 장소에서 무한한 대화의 가능성이 열리길 기대해 본다. 


한순미 조선대 인문학연구원·국문학

조선대학교 인문학연구원 부교수. 한국근현대문학 및 문화, 한센병 역사문화 기록 연구를 비롯해 재난인문학, 트라우마의 재현과 치유, 소수자 타자의 서사에 관심을 두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다초점 렌즈로서 재난인문학』(2022), 『격리―낙인―추방의 문화사: 한센병 계몽 잡지 《새빛(The Vision)》과 한국문학』(2022), 「치유 의례로서의 접속: 트라우마의 감각적 재현」(2023)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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