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을 살려야
상태바
학문을 살려야
  • 조동일 논설고문/서울대학교 명예교수·국문학
  • 승인 2023.01.22 13:0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조동일 칼럼]

학문이 죽으면 아무것도 되지 않는다. 위기를 직시하고, 학문을 살려내야 한다. 이를 위해 분투하는 것이 최우선의 과제이다. 

태어나는 아이들이 줄어들어 나라가 망하게 된다고 한다. 이 위기를 크게 근심하고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고 한다. 이것은 누구나 하는 말이다. 해결책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 문제이고, 심각한 견해차가 있다. 

태어나는 아이들이 늘어나게 하는 것이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여기고 모든 노력을 쏟다가는 허탈하게 된다. 발상의 전환이 있어야 한다. 인구가 줄어드는 만큼 개개인의 창조적 능력이 늘어나면 위기라고 할 것이 없다. 잘하면 전화위복일 수 있다.

창조적 능력을 늘리려면 교육을 잘해야 한다. 교육이 창조는 막고 경쟁이나 부추기는 잘못을 바로잡아야 한다. 누구나 충분한 능력을 가지고 서로 협동하면서, 함께 잘사는 방법을 찾고 행복을 나누도록 해야 한다. 이런 원론을 길게 펴고 있을 겨를이 없다. 타오르는 불을 당장 꺼야 한다.

진학 인원 감소로 대학이 망하게 된 것이 타오르는 불이다. 대학이 망하면 그 속에 들어 있는 학문이 잿더미가 된다. 불이 더 번지지 않게 하거나, 학문을 꺼내서 손상되지 않게 해야 한다. 불이 더 번지지 않게 하는 것은 아주 어렵다. 학문이 손상되지 않게 하는 것은 더 쉽다. 그 방법을 말하고자 한다. 

이 기회에 대학과 학문의 관계를 명확하게 할 필요가 있다. “대학은 학문의 전당”이라고 막연하게 말한 것은 잘못이다. 대학과 학문은 같지 않다. 대학은 경쟁을 물리치고 입학해 학위를 딴 사람들이 학벌을 자랑하며 특권을 누리도록 하는 차등 생산의 기구라고 할 수 있다. 학문은 같은 비난을 받아야 할 이유가 없다.

학문은 누구나 먹고살고, 삶을 윤택하게 하고, 알 것을 알고, 좋은 생각을 하고, 가치를 창조할 수 있게 하는 대등의 혜택을 베푼다. 학문이 대학에 들어 있어 차등에 봉사하고 대등의 혜택을 제대로 펴지 못한 잘못을, 이제 대학이 망하는 것을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고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 사태를 분명하게 파악하고 새 출발을 해야 한다.

두 가지 대책을 생각할 수 있다. 하나는 소극적인 대책이고, 또 하나는 적극적인 대책이다. 소극적인 대책은 연구교수 제도를 확립하는 것이다. 강의교수가 줄어드는 것만큼 연구교수를 늘여, 대학이 진정으로 학문의 전당일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적극적인 대책은 지금까지의 대학보다 큰 대학을 만들어 학문을 더 잘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이에 관한 논의를 구체화한다.

경쟁을 물리치고 입학하고 등급을 다투는 폐쇄된 형태의 대학은 없어져도 된다. 미련을 가지지 말고, 더 좋은 대책을 강구하자. 누구나 자격을 묻지 않고, 경쟁이 없이 마음대로 입학할 수 있게 최대한 개방된 거대대학을 지상이 아닌 온라인에다 만들자. 이 대학을 거대대학이라고 일컫자. 

학문에 힘써 얻은 성과가 있는 학자는 누구나 학문자영업자로 나서서, 거대대학에서 스스로 강의해 혜택을 널리 나누어줄 수 있게 하자. 학문후속세대가 일자리가 없어 절망하고 학문을 포기하는 탓에, 나라가 눈이 멀어 망하지 않게 해야 한다. 거대대학에서 스스로 강의를 개설하는 학자에게 그 수준에 따라 생활비와 연구비를 지급하고 연구시설을 제공하는 일을 공공의 예산으로 해야 한다. 필요하면 대면강의를 하는 장소도 마련해야 한다. 학ㆍ석ㆍ박사 과정을 두고 학위를 받을 수 있게 한다. 

이 거대대학은 기존의 어떤 대학과도 경쟁관계에 있지 않은, 더 넓은 광장이어야 한다. 기존의 대학보다 수준이 높고, 신뢰를 더 받고, 기여하는 바가 커야 한다. 이렇게 되도록, 누구나 자기가 당사자라고 여기고 힘써야 한다. 공공의 예산으로 설립하고 운영하지만, 국립이라고 하지 않고 도로와 같이 온 사회의 공유물이라고 해야 한다. 

이런 거대대학을 만드는 구체적인 방법은 아직 확실하지 않고, 광범위한 토론을 거쳐 마련해야 한다. 작은 본보기를 먼저 만들고 차츰 확대하는 것이 우선 생각할 수 있는 방법이다. 외연을 넓히는 작업을 여러 방면으로 추진할 수 있다. 이에 관해 몇 가지를 시험 삼아 말한다. 
방송통신대학을 최대한 확대한다고 할 수도 있다. 기존의 모든 사이버대학의 연합체를 이룬다고 해도 된다. 유튜브에서 최상위의 방송을 가져와 더 잘할 수 있게 한다고 해도 된다. 각양각색의 교양강좌가 모두 참여할 수 있게 할 필요가 있다. 이 가운데 우선 가능하고 더 유익한 것부터 단계적으로 추진하는 것이 슬기롭다. 

방법은 미정이어도, 목표는 분명하다. 목표가 다음 셋이라도 하는 것은 반론의 여지가 없이 합의할 수 있다. 이 사업이 정부 어느 부처의 소관이 되기 전에, 총론을 잘 다져 변질되지 않게 해야 한다. 무슨 위원회로 넘어가면 볼품없이 쭈그러들 수 있다. 학문 공동체가 있어서 중차대한 임무를 맡아야 한다고 제안하려고 이 글을 쓴다. 열띤 호응이 있기를 기대한다. 

누구나 수준 높은 평생교육을 무료로 받을 수 있는 문화복지 국가를 만들어 새로운 선진국이게 하자. 생산기술의 발달로 감당하기 어려운 여가가 늘어나야 하는 세계 공통의 고민을 슬기롭게 해결하는 모범 답안을 내놓자. 모두 힘을 합쳐, 인류를 더욱 행복하게 하는 학문을 적극 이룩하자.


조동일 논설고문/서울대학교 명예교수·국문학

서울대학교 불어불문학과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으며 같은 대학 대학원 국어국문학과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계명대학교, 영남대학교, 한국학대학원 교수를 거쳐 서울대학교 교수를 지냈다. 서울대 명예교수이자 학술원 회원으로 계명대학교 석좌교수를 역임했으며 현재 중국 연변대학 명예교수이기도 하다. 주요 저서로 <서사민요연구>, <한국문학통사>(전6권), <우리 학문의 길>, <인문학문의 사명>, <소설의 사회사 비교론>(전3권), <대등한 화합: 동아시아문명의 심층> 등 다수가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