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살면서 칼 슈미트를 생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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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살면서 칼 슈미트를 생각하다
  • 신명아 경희대학교·영미어문학
  • 승인 2023.01.22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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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법의 적용이 일관적이지 않을 때 그리고 소위 정적들이 거듭 법의 칼 아래 스러져 갈 때, 우리는 법과 주권자에 대한 칼 슈미트(Carl Schumitt)의 개념을 생각하게 된다. 슈미트의 예외상황이라는 개념은 주권자가 비상상황 같은 경우에 기존의 법을 정지시키고 주권자가 질서의 유지를 위해 새로운 법을 결단(decision)할 수 있게 한다.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은 이런 슈미트의 법과 질서 개념을 ‘신화적 폭력’으로 규정하고, 신이 레위기 지파들의 폭력을 휩쓸어 버렸듯이 ‘신적 폭력’이야말로 ‘진정한 예외상황’을 통해 인간의 폭력을 정지시킨다고 보았다. 슈미트와 벤야민의 상반된 시각은 소위 히틀러가 우수한 인종으로 규정하는 아리안족의 슈미트와 유대인으로서의 벤야민의 차이를 부각시킨다. 

슈미트는 1918년도 1차 대전이 종식되는 가운데 바이마르 공화국의 의회로부터 발생하는 정치적 불안감과 당대의 정치적 소요에서 오는 위협을 목격하면서 『의회적 민주주의의 위기』에서 의회주의를 비판한다. 그는 영국의 존 로크, 존 스튜어트 밀 등의 계몽주의자들이 상정하는 인간의 평등성과 계몽 가능성에 입각한 자유주의적 이상을 거부하고, 토론과 개방성을 표방하는 의회주의가 현대의 독일적 상황에 적절하지 않다고 보았다. 슈미트는 의회의 정당들은 자기가 대변하는 집단의 이익을 대변하는 데 그치므로 토론과 개방성에 입각한 의회주의보다 주권자의 예외상황에 입각한 결단을 강조하게 된다. 

실제로 슈미트는 그 당시 국가의 질서를 위해 대통령에게 공산주의자들과 파시스트를 제거할 수 있는 권리를 바이마르 헌법 48조항을 통해 해석하여 실행하게 하였다. 역설적이게도 1933년도에 이 대통령이 히틀러를 총통으로 임명할 때에는 예외상황을 통한 주권자의 권리가 실현되는 것으로 믿고 히틀러의 통치 아래서 주요 요직을 수락하여 나치의 협력자로 전락한다. 그러나 1936년에 이르러 나치 법학자들이 히틀러의 일인 통치보다 국가의 결정이라는 개념을 더 중시하는 그의 이론을 비난하고 배척할 때, 괴링의 변호 덕분에 위험을 피하고 강의와 글쓰는 일에만 전념한다. 

슈미트는 존 로크와 스튜어트 밀처럼 인간의 평등성과 자유보다 홉스처럼 인간은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라는 시각을 지지한다. 그는 홉스가 군주 혹은 주권자를 리바이어던이라는 바다 괴물로 설정한 것이 상징적으로 구원자로서의 예수의 역할을 정치적 차원에서 대변하지 못한다고 보지만, 홉스의 리바이던적 주권자의 시각에 동의한다. 홉스의 이 바다괴수라는 주권자는 만인이 서로 투쟁하여 파괴만 가능할 때 그에게 복종하면 모두가 보호받게 하는 일종의 ‘신’과 같은 존재이다. 슈미트에게 이 리바이어던은 “진보(progress)라는 엄청난 희망의 꿈의 세계를 열어주는 옆문이라는 우회적 개방”이 아니라 삶의 직접적 차원, 즉 “신체적 존재의 가능한 연장과 안전”을 보장한다. 

슈미트의 주권자는 정치적 신학(political theology)의 산물로서, 구원자인 예수가 이 세상에 온 것처럼 정치와 신학이 분리되지 않았다. 슈미트의 주권자는 “종말을 저지시키는 자”(카테콘: katechon)의 숭고한 차원을 가지며 슈미트는 홉스와 헤겔을 카테콘이라고 본다. 슈미트가 초창기에는 유대인 친구에게 자신의 책을 헌정하기도 하고 유대인을 혐오하지 않다가 이런 그의 이론이 점점 확고해지면서 반유대주의적 시각을 견지하는 것은 예수를 인정하지 않는 유대인들이 신(종교)와 정치를 분리시키고 종교에 고착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슈미트는 유대계 철학자 멘델스존(Mendelssohn)의 책, 『예루살렘, 혹은 종교적 힘과 유대교』라는 책을 언급하면서 종교와 정치를 분리하지 않는 ‘독일적 지혜’와 “유대교의 분리 전략”이 충돌한다고 말한다. 

슈미트의 정치적 신학의 개념이 파시즘의 동력이 되었다는 견해에 맞서서 그를 옹호하는 사람들 중 트레이시 B. 스트롱은 “히틀러가 그에게는 신이 기적을 행하라고 보내준 존재 같이 보였다고 말할 수 있다”고 언급한다. 스트롱에 의하면, 슈미트가 1936년 이후 나치주의자들에 의해 배척되면서 그가 좋아하는 멜빌의 『베니토 세레노』(Benito Cereno)라는 작품을 지인들에게 자주 보냈던 것은 흑인 노예 수장인 바보(Babo)에 의해 노예주인과 백인들이 다 죽임을 당하고 유일하게 남겨진 선장 베니토가 그에게 복종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그의 운명과 같았기 때문이다. 

슈미트는 자기 스스로가 1938년에 쓴 홉스의 리바이어든에 대한 책이 나치즘에 대한 저항이었다고 밝힌다, 이런 그의 진술이 그대로 인정되지 못하는 것은 정치가 사람을 대변한다고 하는 그의 진술에서 사람도 계몽주의자적 시각에서의 보편적 인간이 아니라 특정 문화 속에서 같은 사회를 살아가는 동일성의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슈미트의 이런 우리와 그들, 친구와 적의 한계적 논리는 그의 정치신학적 시각을 뿌리째 흔들리게 한다. 슈미트의 예외상황과 주권자의 개념은 오늘 법의 테두리 안에서조차 우리와 적으로 갈라치기 하는 정치적 활동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시각을 모색해야 할 필요성을 일깨워준다.  


신명아 경희대학교·영미어문학

경희대학교 글로벌커뮤니케이션학부 영미어문전공 명예교수. 경희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플로리다대학교에서 영문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영미문학연구회 공동대표, 한국라캉과현대정신분석학회(현 현대정신분석학회) 회장, 한국비평이론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저서로 『현대철학의 종교적 회귀: 벤야민, 데리다, 레비나스, 아감벤, 지젝, 들뢰즈, 가타리』, Reconsidering Social Identification: Race, Gender, Calss and Caste (ed. Abdul R. JanMohamed, 2011)와 공저로 출판된 『페미니즘, 어제와 오늘』, 『라깡의 재탄생』, 『젠더를 말한다』, 『20세기 미국소설의 이해』, 『라깡, 사유의 모험』, 『우리 시대의 욕망읽기』가 있으며, 역서로 『윌리엄 포크너: 현실과 피안을 넘나드는 예술가』, 『독자로 돌아가기: 신비평에서 포스트모던 비평까지』와 『라깡 정신분석 사전』(공역)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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