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을 찾아 헤매던 0번 원자의 정체, 테트라 중성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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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을 찾아 헤매던 0번 원자의 정체, 테트라 중성자
  • IBS
  • 승인 2023.01.21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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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BS 스페셜 리포트]
                                                    Tetraneutron. Credit: Andrey Shirokov

‘수헬리베붕탄질산….’
 
학창시절 누구나 한 번쯤 외웠을 법한 문장입니다. 보기만 해도 어지러운 주기율표의 앞쪽 원소들을 누구나 외울 수 있게 해주는 마법의 주문이죠. 그런데 어쩌면 이 주문, 앞으로는 바뀔 수도 있습니다. 최근 국내외의 핵물리학자들이 모여 양성자가 없는, 0번 원자를 관측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죠.
 
1969년 러시아의 화학자 드미트리 멘델레예프는 여러 원소가 원자량(원자의 무게)에 따라 주기적으로 비슷한 특성과 성질을 갖는다는 것을 알아채고 주기율표를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멘델레예프는 몇 가지 문제에 봉착합니다. 우선 원자량에 따라 주기율표를 만들다 보니 일부 원소가 경향성에서 벗어났습니다. 또 당시 발견된 원소를 주기율표에 넣다보니 중간중간 비어있는 칸이 생긴 것입니다. 마치 직소 퍼즐을 맞추다 보니 잃어버린 조각 때문에 완성할 수 없었던 것처럼 말이죠. 멘델레예프는 그렇게 비어있는 원소의 자리를 빈칸으로 남겨둔 채 최초의 주기율표를 완성했습니다.

 

                                                               출처: Pixabay

후대의 과학자들은 멘델레예프의 주기율표를 더욱 발전시켜 나갔습니다. 대표적인 인물 중 하나는 영국의 물리학자였던 헨리 모즐리입니다. 그는 멘델레예프의 주기율표에서 경향성을 벗어난 원소들을 해결할 방법을 제안했습니다. 원자량 대신 원자의 핵을 구성하는 양성자의 개수를 기준으로 정한 것이죠. 현대적인 주기율표의 모습에 더욱 가까워진 것입니다.
 
원자의 핵은 양성자와 중성자로 구성됩니다. 중성자는 양성자와 질량이 거의 같고, 입자에 미치는 핵력의 크기는 같습니다. 차이도 있습니다. 양성자는 전기적으로 양전하를 띠고 있습니다. 반면 중성자는 전기적으로 중성이죠. 이 때문에 원자의 핵은 양전하를 가집니다. 그리고 핵 주변에는 음전하를 띠는 전자가 양성자와 같은 숫자로 있으면서 원자는 전기적으로 중성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출처: Pixabay

주기율표의 빈칸은 새로운 원소가 잇따라 발견되면서 서서히 채워졌습니다. 자연에 존재하지 않는 일부 원소는 인공적인 방법으로 만들어냈습니다. 새로운 원자를 만드는 방법은 이론적으로는 간단합니다. 여기에는 가속기라는 장치가 필요합니다. 양성자나 이온을 아주 빠르게 가속해 표적 원자에 충돌시키는 장치입니다. 이때 충격으로 표적의 핵에서 양성자가 떨어지거나 붙어 새로운 원자가 만들어지는 원리입니다.
 
과학자들은 이 방법으로 최초의 인공원자이자 43번 원자인 테크네튬(Tc)을 발견했고, 주기율표의 마지막인 118번 원자 오가네손(Og)까지 모든 빈칸이 채울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현재는 더 높은 번호의 원자를 만들기 위한 노력이 한창이죠. 아직 발견되지 않은 119번은 우누넨늄(Uue), 120번은 운비닐륨(Ubn), 121번은 운비우늄(Ubu)처럼 임시로 쓸 이름만 붙여둔 상태입니다.
 
그렇다면 반대로 더 낮은 번호의 원자를 찾아 나선 과학자들은 없을까요?
 
물론 있습니다. 한국 기초과학연구원(IBS)과 일본 이화학연구소(RIKEN), 독일 다름슈타트공대 등 국내외 25개 기관으로 구성된 국제공동연구팀은 1번 원자인 수소보다도 낮은 번호의 원자를 찾고 있습니다. 그리고 최근 이들은 원자핵에 양성자가 없는 0번 원자를 관측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과연 이들이 찾은 0번 원자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그리고 118번 원자까지 발견된 상황에서 아직도 0번 원자가 발견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짧은 수명의 중성자, 0번 원자의 장애물

0번 원자가 되기 위한 조건은 간단합니다. 우선은 핵이 있어야 하고, 그 핵에 양성자가 포함되지 않으면 됩니다. 핵은 양성자와 중성자로 이뤄져 있으니 중성자만 있는 핵을 갖는다면 0번 원자가 될 수 있습니다.
 
중성자만으로 이뤄진 원자의 존재는 1926년부터 일부 과학자가 만든 주기율표에도 등장합니다. 독일의 화학자였던 안드레아스 폰 안트로포프는 중성자로만 이뤄진 핵을 갖는 원자에 ‘뉴트리움(neutrium)’이라는 이름을 붙이며 자신이 만든 주기율표에 0번 원자로 언급했습니다. 물론 우누넨늄이나 운비닐륨처럼 발견하지 못한 미지의 원자라는 한계는 있었지만 말입니다.

 

                                                              퍼블릭도메인

그렇다면 왜 양성자가 없고, 중성자만으로 이뤄진 핵을 찾는 것이 어려웠을까요. 중성자라는 녀석이 아주 성격이 급하기 때문입니다.
 
양성자의 수명은 무한하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아무리 오랜 시간이 지나도 자연적으로 붕괴하거나 다른 물질로 변하지 않습니다. 양성자 1개만으로 핵을 이루는 수소가 현재 우주에서 가장 많은 양을 차지한다는 것만으로도 알 수 있는 사실입니다.
 
반면 중성자는 수명이 매우 짧습니다. 중성자의 반감기는 약 614초로 알려져 있죠. 자연계에서 614초마다 중성자의 절반이 양성자로 변하게 됩니다. 마치 고등어 같습니다. 고등어는 바다에서는 안정적으로 살아가지만, 성격이 아주 급해서 바다 밖으로 나오면 이내 죽고 맙니다. 우리가 수조에서 살아 있는 고등어를 보기 어려운 이유죠.
 
고등어가 안정적으로 살기 위해 바다라는 환경이 필요하듯, 중성자에게는 안정적으로 존재하기 위해 특별한 환경이 필요합니다. 바로 양성자와 함께 핵 안에서 속박 상태로 존재하는 것입니다. 중성자는 양성자와 속박 상태에서 안정적으로 있을 수 있습니다. 덕분에 헬륨의 핵처럼 양성자와 중성자를 모두 갖는 원소들은 우주에 풍부하게 존재합니다.

 

                                                                   출처: NASA

새로운 지식의 발자국을 찍은 과학자들

연구팀은 0번 원자를 찾기 위해 RIKEN의 중이온가속기를 사용했습니다. 우선 베릴륨(Be) 표적에 산소-18(18O) 이온을 충돌시켜 2개의 양성자와 6개의 중성자를 갖는 헬륨-8(8He)을 만들었습니다. 자연계에 흔히 있는 헬륨(헬륨-4)보다 중성자가 4개 더 많은 동위원소죠. 그리고 헬륨-8를 다시 가속해서 양성자 표적에 충돌시켰습니다. 그러자 양성자 2개, 중성자 2개로 구성된 헬륨의 핵이 떨어져 나가며 중성자 4개만 남은 물질이 만들어졌습니다. 그동안 과학자들이 찾던 양성자가 없는 핵, 테트라 중성자의 발견입니다.

 

                                                 헬륨-8 빔에서 4개의 중성자가 생성되는 과정

테트라 중성자를 찾기 위한 실험은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1960년대 우라늄의 핵분열 과정에서 테트라 중성자를 찾으려는 시도가 있었고 2002년에는 베릴륨-14(14Be)를 이용한 방법이 제안됐지만, 결과적으로는 모두 실패했습니다. 60년 동안 핵물리학의 풀리지 않는 문제였던 테트라 중성자가 발견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물론 0번 원자의 존재를 인정하기 위해 연구해야 할 것은 아직 많이 남아 있습니다. 기존 이론에 따르면 핵력을 계산할 때 중성자만으로 이뤄진 경우는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테트라 중성자의 존재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기존 핵력 이론을 크게 수정해야 합니다. 또 테트라 중성자의 공명 상태가 중성자 때문이 아니라 다른 양자물리학적 작용으로 인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새로운 현상을 관찰했지만, 아직 이를 설명할 방법이 마땅치 않은 상황입니다. 과학 이론을 바꾸기 위해서는 이번 연구보다 더 많고, 탄탄한 실험이 뒷받침돼야 합니다.
 
하지만 새로운 발견은 과학자들에게 언제나 흥미로운 일입니다. 최초라는 타이틀을 얻은 시도들은 때로는 과학과 기술의 발전을 이끌어 왔습니다.
 
인류 최초로 달에 착륙한 미국의 우주비행사 닐 암스트롱은 달에 발자국을 남기며 “한 인간에게는 작은 한 걸음이지만, 인류에게는 위대한 도약이다”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실제로 그의 발자국을 따라 많은 우주비행사가 달에 착륙하는 데 성공했고, 수십 년이 지난 지금 인류는 달을 넘어 화성에 발자국을 찍을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출처: 과기정통부

 

이처럼 앞으로 더 많은 과학자와 연구 기관이 0번 원자의 존재를 찾는 여정을 이어갈 것입니다. 한국도 10월 한국형 중입자가속기 라온(RAON)의 첫 번째 빔 방출 실험에 성공하며 새로운 원자와 동위원소를 찾는 데 속도를 낼 예정입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원자핵을 더 잘 이해하고, 더 나아가 우주와 우리가 사는 세상의 비밀을 파헤쳐나갈 수 있을 겁니다.

이병철 기자 / alwaysame1@gmail.com


[출처] IBS(기초과학연구원) 과학지식백과 | “60년을 찾아 헤매던 0번 원자의 정체, 테트라 중성자” | 2022. 12.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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