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인문·사회분야 박사양성모델 정립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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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인문·사회분야 박사양성모델 정립해야
  • 고현석 기자
  • 승인 2023.01.21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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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연구보고서]

■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인문정책연구총서_ 〈인문·사회분야 학문후속세대의 연구력 강화를 위한 실태조사 및 과제: 박사과정생을 중심으로〉

 

한국의 인문·사회분야 학계의 인적 기반이 형성되는 곳은 대학원이고, 그 가운데에서도 주축은 학문으로의 긴 여정을 결심한 이들로 구성된 박사과정생 집단일 수밖에 없다. 이들이 대학원에서 어떻게 지식생산의 주체로 발돋움하고 있고, 그들이 생산해내는 지식의 성격이 무엇인지를 고찰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우선, 인문·사회분야 박사과정생이 어떤 계기로 학문의 길을 선택했고, 어떠한 기대를 가지고 대학원 박사과정에 진학했으며, 실제 대학원 생활을 통해 그 기대가 충족되었는지, 혹은 기대를 충족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를 파악하는 작업은 ‘연구자의 생애사’라는 관점에서 새롭게 조명될 필요가 있다. 이들은 미래 학계의 학술기반의 골간을 이루는 존재이고 또 종종 ‘학문후속세대’로 불리고 있는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국가의 학술재정 투여의 적극적인 대상으로서 설정되지 못했고 해당 집단이 어떤 연구환경 속에서 연구하고 있는지에 대한 제대로 된 실태 파악도 이루어진 바 없다.

이에 경제·인문사회연구회는 국내 인문사회분야 대학원 박사과정에 재학하고 있는 학생들의 연구환경 실태를 파악하고, 이를 토대로 학문후속세대의 연구력(Research Capacity)을 평가하고 강화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 정책연구보고서 <인문·사회분야 학문후속세대의 연구력 강화를 위한 실태조사 및 과제: 박사과정생을 중심으로>(연구책임자: 김인수 대구교육대학교 교수)를 지난달 발간했다.

 

◇ 연구 결과 요약

이 연구는 연구력을 (1) 경제적 환경 (2) 연구자 문화 (3) 연구 자원으로 구성된 연구생태계의 활성화를 통해서 구현될 수 있는 역량으로 정의했다. 온라인설문조사를 통해 100명의 사례에 관한 연구를 수행했다. 이 가운데 29명을 선정하여 FGI 방법을 통해 심층 인터뷰를 진행했다. 연구를 통해 발견한 사실은 다음과 같다.

첫째, 박사과정생은 학문적 성취와 사회문제 해결을 위해 박사과정에 진학했다. 그들은 외국보다는 국내에서 연구하는 것이 더 탁월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박사과정생은 석사과정을 중심으로 운영되는 국내 대학원에서 제도적으로 방치된 존재이다. 특히, 박사수료생의 경우 제도적 지원을 거의 받지 못하고 있다.

둘째, 박사과정생은 학문적 고립감은 물론 생활과 관계에서 오는 정서적 고립감에 노출되어 있다. 기존의 학문공동체는 와해되었고 코로나 이후 그 경향은 가속화되었다. 대학원 안팎의 네트워크를 강화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셋째, 박사과정생은 연구자로서의 생애주기(코스웤, 수료)에 따라 다른 형태의 연구비 지원을 원하고 있다. 또, 독립적 연구자로서의 지위(이를테면, ‘연구책임자’)를 인정받기를 원하고 있다.

넷째, 박사과정생은 연구의 결과를 전문학술지에 게재한 논문의 숫자로만 평가하는 학계의 관행을 내면화하고 있다. 그들은 ‘좋은’ 논문을 ‘많이’ 써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리고 있다. 하지만 그렇게 쓴 소논문이 박사학위논문으로 종합되지 않아 연구력을 소모하는 경험을 하고 있다.

다섯째, 박사과정생은 학문 분과, 지역에 따라 정보와 네트워크 자원이 불균형하게 배분되는 경험을 하고 있다. 정보를 집적하고 네트워크로 연결하는 플랫폼의 필요성을 제안했다.

여섯째, 박사과정생은 지식생산의 원천기술 – 사회조사역량, 언어숙련, 번역능력, 사회과학방법론, 아카이브 활용능력 등 – 을 확보하는 데에 관심을 갖고 있다. 연구비를 BK, HK 등 거대 집단과제를 매개로 받는 것에 대해 자기주도적 의제설정의 불가능성을 토로했다. 오히려 이들 원천기술을 숙련하거나 체득할 수 있도록 개인에게 직접 연구비를 지원하거나 시스템을 갖춰 공공재(플랫폼)로 서비스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평가했다.


◇ 정책 제안

연구진은 이러한 연구 결과에 기초하여 국가의 학술정책의 방향에 대해 다음과 같은 정책 제안을 했다.

첫째, 국내 인문·사회분야 박사양성모델을 정립해야 한다. 국내 박사과정의 존재 이유는 한국사회의 문제점을 분석하고 그 대안을 만들어내는 것이고, 따라서 이를 수행할 수 있는 역량을 ‘연구력’으로 재정의해야 한다. 그리고 박사양성모델의 정립에 박사학위를 받은 이후의 연구자로서의 삶을 시야에 넣어야 한다. 박사과정생에 대한 국가의 학술정책은 교수 시장(Job Market)에서의 불균형, 편중성에 대한 제도적 개선까지 고려해야 한다.

둘째, 박사과정생이 오로지 연구에 몰입할 수 있도록 조건을 두지 않는 학비/생활비 지원의 프로그램을 늘려야 한다. 4년 내외의 코스웤 및 초기 학위과정에 대한 지원, 박사논문 연구장학금(Research Fellowship. 1~2년), 박사논문 집필장학금(Write-up Fellowship. 1~2년)을 경쟁 선발을 통해 제공하는 미국의 주요 대학의 사례를 적극적으로 참고하여 정책 입안에 반영할 필요가 있다.

셋째, 연구자 생애맞춤형 지원과 박사과정생에 대한 직접지원 체계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이를테면, 인문사회학술연구교수 B유형 제도를 박사과정 진학에서 졸업에 이르는 사이클에 맞춰, (1) 박사과정 재학 코스웤(2년) 지원 (2) 논문 집필을 위한 현장 연구 지원(해외 조사 포함) 1년, (3) 박사논문 집필 지원 1년 등과 같이 세분화해서 박사과정 학생들이 필요한 시기에 자기주도적으로 지원할 수 있도록 제도를 탄력적으로 운영하는 방안을 제도화해야 한다.

넷째, 박사과정생 관련 예산을 학과나 연구소가 관리하는 현재의 BK, HK 제도보다는 박사과정생 신청자 개인에게 직접 지원해주는 인문사회학술연구교수 B유형 형태의 제도를 더 확대해야 한다. 다만, 이 경우 이미 대학원 인프라에서 수도권 우수대학에 비해 커다란 격차가 벌어지고 있는 지역 대학원의 박사과정생의 연구를 지원해 주는 지역할당제 등의 추가적인 대책도 필요하다.

다섯째, 박사과정생의 연구 업적 평가체계의 전환이 필요하다. 박사과정생의 연구력 강화에 적합한 형태로 연구 업적 평가체계를 재설계해야 한다. 그것은 우선 박사과정생이 수행하는 연구의 시간적 길이, 템포에 대해 인정하는 데에서 출발해야 한다. 인문·사회분야의 박사과정에서 다루어야 하는 연구 주제는 박사과정생 본인에게 연구자 생애를 통틀어 가장 중요한 테마이고 따라서 문제의식을 발전시키는 데에는 그만큼 많은 시간과 노력이 소요되며, 당연히 시행착오가 수반될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와 같이 한 학기, 또는 1년과 같은 단기간에 성과를 제출해야 하는 시스템은 박사과정 연구자들의 문제의식을 심화시키는데 오히려 많은 폐해를 불러올 수 있다.

여섯째, 장학금/연구비의 수여 이후 연구의 성과로서 제출하는 결과물의 형태를 다양화해야 한다. 박사과정생이 연구비를 지원받은 후 제출하는 결과물로서 꼭 전문학술지 게재논문을 요구받는 것은 미국과 일본 등 외국의 사례에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박사과정생에 대한 평가 기준은 최종적으로 훌륭한 박사학위논문의 완성을 지향하는 과정생의 특수성을 고려한 것이어야 하고, 따라서 지나친 단기적 결과 중심의 평가가 대형 연구자의 양성을 저해하는 측면이 크다.

일곱째, 국가의 학술정책은 연구의 ‘원천기술’을 제공하는 플랫폼을 만들고 이를 공공재로 제공하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 규모의 혜택이 있는 미국의 대학원에 비해 한국의 대학원, 특히 박사과정은 전공적합성의 문제에 늘 시달리며, 석사과정과의 커리큘럼의 중복이 연구역량의 축적을 저해하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이 규모의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대학원 안팎을 가로지르는 네트워크의 확충, 확대를 통해 결핍 부분을 보완하는 것이다. 플랫폼은 박사과정생이 대학원 안에서는 여러 제도적 한계로 인해 꿈꿀 수 없는 다양한 지식생산 자원 - 사회조사역량, 언어숙련, 번역능력, 사회과학 방법론, 아카이브 활용능력 등 - 을 획득할 수 있는 장이 될 것이다. 각 학문 분야에서 필요한 원천기술을 집적하고 네트워크로 연결하는 플랫폼, 연구자들 간의 정보를 공유하고 온/오프라인 모임/활동의 장을 마련해주는 플랫폼을 만들고 이를 공공재로 제공하는 일이 국가의 업무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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