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과학 패러다임과 가부장제 자본주의를 비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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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과학 패러다임과 가부장제 자본주의를 비판하다
  • 김지현 기자
  • 승인 2020.03.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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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소개]

■ 에코페미니즘 | 마리아 미스·반다나 시바 지음 | 손덕수·이난아 옮김  | 창비  | 524쪽

 

성장과 이익창출이라는 목표를 앞세워 자연과 여성, 제3세계의 착취를 정당화해온 자본주의 가부장제의 견고한 패러다임에 맞서 자연에 대한 폭력이 소수자에 대한 폭력과 연결되어 있으며 자연 해방과 여성 해방의 길이 다르지 않다고 선언한 생태주의 페미니즘의 고전 『에코페미니즘』 개정판이다. 환경위기와 젠더 불평등의 시대에 생태주의와 여성주의의 결합에서 길을 찾는 이 책은 2019년 UN에 의해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의 『우리들은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 시몬느 드 보부아르의 『제2의 성』 등과 함께 ‘우리 모두가 읽어야 할 페미니즘 도서’로 선정됐다.

제1세계 여성 이론가와 제3세계 여성 운동가인 두 저자는 인간의 무분별한 발전 지향이 야기한 일련의 재난을 목도하면서 “대체 누가 자연을 우리의 적으로 만들었는가?”라고 묻는다. 그러면서 근대과학 패러다임과 가부장제 자본주의를 신랄하게 비판한다. 자연을 탐색하고 지식 축적을 강조한 근대의 자연과학자들은 실험에 입각한 경험적 탐구방법을 창시했지만, 결국 ‘이성을 가진 인간’ 남성을 세계의 중심에 놓고 자연 혹은 ‘비非인간’ 여성은 통제와 지배의 대상으로 전락시켰다는 것이다. 이처럼 저자들은 가부장제와 자연파괴의 관계를 탐색하며 어떻게 여성의 움직임이 기후변화와 사회운동에 공헌할 수 있는지 묻는다. 그들이 제시하는 대안은 풀뿌리 연대와 자급 경제이다.

이 책의 초반부를 통해 우리는 ‘백인’ ‘남성’ ‘자연과학자’들이 주로 유통해온 근대과학 인식론의 그물망에 여전히 갇혀 있음을 통렬히 깨닫게 되며, 나아가 그들이 말하는 인간중심주의가 사실은 이성을 가진 남성중심주의였으며, 오늘날 자연과 여성, 약자와 제3세계를 수탈하고 억압하여 부를 축적하는 한계를 지닌 자본주의 가부장제의 기원이 되었다는 진실과 마주하게 된다.

저자들은 폭로와 비판에서 한발 더 나아가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풀뿌리 연대와 자급의 경제 등 자본주의 가부장제를 전복하기 위한 대안 전략을 제시한다. 4부에서는 여성의 재생산력을 인구조절이라는 미명 하에 통제하려는 국가와 인간적 존엄을 훼손하는 의료체계, 전통의 이름으로 여성의 몸에 자행되는 폭력을 넘어서 여성의 몸과 삶을 위한 정치가 무엇일지 생각해보게 한다. 아울러 가족, 의료, 가사노동 체계, 그리고 제1세계에 의한 제3세계의 식민화 등에서 나타나는 여성에 대한 구조적 억압의 철폐를 말하는데,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더 나아진 것이 없는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논의이다.

2부와 3부에서는 약자를 도태시켜 강자가 생존하는 따라잡기식(catching-up) 개발전략을 고수해온 자본주의가 생태계 훼손과 지구 생물의 공멸이라는 재앙을 초래했음을 지적한다. 그러면서 인간과 비인간을 개별화하기보다는 서로 다른 것을 연계하고 돌보는 ‘풀뿌리 연대’의 전략을 활용해야 한다고 말한다. 자본축적과 산업화의 도미노 현상을 멈추기 위해 다양한 농작물의 종자와 아이를 돌보는 농촌여성의 노동 사례에서 다양성의 연계라는 전략의 원리를 찾는 대목은 이 책의 인상적인 부분이기도 하다.

이 연대는 어떻게 지속될 수 있을까. 5부에서는 히말라야 칩꼬 여성들이 벌목산업에 대항하여 자발적으로 나무를 껴안고 조용하지만 강력한 시위를 벌인 사례를 말한다. 6부에서는 소비자의 구매력과 생태농업의 발전을 연결한 협동조합운동인 일본의 세이까쯔 클럽을 예로 들어 자본주의와는 달리 사용가치만큼만 생산하고 소비하는 자급의 관점을 제시한다.

사회학자인 마리아 미스와 핵물리학자인 반다나 시바의 공저인 이 책은 생태주의와 여성주의의 결합을 통해 발전중심주의와 남성중심사회를 전복할 새로운 대안을 제시한다. 남성과 자본의 억압으로부터 생명과 환경을 지켜낸 풍부한 사례를 동원해 이론과 실천을 넘나드는 두 사람의 역동적인 글쓰기는 인간과 비인간, 여성과 남성, 서구와 비서구의 이분법을 타개하고 다양성의 연계를 추구하는 ‘에코페미니즘’ 개념의 보편화에 기여했다. “에코페미니스트는 철학자이자 거리의 투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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