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안의 타자 철학’…최고의 인간 공동체가 바로 최고의 자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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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안의 타자 철학’…최고의 인간 공동체가 바로 최고의 자유이다
  • 이명아 기자
  • 승인 2023.01.18 13: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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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유의 폭력: 자유의 최대화와 폭력의 최소화를 위한 철학적 성찰 | 박구용 지음 | 길 | 734쪽

 

2008년 금융위기와 함께 1970년대부터 40년 가까이 시대정신의 지위를 누렸던 신자유주의가 뇌사 상태에 빠졌다. 그리고 2020년 코로나바이러스 팬데믹과 함께 시대정신으로서 신자유주의에 대한 사망 선고가 내려졌다. 인간에 의한 자연의 약탈과 파괴, 경제적 불평등과 정치적 양극화, 독점 강화와 성장 둔화를 야기했거나 혹은 기여한 것으로 신자유주의가 지목되었다. 하나의 시대정신이 생명을 다한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새로운 시대정신이 태어난 것도 아니다.

지금 인류는 최고 권력의 공백 상태, 시대정신의 부재 기간, 다시 말해 궐위의 시간인 인터레그넘(interregnum) 상황에 빠져 있다. 신자유주의라는 낡은 이념은 해체되었지만, 그렇다고 그것을 대체할 새로운 이념이 등장하지도 않았다. 안토니오 그람시(Antonio Gramsci)의 말처럼 “위기는 정확히 낡은 것이 죽었는데 새로운 것이 태어나지 않았다는 사실에서 구성된다. 이 인터레그넘 속에 매우 다양한 병적 증상이 나타난다.” 인터레그넘의 위기는 이미 죽은 것이 무덤으로 가지 않고 산 것처럼 활보하고 다닌다는 사실에 있다. 좀비가 된 신자유주의, 곧 좀비-자유주의가 부활의 가능성을 찾아 떠돌고 있다.

인터레그넘은 위기의 공간이면서 동시에 새로운 정치적 공간이다. 이 열린 공간에서 새로운 시대정신을 찾아가는 담론이 생성되어야 한다. 자유의 이념과 폭력은 이 담론을 형성하는 중요한 하나의 주제일 수 있다. 미래의 시대정신이 요구할 자유는 그것의 최대화가 폭력의 최소화를 동반해야 한다는 요구에 부응해야만 한다. 이 요구에 맞추어 저자는 자유 담론을 재구성하고자 한다.

이 책에서 저자는 사회철학과 정치철학의 경계에서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허위의식을 비판하기 위한 실천철학의 규범적 모델로서 ‘우리 안의 타자 철학’을 제안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 책은 우리주의 철학과 세계주의 철학이 갖는 위험성을 극복할 수 있는 대안적 사유를 ‘우리 안의 타자’에서 찾고자 한다. 상호 주관성과 탈주관성의 경계에 있는 ‘우리 안의 타자’ 철학을 통해 이 책은 현재 한국 사회에서 사회, 정치 철학의 핵심 의제를 중심으로 “자유의 최대화와 폭력의 최소화”를 동시에 성취할 수 있는 길을 찾아간다. 그러나 저자는 ‘우리 안의 타자’ 철학이 철학을 빈곤하게 만드는 진부한 교화의 철학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그 때문에 저자는 ① 실험적 단계이지만 우리가 직면한 현실을 사상의 이름으로 포착하고, ② 가련한 안락을 얻은 대가로 우리가 상실한 것과 그런 우리로부터 언어를 빼앗긴 타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도, ③ 허무주의나 비관주의로 전락하지 않는 상호 주관적 규범체계를 지향하며, ④ 세계주의 속에 은폐된 ‘경제제국주의’와 우리주의 속에서 기승을 부리는 ‘도덕제국주의’를 제약할 수 있는 사회 비판의 철학을 모색한다.

제1부에서 저자는 세계주의와 우리주의 속에 은폐된 경제제국주의와 도덕제국주의 사이의 도덕적 화해 상태에서는 자유가 폭력으로 전환될 위험이 크다는 가설을 논증하면서 사회 바판의 규범적 척도로 ‘의사소통적 자유’와 ‘상호 주관적 소통’의 정당화 가능성을 탐구한다.

제2부에서는 자유주의의 철학적 뿌리를 탐색하는 일에 먼저 집중한다. 특히 토머스 홉스, 존 로크, 데이비드 흄, 존 스튜어트 밀 등을 집중 분석하는데, 이들의 철학을 관통하는 자유는 자연주의에서 길어 올린 이념이면서 동시에 개인의 사적 영역 보호에 우선성을 두는 권리임을 밝힌다. 분명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모두 공적 영역에서 행사되는 자유, 곧 공적 자율성에 큰 가치를 두지 않았다는 점에서 매우 유사하다. 그 까닭을 찾아가기 위해 저자는 제5장에서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유와 정치체제에 대한 입장을 정리한다.

제3부에서는 다원화와 세계화가 정점에 이른 상황에서 폭력을 최소화하는 자유의 최대화 가능성을 탐색한다. 무엇보다 다원주의를 사실로서 받아들이면서 세계시민이 공동의 자유와 평화, 그리고 행복을 실현할 수 있는 길을 찾는다.

마지막 제4부에서는 인권과 복지, 그리고 자치의 철학적 정당화 문제를 다룬다. 자유는 주관적이면서 보편적인 권리이다. 민주적 법치국가의 최소 권리로서 자유는 한 사람의 주체가 자신의 의지에 따라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는 주관적 권리이다. 주관적 행동의 자유는 다른 사람의 동의와 승인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따라서 주체는 주관적 행동의 자유에 대해 책임 부담을 가질 필요가 없다.

자유의 최대화를 위한 개인들 사이의 인정투쟁은 결코 자연 벌판에서 벌어지는 야만적 생존 투쟁이 아니다. 인정투쟁은 자연이 아니라 문화의 한복판에서 벌어진다. 인정투쟁은 자연인과 자연인과의 대결이 아니다. 인정투쟁은 부모와 자식, 아내와 남편, 자본가와 노동자, 정규직과 비정규직, 남자와 여자, 이성애자와 동성애자. 중앙과 지방, 서울과 지역, 강대국과 약소국, 선생과 학생 같은 수많은 사회적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무시에 대한 저항이다. 그러니 인정투쟁은 폭력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줄이는 과정이면서 동시에 너의 자유만이 아니라 나의 자유도 키우는 과정이다. 너와 내가 서로를 무시하지 않고 존중하는 자유와 공공성의 영역에서 인정투쟁의 과정을 통해 축적한 자유만이 불가역적 보편성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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