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트워크와 교류의 관점에서 본 고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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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트워크와 교류의 관점에서 본 고조선
  • 이명아 기자
  • 승인 2023.01.18 1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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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조선의 네트워크와 그 주변 사회 | 강인욱·이후석·오대양·정현승·조원진 2명 지음 | 주류성 | 430쪽

 

이 책은 고조선이 어떤 고고학적 배경 속에 출현하였으며, 또 어떤 과정을 거쳐 문화 정체성을 형성시켜 나갔는지 살펴보는 것이 목적이다. 특히 비파형동검문화가 형성되고 발달하는 과정에서 확인되는 청동유물들이 어떤 맥락으로 정착되어 고조선의 무기와 제사 체계가 확립되었는지 주변 사회와의 관계 속에 규명하고자 했다.

문헌사 중심의 연구에서는 그동안 지나치게 그 영역에 대한 논의가 집중되어온 경향이 있다. 패수, 열수 등 고조선의 경계를 어디로 보는지에 대해서 연구도 많고 학자들의 견해도 다양하다. 반면에 고고학에서는 일정한 물질문화의 조합을 밝히고 시공적인 범위를 파악하는 데 집중한다. 하지만 고조선과 같은 청동기시대 단계에 성립한 정치체는 지금과 같은 영역국가가 아니었다는 점에서 강을 중심으로 하는 국경선의 설정은 의미가 없다. 또한 어떠한 고고학자료를 보아도 강을 중심으로 양쪽으로 문화가 나뉘어지는 경우는 전혀 없다. 강은 강줄기를 따라서 물질문화가 중심의 역할을 하지 영역화되어 군사가 지키는 국경의 역할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에 일부 고고학자료를 이용하여 일정한 물질문화를 곧바로 하나의 국가 강역과 동일시하는 것은 고조선의 국가 성격이나 당시 사회 구조가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상태에서 자칫 순환논리로 이어질 수 있다. 사실 특정 유물의 분포를 하나의 국가나 정치체 범위로 곧바로 잇는 것은 검증되지 않은 방법이다. 특정한 유물의 유사성은 그 뒤의 사회, 경제, 또한 기술의 보급이라는 다양한 인간활동의 결과다. 이러한 고조선에 대한 선험적인 규정은 다양한 문화들의 성립과 지역간의 교류의 산물인 고고학적 문화에 대한 검토 대신에 “고조선인가 아닌가”라는 흑백논리로 귀착되기 마련이다. 하나의 국가는 갑자기 출범하지도 않았고, 특히 기원전 1천년기의 사회는 언제부터 국가인가라는 규정을 할 정도로 고고학자료가 충분하지도 않다. 이런 상황에서 불충한 자료에 따른 선험적인 고조선의 규정은 오히려 연구의 장애가 되며 토론의 활성화를 막을 수 있다.

이에 필진들은 좀 더 세계사적 보편성과 거시적인 시야에서 중국 동북지역과 한반도 북부에서 최초로 등장한 정치체인 고조선의 형성에 접근해보고자 했다. 이 책에서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구체화시키기 위하여 ‘청동기’를 연구 대상으로 삼았다. 세계적으로 청동기는 복합사회, 나아가서 국가의 형성과정과 밀접한 관계가 있음은 이미 공인된 사실이다. 다만, 일률적인 ‘청동기=국가’라는 도식이 모든 지역에 성립되지 않는다. 고조선 역시 마찬가지다. 

청동기의 제작을 위한 기술, 청동제기를 통한 제사의 도입, 청동기를 사용한 무기와 전차 등의 도입은 사회 전반적인 변화를 동반해야 가능하다. 즉, 청동기를 통한 고조선의 성립과 발전에 대한 접근은 청동기의 도입과 사용과정에서 고조선과 같은 사회가 성립되는 과정의 일단을 파악하는 데에서 시작한다고 볼 수 있다. 이 책의 주된 흐름은 고조선을 포함한 동북아시아 광범위한 지역의 청동기를 중심으로 하는 지역 간 네트워크와 복합사회의 형성이다. 네트워크는 각 지역 간에 정보를 서로 교환하고 인적 물적 자원이 다양한 경로로 교환되는 망(網)을 의미한다. 이러한 네트워크를 강조하는 이유는 강을 중심으로 하는 가상의 경계선을 긋거나 특정 물질문화의 분포를 과도하게 해석하는 기존 고조선 연구가 가지고 있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함이다.

이 책은 크게 2부로 구성됐다. 1부는 비파형동검문화가 성립되기 이전에 청동기문화의 형성과정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지난 50여 년간 대릉하유역 일대에서 기씨 명문이 새겨진 상말주초의 청동예기는 큰 논란이었다. 그 배경에는 기자조선이라는 문헌상에서 애매하게 등장하는 기사가 있다. 기자가 실제 존재했던 이후 1천년이나 지나서 등장하는 역사 기록에 무리하게 해석하기보다는 기원전 12~10세기, 중원에서는 상말주초로 대표되는 혼란기가 유라시아적인 큰 변동임을 강조하고자 했다. 이에 대릉하 유역에 대한 중원예기 속의 초원문화 요소, 그리고 유라시아 전차 등의 도입, 상말주초의 혼란상과 문헌기록의 불일치 문제, 그리고 위영자문화로 대표되는 대릉하 유역의 토착적인 문화상을 새롭게 조망했다. 물론, 1부에서 다루는 문제들이 고고학적으로 고조선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고조선의 기반이 되는 청동기문화는 중원에서는 상말주초의 혼란기, 그리고 초원지역에서는 새로운 유목 청동기문화가 유입되면서 대릉하 유역 일대에서 자체적인 청동기가 태동하는 과정을 역동적으로 살펴보고자 했다. 

2부에서는 비파형동검문화와 그 주변지역에 대한 여러 논의를 다루었다. 본격적으로 고조선을 대표하는 고고학적 문화를 다루는 5편의 논문이 수록되었다. 특히 고고학의 시대 구분으로 ‘고조선시대’를 제안하는 것이 가장 큰 성과라고 하겠다. 고조선에 대한 많은 논의에도 불구하고 유독 한국에서 고조선은 시대 구분의 한 획기로 자리매김하지 못했다. 이에 본격적으로 고조선시대를 제안하기 위하여 고조선의 성립과 발전과정에 대해 언급하고, 특히 기원전 6~5세기를 고조선의 시작으로 제언하는 연구(이후석)가 등장했다. 다음으로 고조선문화권의 주변지역에 해당하는 연산산맥 일대의 옥황묘문화와의 교류에 대한 논고(김동일), 초원, 중원, 비파형동검문화권의 교차지대이면서 자신들만의 독특한 문화를 영위해온 발해만유역의 양상(정현승)에 대한 연구가 수록되었다. 이어서 고조선의 중심지역에 해당하는 요동지역의 비파형동검문화권의 연구(이후석)와 요서지역에서 한반도로 이어지는 교류상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토기인 점토대토기에 대한 연구(배현준)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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