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는 ‘믿음의 공화국(The Republic of Beliefs)’을 살아가는 국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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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는 ‘믿음의 공화국(The Republic of Beliefs)’을 살아가는 국민
  • 이명아 기자
  • 승인 2023.01.18 1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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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믿음의 공화국: 게임이론으로 풀어낸 법경제학의 새로운 패러다임 | 카우식 바수 지음 | 박연진 옮김 | 오진환 감수 | 이화여자대학교출판문화원 | 368쪽

 

이 책은 법경제학이라는 융합 학문분과를 다룬다. 법경제학은 경제학의 시선으로 법에, 또 법학의 시선으로 경제에 접근하는 학문으로, 저자는 법과 경제가 교차하는 이 지점이야말로 사회과학의 매우 성공적인 다학제적 연구 분야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그는 현재 이 분야가 한 가지 큰 근본적인 오류, 즉 ‘모든 평범한 시민은 이익의 극대화만을 추구하는 이기적인 존재이며, 경찰이나 판사, 정치인과 같은 법 집행자는 마치 로봇처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법을 집행하는 존재’라는 잘못된 인식에 빠져 있다고 지적한다. 이는 실제 법 집행의 실효성을 떨어트리는 결과로 이어져 왔는데,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법경제학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복잡하고 어려운 수식으로 최종적인 답을 제공하기보다는, 법을 경제학적으로 분석하고 그것이 왜 제대로 실행되지 않는지 이해하기 위한 일종의 문법과도 같은 분석 구조를 이해하기 쉽게 조망한다. 따라서 이 책은 한편으로는 기존의 법경제학에 대한 논쟁을 마감하는 책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더 효과적인 법과 법 집행 전략을 수립하고 확장ㆍ심화된 연구의 추진 동력을 제공하기 위한 새로운 법경제학의 창을 여는 책이기도 하다. 

책의 전반부에 해당하는 1~4장에서는 경제와 실제 법 집행이 관계 맺는 방식에 천착하여 사회규범과 법이 어떤 원리로 연결되는지를 보인다. 시민뿐 아니라 법 집행자도 ‘합리적’으로 판단하는 존재임을 전제하며, 이러한 전제가 배제된 것이 전통적인 신고전주의 법경제학에 내재해온 심각한 방법론적 결함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저자는 그 대안으로 현대 게임이론에 뿌리를 둔 새로운 법경제학 패러다임인 ‘초점접근법’을 제시한다. 

먼저 1장에서는 법경제학의 기본 개념을 개괄하고, 2장에서는 ‘단일균형’ 상황에서 시민 두 명을 전제하여 이들의 선택만으로 이루어지는 가장 기초적인 모델을 소개하며 벌금이라는 법적 개입을 설정한다. 3장에서는 기존 모델을 포괄하면서 법 집행자인 경찰까지 포함해 세 명으로 확장한 모델을 제시함으로써 ‘다중균형’ 상황을 논한다. 이어 4장에서는 ‘순차게임’에 기반해 경찰의 상위 행정기관까지 포함하는 네 명으로 더욱 확장한 모델에 대한 논의를 전개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토머스 셸링에 의해 발전된 ‘초점’ 개념을 근간으로, 셸링 버전의 게임이론식 법경제학인 ‘초점접근 법경제학’을 이야기한다. 즉 다중균형 상황에서 법은 더 나은 균형을 초점으로 부각시킬 수 있고, 그 결과가 실현될 것이라는 믿음을 사회 전반에 심어줌으로써 사람들의 인식과 행동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인데, 이렇게 형성된 서로에 대한 믿음이 ‘초신뢰’로 연결되어 사회 전체적으로 선한 결과를 야기할 때 비로소 그 법은 살아 있는 제도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는 것이다.

후반부인 5~8장에서는 법이 여러 가능한 결과 중 어떻게 더 나은 결과를 선택해 ‘초점’으로 부각시키는지, 또 이를 통해 어떻게 인간의 믿음과 행동을 바꾸는지, 그것이 전 세계와 인류의 삶에 어떤 실질적 혜택을 제공할 수 있는지 등을 다양한 비유와 예시를 통해 흥미롭게 설명한다. 그는 이러한 접근이 우리에게 법의 작동 이유를 이해하게 하고, 더 효과적인 법을 제정하게 하며, 나아가 더 공정한 사회를 만들게 할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결국 한 국가를 지탱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권력이나 위력보다도 평범한 다수의 사람이 지닌 믿음이며, 이 믿음을 바꿔야만 사회를 지배하는 게임의 기제를 바꾸고 그 결과를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 수 있다는 것이다.

먼저 5장에서는 그간 관행으로 여겨져 온 사회규범들도 깊게 들어가 보면 결국 원래부터 그랬던 것이 아니라 그 사회 구성원들의 믿음과 균형 반응이 그러한 규범들의 기저에서 작동해온 것이었음을 시간 엄수, 차별, 아동노동 등 새로운 법경제학 접근법의 다양한 응용 사례를 통해 전달한다. 그리고 6~8장에서는 초점접근법이 다양한 실생활 문제에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지를 설명한다. 6장에서는 권력, 독재, 사회적 억압, 표현의 자유, 부정부패 등과 같이 주류 경제학에서 잘 다루지 않는 주제를 북한의 경우를 포함해 여러 예시와 함께 다루고, 7장과 8장에서는 합리성에 대한 비판적 재해석, 행동경제학적 초점접근법, 정당성, 무작위 통제실험을 포함한 통계기법의 해석과 관련된 윤리적 어려움과 한계, 그리고 이와 대비되는 직관의 중요성, 나아가 세계화 시대에 걸맞은 국제기구의 역할과 세계헌법 제정 가능성 등의 주제를 진지하면서도 무겁지 않게, 수많은 사례를 곁들여서 흥미진진하게 소개한다.

특히, 책에서 저자는 초점접근법의 사례로서, 불과 60년 전까지만 해도 가망 없는 실패 사례로 치부되었던 저소득 국가 한국이 오늘날 이처럼 놀라운 경제 성장을 이뤄낸 모습을 북한의 현재와 비교하며 소개한다. 같은 민족과 지정학적 위치, 그리고 같은 역사를 공유하던 남한과 북한은 1950년대까지만 해도 경제적으로 비슷한 수준이었지만, 이후 완전히 다른 행보를 취하며 경제적으로나 사회문화적으로 극명히 대립된 양상을 보이게 되었다. 두 나라 사이에 생겨난 이처럼 거대한 격차는 단순히 경제학적인 시각으로 무역 및 산업 정책, 재정 적자, 통화 개입 등의 차이에만 주목하는 것으로는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고 짚는다. 즉 사람들 사이의 믿음의 결속이 결국은 남북의 사회적 결과를 매우 달라지게 만든 근본 요소라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모두는 ‘믿음의 공화국(The Republic of Beliefs)’을 살아가는 국민이라는 것이 이 책의 궁극적인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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