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도 여성으로 태어나지 않는다”…“레즈비언은 여성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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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도 여성으로 태어나지 않는다”…“레즈비언은 여성이 아니다”
  • 김지현 기자
  • 승인 2020.03.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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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소개]

■ 모니크 위티그의 스트레이트 마인드: 이성애 제도에 대한 전복적 시선 | 모니크 위티그 지음 | 허윤 옮김 | 행성B | 228쪽

 

《스트레이트 마인드(Straight Mind, *Straight는 이성애를 뜻한다)》는 보부아르 등 당대 페미니스트들을 충격에 빠트린 프랑스 작가이자 급진적 페미니스트인 모니크 위티그의 유일한 이론서이자 국내 첫 번역서로 위티그를 이해하는 데 꼭 필요한 에세이 9편을 엄선한 것이다.

위티그는 글쓰기와 사회적 실천을 통해 남/녀 이분법과 이성애 중심주의를 해체하려 분투했다. 특히 시몬 드 보부아르의 “여성은 만들어지는 것이다”는 명제에 이의를 제기함으로써 보부아르 당사자뿐 아니라 당대 페미니스트들을 동요시켰다. 그 말은 ‘여성’이란 원형이 있다는 걸 전제하며 그것은 결국 남/녀 이분법과 이성애 사회를 공고히 하는 데 기여한다는 비판이다. 위티그는 선험적으로 주어진, 생물학적으로 타고난, 신의 섭리에 따른 구분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것이 그의 대표적인 선언적 명제인 “누구도 여성으로 태어나지 않는다,” “레즈비언은 여성이 아니다”의 배경이다.

위티그는 여성성을 중심으로 차이의 정치학을 고민하던 프랑스 페미니즘 계열과 달리, 여성 집단을 계급으로 인식하고, 그 계급으로부터 탈출할 것을 제안하는 급진적 페미니스트이다.  위티그는 남성과 여성이라는 성 범주나 이성애 사회 모두 만들어진 인공물로 본다. 남성과 여성, 두 성이 존재하는 것처럼 말하지만 “젠더는 여성, 하나뿐”이라고 일갈한다. “남성적인 것은 일반적인 것”이어서 남성은 젠더가 아니란 것이다. 그러므로 남/녀 이분법을 해체하려면 이 ‘여성’을 해체해야 한다. 위티그는 작가답게 ‘언어’를 주요 투쟁 무기로 삼았다. 그의 작품들 속에서 중립적인 것처럼 여겨지는 인칭대명사 ils(they)은 elles(그녀들)로 대체된다. 소수자인 여성을 일반화하고, 일반적인 것이었던 ‘그들’을 성별화하려는 시도다.

이런 맥락에서 위티그는 ‘여성적 글쓰기’도 반대한다. ‘여성적 글쓰기’에서 이 ‘여성적’은 무슨 의미인가? 이것은 여성을 상징한다. 그러므로 신화, 여성 신화를 실천하면서 나타난다. ‘여성’은 글쓰기와 협력할 수 없다. 왜냐하면 ‘여성’은 상상적 형태이고 구체적인 현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적에 의해 만들어진 오래된 낙인은 오늘날 전투에서 재발견되고 넝마가 된 승리의 깃발처럼 번창했다. 그리하여 위티그는 “‘여성적 글쓰기’는 여성 지배의 잔인한 정치적 사실에 대한 자연화된 비유”라며 일침을 가한다. 요컨대 ‘여성’은 존재하지 않는 상상물이다. 고로 ‘여성적 글쓰기’도 없다.
 
또한 여성이 남성에게 지배받을 필연성이 없다는 걸 강조하기 위해 자주 거론하는 ‘모권제’도 지적한다. 모권제 역시 남성, 여성이란 이분법을 태초부터 가정한 것일 뿐 “모권제가 가부장제보다 덜 이성애적이지 않다”고 보는 것이다. 즉 억압자의 성이 바뀔 뿐이라는 지적이다. 그리고 레즈비언과 게이가 자신들을 계속 여성, 남성으로 인지하고 말한다면, 그것 또한 이성애를 공고히 하는 데 기여하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레즈비언은 여성이 아니다”는 위티그의 또 다른 유명한 명제도 이런 맥락에 놓여 있다.

위티그는 이분법이 탄생한 배경을 서양 고대 철학에서 찾으면서, 이분법이 계속 피억압자를 만들어 낼 수밖에 없음을 통찰한다. 그러므로 이분법은 해체되어야 하고 그 경우 여성과 남성은 각각의 항을 차지하지 않고 모두 인간이라는 범주로 합쳐질 수 있다고 말한다. 이성애, 동성애가 사라진 세상에서 모두 인간으로 만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남성과 여성이라는 젠더의 구분은 이분법에 근거해 이성애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 위해 고안된 인공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위티그는 선험적으로 주어진, 생물학적으로 타고난, 신의 섭리에 따른 구분은 애당초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주디스 버틀러는 《스트레이트 마인드》가 “《제2의 성》 이래 가장 도발적이고 설득력 있는 페미니스트의 정치적 관점”을 드러낸 책이라고 평했다. 차별금지법 반대, 최근의 트랜스젠더 입학 철회 사건 등 여전히 남/녀 이분법과 이성애 이데올로기가 강고한 한국 사회에 이 책은 ‘여성’은 무엇인지, ‘이성애’는 무엇인지, ‘정상성’은 무엇인지 진지하게 질문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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