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디에서 왔으며 어디로 나아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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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디에서 왔으며 어디로 나아가고 있는가”
  • 이현건 기자
  • 승인 2023.01.18 1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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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빅 히스토리: 우주와 지구, 인간을 하나로 잇는 새로운 역사 | 데이비드 크리스천·신시아 브라운·크레이그 벤저민 지음 | 이한음 역 | 웅진지식하우스 | 640쪽

 

이 세상의 역사를 1년으로 잡고, 빅뱅을 1월 1일 자정, 현재를 12월 31일 자정이라고 했을 때, 인류의 역사는 마지막 1분에 불과하다. 인류는 어떻게 그토록 단기간에 지구에서 가장 우세한 종으로 거듭났을까? 성장과 혁신을 일으키는 원동력은 무엇인가? 세계는 어떻게 연결되는가? 앞으로 100년, 우리가 마주할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어느 때보다 불확실성이 높아지고 수많은 도전에 직면한 지금, 우리에게는 세상을 거시적으로 바라보게 해줄 빅 히스토리라는 틀이 절실하다.

다양한 시대, 문화권에 보편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거대사를 정립하려는 시도는 훨씬 이전부터 이어져왔지만, 기록이나 구전, 추론에 의존했다는 분명한 한계가 있었다. 빅 히스토리는 자연과학과 인문학을 절묘하게 결합시킴으로써 그 한계를 뛰어넘었다. 방사성 연대 측정법이나 우주배경복사, 판구조론 같은 과학적 발견을 바탕으로 호모사피엔스의 출현 이전의 생명의 진화, 지구의 생성, 우주의 탄생까지 생생하게 복원해내며 역사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젖혔다. 이는 인간과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의 혁명을 불러왔다. 인류의 역사는 지구 전체, 나아가 우주의 역사 일부분이라는 사실뿐 아니라, 거대한 우주 속에 ‘나’와 ‘우리’가 어디쯤 위치해 있고 어떻게 상호작용을 이루는가를 일깨워준 것이다.

1953년 DNA 구조가 발견되면서 생물학은 자연 세계의 변화를 훨씬 정확히 추적하고 설명하기 시작했다. 1960년대에는 지질학에 판구조론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출현했다. 이 이론은 지구 표면이 시간의 흐름 속에서 근본적으로 변해왔음을 보여주었고, 왜 어떻게 변했는지를 설명하는 데도 기여했다. 1960년대에 우주배경복사가 발견됨에 따라 대다수 천문학자들은 우주가 까마득한 옛날에 엄청난 ‘폭발’로 생성되었고 시간이 흐르면서 진화했다는 주장을 받아들였다.

사람들은 갑자기 과거를 새로운 방식으로 생각해야 했다. 지난 수천 년 동안의 인류 역사만 살펴보는 대신 생물권, 지구, 우주 전체의 역사를 포함하는 100억 년이 넘는 과거를 연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과거의 모든 역사를 재구성할 수 있었다!

유라시아는 일찍부터 문명이 융성한 반면, 왜 아메리카는 그렇지 못했을까? 15~16세기 최고의 문명과 부를 자랑하던 중국은 왜 산업화에 이르지 못했을까? 20세기 냉전을 주도한 소련이 100년도 못 되어 무너진 이유는 무엇일까? 특정 사건이나 민족, 국가, 지역에 초점을 맞춘 기존의 역사관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거대한 질문에 빅 히스토리는 답을 건네준다. 지리학, 생물학, 고고학, 인류학, 경제학 등 다양한 학문 분야를 망라하며 인류 문명사의 추세와 혁신의 근원을 거시적으로 살피기 때문이다. 어느 하나의 학문적 관점으로 바라볼 때에는 알 수 없는, 말 그대로 모든 것의 기원을 다루는 빅 히스토리로만 얻을 수 있는 새로운 통찰이다.

이 책은 빅뱅, 별의 탄생, 원소의 생성, 태양계 형성, 생명의 출현, 호모사피엔스의 등장, 농경의 시작, 근대혁명과 인류세의 도래라는 8가지 문턱을 중심으로 138억 년에 걸친 거대한 흐름을 추적한다. 문턱(threshold)이란 빅뱅 이후 우주가 새로운 실체의 출현을 통해 점차 다양해지고 복잡해진다는 전제 아래, 중대한 전환이 일어나는 국면을 의미한다. 이 8개의 문턱을 이정표 삼아 따라 가다 보면 우주와 지구, 생명, 인류 문명의 장대한 역사도 한눈에 이해할 수 있다. 우리의 우주관이 어떻게 변해왔는지, 태양과 지구는 어떻게 지금의 모습에 이르렀는지, 인류의 공통 조상 중에서 왜 호모사피엔스만 살아남았는지, 농경이 가져온 변화는 무엇인지, 세계는 어떻게 서로 연결되었는지, 혁신은 어디에서 나오는지 등에 관한 깊이 있는 지식과 혜안도 얻게 된다.

빅 히스토리는 과거를 살피는 데에서 끝나지 않는다. 오히려 138억 년의 역사에서 발견한 거시적 추세를 바탕으로 100년 뒤의 가까운 미래뿐 아니라 수천 년 뒤의 중간 미래, 수십억 년 뒤의 먼 미래의 모습까지 전망한다. 그중에서도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100년 뒤의 근미래 예측이다. 기후 변화, 물 부족, 생태계 종수 감소, 화석연료의 고갈,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소비와 자원 부족, 세계 인구 증가, 전쟁 등. 사실상 미래형이라기보다 현재 진행형에 가까운 문제들이라 정신이 번쩍 뜨일 수밖에 없다. 수많은 디스토피아 소설에서 예견하는 것처럼 결국 인류의 운명은 자멸을 향해 흘러가고 있는 것일까?

이 책의 저자들은 불길한 추세와 함께 희망적인 추세를 함께 제시하며 “그래도 아직은 희망이 있다”는 여지를 남긴다. 그리고 빅 히스토리야말로 우리가 마주한 전 지구적 문제를 해결할 틀을 제공해줄 수 있다. 앞서 언급한 문제들은 어느 한 나라나 특정 인물의 노력만으로 결코 해결할 수 없다. 하나같이 국제적 협력과 인류 모두의 지혜를 동원해야 하는 일들이다. 빅 히스토리는 인류가 지구 생물권의 한부분이며, 나아가 태양계, 우주의 한부분이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이는 인류가 모든 것과 연결되어 있는 진정한 의미의 운명 공동체임을 일깨우며, 우리가 인류애를 갖고 책임 있게 살아나갈 방도를 찾도록 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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