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약(僞藥, placebo)의 효과와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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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약(僞藥, placebo)의 효과와 진실
  • 김환규 편집기획위원/전북대·생리학
  • 승인 2023.01.14 0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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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환규의 〈과학에세이〉

 

특정 질병에 활성 성분이 없는 물질로 거짓 치료하는 데 사용되는 물질을 ‘위약(placebo)’이라 하는데, 대표적인 예로 설탕 알약이나 생리식염수를 들 수 있다. 위약 사용에 관한 사례는 세계 제2차대전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마취과 의사인 비쳐(Henry Beecher)는 부상 군인들에 대한 수술을 행하면서 통증 완화제인 모르핀이 고갈됐을 때 생리식염수를 대신 투여했다고 기록한 바 있다. 비첨(Thomas Beecham)은 군인들이 단지 생리식염수만을 투여받았을 때도 모르핀을 투여받았다고 믿으면 통증이 상당히 완화되었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위약은 일부 집단에는 활성 성분이 들어있는 약품을 처리하고, 다른 집단은 위약을 처리하는 치료 및 약품 연구에 중요한 역할을 갖고 있다.

이러한 유형의 연구는 약품이 효과가 있는가, 어떻게 효과를 발휘하는가를 연구하는 연구자들에게 도움을 준다. 대조집단 환자에 관한 연구에서 피험자들은 자신들이 적절한 처방을 전혀 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위약 효과는 환자 집단이 실제 약품의 효과와 같은 결과를 초래할 때 일어난다. 하버드 의과대학의 커시(Irving Kirsch) 교수에 의하면, 위약 효과는 조건반사(conditioned response)에 의해 일어난다. 커시는 “파블로프의 개들이 종소리를 음식과 연관하여 학습한 것과 전적으로 같다”라고 말하였다. 놀랍게도, 의학의 일부 영역에서는 위약 자체가 환자들에게 임상적 치료 효과를 제공하기도 한다. 위약 효과는 강한 생리 및 약리적 배경을 갖고 있으며, 약품 개발 및 치료에 자주 사용되고 있다.

두통으로 고생하는 300명을 모집한 다음, 100명씩 세 집단으로 나누어 수행했던 위약 연구 결과를 보자. 첫 집단의 참가자들에게는 아무런 처치를 하지 않았고, 두 번째 집단에는 통증을 완화하는 새로운 약품을 처치한다는 것을 알렸으며, 실제 이 집단이 투여받은 약품은 통증 완화제인 아스피린과 코데인이었다. 세 번째 집단의 참가자들에게는 두 번째 집단에서 행한 것과 같은 안내를 하였으나, 실제로는 설탕 알약만 제공하였다. 한 시간 경과 후 참가자들에게 두통 정도를 적어내도록 한 결과,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은 집단 중 20명에서 두통이 사라졌고, 두 번째 집단에서는 90%의 참가자가 두통이 사라졌다고 답했다. 새로운 약품을 투여했다고 알렸으나 실제로는 설탕 알약을 받은 세 번째 집단에서는 55%에서 두통이 사라졌다고 답했다. 이 결과를 보면, 설탕 알약을 받은 참가자들이 위약 효과를 경험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효과적인 처치를 받았다는 신념이 거짓 처치를 받았음에도 각 개인에게 효과를 발휘한 것이다.

위약의 작용에는 엔도르핀이나 도파민 같은 행복감을 유도하는 신경전달물질의 증가를 포함한 신경생물학적 반응이 포함되어 있다. 하버드 의과대학의 캡척(Ted Kaptchuk) 교수에 의하면, 위약은 뇌가 신체에 더 좋게 느끼도록 말하는 명령어로 작용한다. 캡척은 자신의 연구에서, 한 집단은 약품명이 적힌 편두통 약을 제공하였고, 다른 집단에는 위약이라 적힌 것을, 세 번째 집단에는 아무것도 적히지 않은 것을 제공하였다. 그 결과, 위약 처리 집단이 실제 치료약을 복용한 집단과 비교하여 약 50%가 통증 완화 효과를 보였다. 캡척은 이 반응을 이끄는 동력이 약품을 복용한 단순한 행동이라고 추론했다. 즉 사람들은 긍정적인 치료 효과로써 약품을 먹는 의식과 연관되어 있다고 지적하였다. 피험자들이 실제 치료약이 아닌 것을 알고 있는 경우조차 약품을 복용하는 것 자체가 치료되리라 생각하도록 뇌를 자극한다는 의미이다.

앞 연구의 첫 번째 집단에서 20명은 자연적으로 치료됐는데, 이것은 알지 못하는 이유로 두통이 완화된 것이기 때문에 위약 효과가 아니다. 한편, 위약 효과는 자기-기만의 산물이 아니다. 심리학자인 브라이니(Faith Brynie)에 의하면, 위약 효과에 의한 치료율은 15~72%에 이른다. 위약 효과는 통증과 감정 같은 자가-인식 현상에만 한정되지는 않는다. 실제로 천식 환자가 위약을 복용할 때 기도가 덜 수축하는 것과 같은 실재적 약리 효과가 나타나기도 한다.

 

미국 식품의약청(FDA)은 신약을 출시하기 위해서는 신약 후보물질이 위약 처리 집단보다 효능이 좋다는 결과를 요구한다. 그러나 위약 효과는 강력하여서 많은 신약후보 물질이 위약 처리 집단보다 더 나은 효과를 얻지 못할 경우가 많으므로 신약 개발이 무척 어렵다. 위약은 적절한 활성 물질을 이용할 수 없을 때 희망을 줄 수 있다. 위약은 면역계, 호르몬과 신경계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하여 효과를 발휘한다. 위약을 긍정적 기대를 일으키는 행동과 심리·생리적 상호작용을 통해 희망을 제공하는 것으로 정의하면, 위약은 전통적 약품의 치료 효과를 향상할 수 있을 것이다. 위약 효과가 과학적 배경을 갖고 있음이 확인되었기 때문에 미국 의사협회(AMA)는 위약을 치료 효과를 향상하기 위해 또는 환자가 동의하면 표준 치료 약품과 함께 사용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안내하고 있다.

치료 또는 치료 방법이 효과를 발휘할 것이라는 믿음인 위약 효과는 긍정적인 사고보다 훨씬 강력하다. 인간의 마음은 강력한 치료 도구가 될 수 있다. 인간의 뇌가 자기 신체를 설득한다는 ‘거짓 치료’ 개념은 오랫동안 치료에 기여해왔다. 캡척 교수에 의하면, 위약은 뇌와 신체 사이에 강한 연결을 형성하여 함께 작용하도록 한다. 위약은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거나 종양의 크기를 축소하지는 않지만, 통증의 인식같이 뇌에 의해 조절되는 증상에 작용한다. 

의사를 찾아온 환자는 빈손으로 집에 가는 것을 원치 않는다. 치료를 담당하던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환자에게 일부 유형의 알약을 제공하여 그들의 기대를 충족시켰을 것이다. 독일 의학사연구소의 쥐테(Robert Jütte) 교수에 의하면, 18세기의 의료 행위에서 위약을 처치한 주된 이유는 환자의 요구와 그들의 기대를 충족시켜주기 위해서였다. 이런 현상은 현재에도 지속되고 있는데 시카고 지역의 의료기관에 대한 WedMD 조사에 따르면, 조사에 참여한 의사의 거의 절반이 치료 과정에서 위약을 사용했다고 답하였다. 커시에 의하면, 위약은 그 자체로 뇌가 자신의 내인성 아편 유사물질을 분비하도록 하는 생리 효과를 나타낸다. 아편 유사물질의 방출은 통증반응을 억제하므로, 실험적으로 피험자에게 내인성 아편 유사물질을 봉쇄하는 물질을 투여하면 위약 효과는 멈추게 된다. 

위약 효과는 자연적인 치유를 일으키는 심리·생물학적 현상이다. 위약 효과는 심리적 배경에 의해 유도되거나 다른 다양한 시스템을 갖고 있다. 위약 효과는 엔도르핀, 카나비노이드와 도파민 같은 신경전달물질을 포함하는 신경생물학적 기작과 전전두엽 피질 및 편도체 같은 뇌 부위의 선택적이고 정량적인 활성화에 의존한다. 위약에 긍정적으로 반응하는 사람들에게서 내인성 아편 유사물질의 방출이 일어나는 뇌 영역의 활성이 증가되었다. 엔도르핀은 뇌에서 진통제로 작용하는 내인성 아편 유사물질이다. 연구자들은 뇌 영상을 이용하여 위약과 약물 처리 집단에서 아편 유사물질 수용체가 활성화되는 영역을 확인하였는데, 일반 약품도 이런 경로를 통해 작용한다. 많은 경우, 위약 효과는 긍정적 기대감에 의해 일어난다. 기대감은 불안감의 감소와 보상회로의 활성화와 같이, 서로 다른 작용을 통해 작용한다.

긴장성 두통이 있는 환자에게 자신이 신뢰하는 의사가 두통을 치료할 것이라 확신하는 약품을 처치했을 때 환자들의 기대감은 그들의 스트레스를 감소시키게 된다. 스트레스는 긴장성 두통의 유발인자이기 때문에 위약 반응의 마법은 신비한 현상이 아니다. 고도로 동기를 부여받았거나 기대치가 높은 사람들에 대한 위약 처치는 효과가 더 뛰어나다. 최근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비싼 약품을 여러 번 처방받은 환자는 훨씬 치료 효과가 좋았는데, 이것은 환자에게 좋은 처치를 하였다는 메시지를 전달하였기 때문이다.

위약 효과에는 학습도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강력한 위약 효과는 조건화 과정을 통해 유도되기도 한다. 많은 사람이 개에게 먹이를 주기 전에 벨을 울리면, 개들이 침을 흘리는 파블로프의 조건반사에 익숙할 것이다. 결국, 종소리가 울리면 개들은 먹이를 받지 못할 때조차도 침을 흘리게 된다. 이것은 고전적 조건화 또는 학습 반응을 일으키는 두 자극 사이에 연상을 형성하게 만든다. 커시 등은 이와 같은 조건화 원리를 사용하여 척추 수술 후 환자에게 통증 완화제의 사용을 경감시킨 사례를 보고하였다. 또한 각 개인의 유전자 역시 위약 처리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즉, 일부 사람들은 위약에 더 잘 반응하는 유전적 소인을 갖고 있다. 위약과 위약-연관 효과는 또 다른 자가-조절 과정과 연관되어 있으며, 신체의 방어체계로서 진화 과정 동안 출현 된 것으로 여겨진다.


김환규 편집기획위원/전북대·생리학

전북대 생명과학과 교수. 전북대 생물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University of California, Davis 교환교수, 전북대 자연과학대 학장과 교양교육원장, 자연사박물관 관장 등을 역임했다. 저서로는 『생물학 오디세이』, 『생명과학의 연금술』, 『산업미생물학』(공저), 『Starr 생명과학: 생명의 통일성과 다양성』(역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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