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대학 자율성 관련 논의의 특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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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대학 자율성 관련 논의의 특징은?
  • 고현석 기자
  • 승인 2023.01.14 0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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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DI 이슈페이퍼] 한국 대학 자율성에 대한 논의 분석

 

대학 자율성은 대학의 역사만큼이나 오랫동안 관심을 받으며 논의되어온 주제이다. 대학 자율성이 고등교육에서 중요한 이유는 대학은 학문적 자유 속에서 교육의 다양성과 유연성을 추구할 수 있고, 학문의 자유는 대학의 자율성이 전제될 때 실현된다는 인식 때문일 것이다. 

최근에는 대학 자율성이 대학의 교육 성과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그 필요성이 더욱 조명받고 있다. 2000년대 이후로, OECD를 중심으로 한 세계 고등교육은 대학의 자율성과 책무성을 함께 높이는 방향으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여기서 책무성의 핵심은 대학이 국가의 일부로서 교육, 연구, 봉사라는 대학의 기능을 수행할 때 사회적 요구를 일정 수준 충족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대학의 책무성 강화는 대학 교육의 질에 대한 관리를 수반하고, 이를 추구하기 위해 정부는 대학 운영에 간섭하게 되므로 일반적으로 책무성과 자율성은 상충되는 개념으로 이해되기도 한다. 그러나 대학의 학문 발전이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대학에게는 자율성과 책무성이라는 가치가 동시에 부여되고, 대학의 자율성은 책무성을 실현하는 범위 안에서 추구되었다.

최근에는 공공성(公共性: publicness)이라는 가치가 고등교육 정책의 근간으로 더해졌다. 신자유주의적 교육정책, 즉 대학 간 경쟁을 통한 질적 성장과 책무성 확보와 경쟁에서 뒤쳐진 대학의 자연적 퇴출 방식을 통한 고등교육의 질 제고가 기대한 만큼 이루어지지 않자 공공의 주체로서 고등교육에 대한 논의가 이어지게 된 것이다. 이로 인해 대학 자율성은 책무성 외에 공공성이라는 가치도 함께 추구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게다가 윤석열 정부는 2022년 5월, 국정과제로 ‘83. 더 큰 대학자율로 역동적 혁신 허브 구축’의 내용을 포함하여 대학 자율성 강화를 고등교육 정책의 기본 방향으로 설정했다. 하지만 국내 고등교육 연구에서 대학 자율성에 대한 학문적 논의는 매우 제한적으로 이루어졌다. 

법의 영역에서는 법해석적 관점이나 판례 분석을 중심으로 연구가 수행되었으나, 고등교육 영역에서는 대학 관계자의 관점에서 자율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당위적 입장을 표명하는 것이 주를 이루었다. 따라서 국내 상황에 부합하고 효율적인 대학 운영에 도움이 되는 대학 자율성의 모습을 그리기 위해서는 균형 있는 관점에서 대학 자율성에 대한 개념을 구체화하고, 이를 토대로 대학 자율성에 대한 논의가 어떻게 이루어졌는가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 

이에 한국교육개발원(KEDI)은 국내에서 이루어진 대학 자율성 관련 논의의 특징을 분석하는 연구보고서를 이슈페이퍼 〈한국 대학 자율성에 대한 논의 분석〉(연구책임자: 우선영)으로 발간했다. 이 연구는 정부가 고등교육 혁신을 위해 대학규제 개혁, 학사제도 유연화 등 대학 자율성 강화를 정책의 기본 방향으로 설정한 시점에서 대학 자율성의 의미와 그간 대학 자율성과 관련한 논의의 특징을 분석하는 것을 목적으로 했다. 이를 위해 대학 자율성의 의미를 대학 자율성의 주체, 대상, 내용의 관점에서 분석했고, 대학 자율성의 세부 영역을 고찰했다. 대학 자율성의 법적 토대와 5・31 교육 개혁 이후 발표된 고등교육 정책 중 대학 자율성 관련 정책을 개관하여 한국 대학 자율성의 특징을 분석하고, 언론 분석을 통해 한국 대학 자율성에 대한 논의가 어떻게 진행되었지 분석했다.

 

◇ 연구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 대학 자율성에 대한 개념적 논의

대학 자율성은 대학이라는 주체가 외부의 영향력에 대해 독립적으로 스스로를 규정하고 실행하는 능력으로 정의할 수 있다. 자율성을 발휘하는 주체는 총장, 대학평의원회, 대학의 구성원(교수, 직원, 학생)이며, 이들은 주로 정부, 사립대학의 경우 이사회라는 대상으로부터 자율을 추구한다. 대학 자율성은 광범위하게는 학문의 자유를 그 내용으로 할 수 있지만, 구체적으로는 대학의 목표 설정, 그에 따른 운영 방식에 대한 결정에서 발휘될 수 있다. 이러한 대학 자율성은 국가, 사회, 문화적 맥락에 따라 다양하게 정의되고, 실현될 수 있다. 

▶ 대학 자율성의 영역

유럽을 중심으로 한 선행연구 분석을 통해 대학 자율성을 조직, 학문, 인사, 재정의 영역으로 세분화하여 살펴보았다. 조직자율성은 총장, 대학 이사회, 대학 법인 등의 의사결정 구조, 학문 조직에 대한 사항을 포함하고, 재정자율성은 재원 운용, 학교 재산, 수업료의 내용을 포함한다. 인사자율성은 교직원의 운용, 학문자율성은 학생정원, 학생 선발, 학위 과정 설계, 교육의 질관리에 대한 사항을 포함한다. 이러한 대학 자율성의 세부 영역에 대한 구분은 각 국가의 맥락 속에서 자율성의 정도를 파악하고, 그 결과를 고등교육 정책 수립을 위한 기초 자료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 대학 자율성의 법적 토대

한국의 대학 자율성에 대한 법적 토대를 검토한 결과 헌법에서 학문의 자유가 대학의 자치를 보장하고 있기는 하지만 대학의 자치 혹은 자율성이 무한정 보장되는 것은 아니며 법에 저촉되거나 법을 어길 경우 대학의 자율성은 제한될 수 있다. 다만 대학의 행정행위를 포괄적으로 허용하는 방식으로 규정된 현행 교육법령체제는 대학 자율성을 위축시킬 수 있으므로 대학 자율성 제고를 위해 교육법령에서는 해서는 안 되는 것을 규정하되 규정되지 않은 것은 대학의 자율에 맡길 필요가 있다. 

또한 고등교육법에서 학교가 교육부 장관의 지도・감독을 받도록 되어 있는 것, 학칙 기재사항 등을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한 것은 대학의 자율성을 저해할 수 있으므로 책무성과 자율성이 함께 제고될 수 있는 방향으로 자율성 확대가 이루어질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 대학 자율성 정책 개관 

대학 자율성의 기초가 되는 5・31 교육개혁 이후 발표된 고등교육정책을 조직, 학문, 인사, 재정의 자율성 영역으로 나누어 분석한 결과, 우리나라 고등교육정책은 입학 정원과 학생선발이 속한 학문 자율성에 대한 정책과 재정지원과 재정운용, 등록금이라는 재정자율성 관련 정책이 주를 이루는 것을 알 수 있다. 대학 자율성 강화를 명시적 목표로 설정하고 발표 및 추진하면서 많은 부분에서 규제 완화를 실현했으나, 이는 대학의 절차적 자율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 한국 대학 자율성 관련 논의의 특징

2008년부터 현재까지 대학의 자율성과 관련한 언론 기사 분석을 실시한 결과, 대학, 교육부, 학생, 정부, 자율, 총장 등의 단어가 높은 빈도로 나타난 반면, TF-IDF 분석 결과에서는 교육부, 서울대, 로스쿨, 당선인, 총장 등의 값이 높은 것으로 확인되었다. 텍스트 토픽 모델링 분석 결과, 대학입시, 대학구조조정, 국립대 혁신, 대학 등록금, 국립대 법인 등의 주제가 대학 자율성과 관련하여 언론 기사에서 다룬 주요 주제로 확인되었다.

■ 이상의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이슈페이퍼는 다음과 같은 시사점을 제시하고 있다.

ㅇ 첫째, 대학 자율성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대학 자율성의 필요성에 입각하여 분명한 목적을 설정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 대학 자율성의 논의의 특징 중 하나는 대학의 자율성이 필요한 이유에 대한 접근이 부족하고, 대학 자율성을 무조건적인 대학 규제 완화 및 규제 혁신으로 이해하는 경향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대학 자율성이 필요한 이유에 대한 깊은 고찰을 토대로 정책을 구체화할 때, 그 정책은 대학의 자율성 자체가 아닌 고등교육의 발전을 목적으로 한 정책이라는 보다 확고한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대학 자율성의 목적을 설정할 때, 대학의 자율성이 누구를 위한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동반되어야 할 것이다. 이때 대학 자율성의 주체를 대학 거버넌스 안에서 대학 총장, 대학평의원회, 이사회 교수, 직원, 학생 등과 같이 분리해서 생각할 수 있다. 이들을 모두‘대학’이라는 범위 안에 포함하여 정책의 목표를 모호하게 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ㅇ 둘째, 대학 자율성 강화는 대학의 사회적 책무성과 함께 추진될 필요가 있다. 대학은 연구, 교육, 봉사의 역할을 수행하며 학생, 학부모, 지역사회, 국가와 연결되어 있는 존재이고, 그 과정에서 외부에 대한 책임을 진다는 점에서 자율성과 책무성을 배타적인 관계로만 볼 수 없다. 전문성을 가진 대학은 자신들을 존재할 수 있도록 하는 사회의 필요에도 책임을 가진다는 Ashby의 지적과 마찬가지로 대학은 자신들에게 부여된 임무를 수행하여야 할 뿐만 아니라 이해관계자인 사회에도 책임을 진다. 

ㅇ 셋째, 대학의 자율성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대학의 자율 역량 강화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대학의 자율성은 자율성에 기반한 대학의 활동이 선(善, the good)을 창출할 때에 그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다. 따라서 대학은 공공의 선을 발생시키기 위해 스스로의 활동을 조절하기 위한 노력과 능력이 필요하다. 대학 정원 자율화 정책을 볼 때, 스스로 대학의 질 관리를 할 수 있는 여건이나 자원이 준비되지 않은 대학에게 학생정원에 대한 자율성이 갑작스럽게 주어질 경우 대학은 입학정원을 무분별하게 늘렸던 것을 알 수 있다. 대학의 자율 역량 정도를 수시로 확인하고 이를 강화하려는 노력은 대학의 자율성 강화를 위한 필수 조건이라 할 수 있다. 

이와 더불어 대학의 자율성에 대해 협의하고 스스로의 자율적 역량을 확인할 수 있는 과정을 추진할 수 있는 대학 자율성을 위한 기구가 필요하다. 이 기구는 자율적 협의체인 동시에, 대학의 자율성의 목적, 추진방향, 자율역량 측정 도구 개발 등 연구의 기능을 가지고 있으며, 연구 결과 및 협의사항은 정부의 고등교육 정책 개발 과정에 참여할 수 있을 것이다. 

ㅇ 마지막으로 대학재정지원사업의 방향을 재설정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 대학의 자율성은 헌법에서 그 근거를 찾을 수 있고, 교육기본법과 고등교육법 등 관련 법령 또한 헌법의 기본원리에 따라 제정 및 운영됨에 따라 대학의 운영에 대한 형식적 자율성은 보장되어 있다. 그러나 재정 자립도가 낮아 정부의 대학재정지원 사업에 참여할 수밖에 없는 대학의 입장에서 재정 지원 사업은 학과 통・폐합, 학생정원과 같이 대학이 자율적으로 결정해야할 사항을 재정지원과 연계함에 따라 대학의 특성화뿐만 아니라 자율적 발전 능력을 저해한다. 따라서 대학재정지원 사업은 대학 교육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대학이 정체성을 분명하게 하여 고유한 발전 전략을 갖기 위해 결정하는 학과 및 정원에 대한 사항은 대학의 결정 사항으로 두어야할 것이다.

대학재정지원 사업이 대학의 단기간 성과와 연결될 때 대학의 자율성을 위협할 수 있다. 신현석은 ‘획일적 기준에 의한 평가방식으로 오히려 대학을 획일화하고 대학의 자율적 조정기능을 약화시킨다’고 지적한 바 있다. 신재철은 정부의 선택적 재정지원은 정부와 대학의 관계를 지배와 종속의 관계로 고착시키고, 대학의 구조와 운영을 획일화시킨다는 측면에서 문제가 있음을 지적하였다. 대학의 교육성과는 단기간 성과부터 장기간 성과, 정량적 성과와 정성적 성과 등 다양한 유형으로 존재하며, 이 중 어느 한쪽으로 치우쳐서는 안 될 것이다. 

이슈페이퍼는 이번 연구가 고등교육정책의 기본 방향을 대학 자율성 강화로 설정한 시점에서 대학 자율성에 대한 개념, 세부 영역, 그간의 논의 내용을 분석하여 대학 자율성에 대한 기초 토대를 다졌다는 점에서 의의를 지닌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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