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 참여 인문학: 지역 대학 재편·생존·미래를 위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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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니어 참여 인문학: 지역 대학 재편·생존·미래를 위한 기획
  • 고현석 기자
  • 승인 2023.01.14 02: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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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연구보고서]

■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인문정책연구총서_ 〈시니어 참여 인문학: 지역 대학 재편·생존·미래를 위한 기획〉

 

오늘날 대학은 안팎으로 극심한 변화를 직면하고 있다. 첫째, 출산율 저하에 따른 학령인구의 
감소이다. 이는 필연적으로 대학의 신입생 미충원으로 이어진다. 이미 2022년 입시에서 정원을 채우지 못한 ‘미달 대학’은 2021년 대비 9개교에서 19개교로 크게 늘어났다. 둘째, 이른바 디지털 대전환(digital transformation)에 따른 지식 수요의 변화이다. 급변하는 사회 환경 속에서 대학이 기존에 제공해온 지식과 지식 탐구의 방법은 그 실효성을 의심받고 있다. 또한 코로나19 팬데믹이 가속화한 온라인 교육의 보편화와 지식 전달 매체의 다변화는 대학 교육과 교수자의 지식정보 독점력을 해체하고 있다. 이처럼 사회 전방위적으로 교육 수요보다 공급이 늘어난 상황에서, 과거에 학생을 ‘선발’했던 대학은 이제 학생의 ‘선택’을 기다리는 입장이 되었다.

지역 대학의 경우는 위기를 더욱 심각하게 체감하고 있다. 수도권으로 인구와 일자리, 문화기 반 등의 자원이 집중되는 이른바 ‘수도권 블랙홀’ 현상에 따라 지역 대학에 대한 학생들의 선호는 급격하게 줄어들고 있다. 2022년 정시모집 미달 대학 중 15곳이 지역 소재 대학이라는 사실이 이를 입증한다. 지역 대학의 몰락은 지역 경제의 침체로 이어지고, 이는 다시 학생들의 지역 대학 외면을 유발하는 악순환의 시작이 될 수밖에 없다.

지역 대학 내에서도 인문학 관련 전공은 기피 대상이다. 눈앞의 쓸모와 실용을 중요시하는 사 
회 분위기 속에서 인문학 전공은 취업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인식이 팽배해 있기 때문이다. 지금의 지역 인문대학은 학령인구 감소, 지방 소멸, 인문학 위기라는 삼중고 속에 놓여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지역 인문대학의 위기라는 진단은 다른 관점에서 보면 변화의 강력한 동인(動因)이 등장했음을 의미한다.

가령 학령인구 감소에 맞서, 이미 대학에서는 성인 학습자의 평생교육 기능을 강화하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지역의 경우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청년층의 이탈이 가속화되는 것에 일차적인 이유가 있지만, 은퇴자 등 중장년층, 노년층이 지역으로 유입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러한 상황을 고려하면 지역 대학은 중장년층과 노년층을 포함하여 전 연령을 대상으로 하는 평생교육기관을 겸한 고등교육기관으로 진화하는 시도가 필요한 시기가 되었다.

이에 경제·인문사회연구회는 지역 인문대학에서 실현 가능한 ‘시니어 참여 인문학’ 프로그램의 구체적인 기획과 정책안을 제안하는 정책연구보고서 <시니어 참여 인문학: 지역 대학 재편·생존·미래를 위한 기획>(연구책임자: 김민호 한림대 교수)을 지난달 발간했다.

이 연구의 목적은 지역 인문대학의 재편을 통한 생존과 미래 기획을 위한 구체적인 실천 전략으로 ‘시니어 참여 인문학’ 프로그램을 제안하는 데 있다. 지역 인문대학은 취업과 가시적 실용성의 추구가 팽배한 현 대학 사회의 분위기 속에서 외면 받아왔으며, 학령인구 감소・지방  소멸이라는 외부의 위기까지 더해져 바야흐로 존립의 기로에 놓여 있다.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동령(同齡)의 입학자원을 대상으로 한 ‘강단 인문학’을 넘어, 지역 내 생활형 학문공동체를 구축・성장시킬 수 있는 지식 거점으로서 대학의 역할을 새롭게 규정할 필요가 있다. 이 연구는 중장년, 노년층을 포함한 시니어 계층을 대학 제도 내로 견인할 구체적인 제도와 방안을 마련함으로써 지역 인문대학의 생존을 위한 돌파구를 모색하고 인문학의 사회적 역할을 새롭게 모색하기 위한 시도이다.

이 연구는 연구의 정책 제안을 실천으로 이어가기 위해 연구대상을 강원도 춘천시와 연구진이 소속된 지역 대학으로 구체화했다. 춘천은 젊음과 낭만을 상징하는 도시인 동시에 은퇴자 및 고령인구 증가폭이 매우 높은 지역으로, 인문학 프로그램에 대한 수요가 적지 않다. 그러나 제공되는 프로그램은 대체로 일회적 특강과 체험에 그치고 있으며, 지역 내 여러 기관이 산발적으로 주관하여 지속성 또한 부족한 실정이다. 이러한 지역적 특성을 고려한 구체적인 연구 목표는 첫째, 지역 인문대학의 고사(枯死)를 막기 위한 정책 기획 및 제안, 둘째, 지역 기반・인문학 기반 학문 공동체의 거점으로 지역 인문대학의 역할 재정립, 셋째, 다른 지역 및 국가와의 네트워크를 통해, 이번 연구에서 만들어진 지역 대학의 인문학 교육 모델을 확산시킬 수 있는 가능성 모색이다.

 

 

【연구보고서 요약】

 

■ 시니어 인문학 사례분석

국내의 경우, 「평생교육법」과 「평생교육진흥기본계획」 등 정책과 법안에 따라 대학에서 평생교육을 수행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이 마련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코로나 19 팬데믹의 영향으로 평생학습기관 및 시설의 폐쇄가 이어졌고, 최근 몇 년간 평생교육 참여자 비율은 지속적으로 감소해왔다. 고령자의 경우 팬데믹의 영향을 더욱 직접적으로 받기에 감소세가 더욱 컸다. 평생교육에 참여하는 성인학습자들은 주로 지식·인력개발형태의 평생교육기관을 통해 학습에 참여했고, 대학(원) 부설기관의 경우 참여율이 저조했다. 

또 60대 이후 고령자의 경우 직업능력향상을 위한 평생교육 참여보다는 인문교양 영역의 참여율이 유의미하게 증가했다. 이들은 건강관리, 심리적 만족 및 교양 함양, 사회 참여와 친목 증진의 목적으로 평생교육에 참여하는 양상을 보였다. 이를 통해 시니어 계층을 위한 평생교육으로서 인문학 교육의 필요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한편 국내에서는 지자체와 대학이 협력하여 시니어 평생교육을 주관하는 움직임이 활발했다. 지자체가 평생교육의 주체가 되는 경우에도 ‘대학’이라는 이름으로 명예학위제 등을 운영하는 경우가 많았다.

해외 사례로는 미국과 캐나다, 일본과 독일의 평생교육 제도와 교육 프로그램을 살펴보았다. 국내외 사례를 통해 도출된 시사점은 다음과 같았다. 첫째, 시니어 학습자의 요구를 반영해 교육의 방향 설정을 분명히 하고, 교과과정을 다양화・내실화해야 한다. 둘째, 지역에 특화된 교육과정을 마련하고 지역 내 기관과의 적극적인 협력하에 평생교육 체제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셋째, 전문 인력의 확보 및 인식 전환,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 이는 대학의 우수한 인적, 물적 자원을 지역에 개방함으로써 가능한 것들이다. 그러므로 대학은 지자체와의 연계 협력과 예산 지원을 통해 시니어 평생교육의 질 향상을 위해 노력할 의무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 시니어 인문학 수요자 요구 분석

강원도 춘천 지역의 시니어 평생교육 학습자를 대상으로 설문을 수행한 결과에 따르면 춘천의 시니어 계층은 공무원, 교육직 은퇴자 비율이 높고, 그에 비례해 학력 수준 또한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대학(원) 부설기관에서 평생학습을 경험한 경우가 가장 많았고, 인문학・스포츠 영역의 프로그램을 선호했다. 평생교육에 참여하는 목적은 자기계발・건강증진・인적교류의  순으로 나타났으며 양질의 다양한 프로그램에 대한 요구가 높았다.

■ 시니어 인문학 현장 방문과 인터뷰

춘천시립도서관과 국립춘천박물관의 관리책임자, 인문학 담당자, 프로그램 기획자 및 수강자를 대상으로 한 심층 인터뷰 결과에 따르면 답사 및 현장 밀착형 프로그램, 다른 사람을 교육하거나 실생활에서 활용 가능한 프로그램, 자신의 삶을 반추할 수 있는 프로그램, 자격증 취득이나 봉사활동에 도움을 줄 수 있는 프로그램 등이 성공적인 시니어 인문학 프로그램으로 유효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대학과 지역, 기관이 상생하기 위한 과제로 지자체의 예산 지원, 대학의 우수한 교수자 지원과 프로그램 기획, 수료증 및 자격증 발급을 통한 기타 기관과의 변별점 확보 등이 제시되었다.


■ 시니어 인문학 교육과정 모델 제안 

대학 내에 시니어 인문학 교육과정을 마련하여 운영할 수 있는 가능성을 검토하고, 세 가지 형태의 교육 모델과 운영 방식을 서술했다. 첫째, 시니어 학습자를 정원 외로 선발하여 운영하는 ‘시니어 단과대학’이다. 둘째, 대학의 기존 학제를 유지하면서 시니어를 위한 입학 전형을 추가하는 ‘시니어 특별 전형’이다. 셋째, ‘시니어 특별과정’을 개설하여 대학에서 시니어 전용 나노 디그리(Nano-degree) 과정을 운영하거나, 평생교육원에 시니어 전문 커리큘럼을 구축하는 것이다. 설문 결과 가장 호응이 높았던 것은 시니어 특별과정으로, 시니어 학습자의 부담은 덜고 대학 교육의 장점은 살리는 형태라 할 수 있다.

▶ 시니어 참여 인문학의 방향성은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첫째, 시니어를 새로운 인적자원으로 간주하는 적극적인 교육관에 기반하여 그들의 자기실현과 사회적 기여를 돕는다. 
둘째, 시니어 참여 인문학은 시니어들이 실제로 활용할 수 있는 지식, 사회 변화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돕는 지식을  제공한다. 
셋째, 지방자치단체(정책과 재정), 지역 대학(교육), 지역 기업(노동)을 잇는 선순환 구조를 마련함으로써, 시니어 참여 인문학을 지역 재생의 중심축으로 삼는다.

▶ 시니어 참여 인문학을 위한 구체적인 모델로는 다음의 두 가지를 제안한다.

① 대학 내에 나노 디그리 형태의 시니어 특별과정을 마련하고, 이를 명예학생 제도와 결합시
키는 방안. 이 경우 나노 디그리의 이수 기준은 12~24학점 이내로 하여 시니어들이 6개월에서 12개월 동안 과정을 이수하도록 한다. 성적은 P/N 방식으로 시험 없이 출석과 참여 태도를 통해 부여하고, 출석부에 등재하여 일반 학생과 같이 관리한다. 시니어 명예학생에게는 명예학생증을 발급하고, 과정을 이수할 경우 대학 총장 명의의 수료증을 제공한다.

② 평생교육원에 시니어 전문 커리큘럼을 구축하는 방안. 이 경우 기존의 평생교육원 체계를 유지하되, 다음의 네 측면에서 그 운영 방식을 크게 개선한다. 1) 지방자치단체와의 협력을 통한 재정 확보, 2) 대학 교수진의 참여를 통한 교과목의 질적·양적 개선, 3) 운동과 학습을 병행하는 학기별 커리큘럼 도입, 기수별 졸업식 및 동호회 운영 등 관리 방안의 개선, 4) 대학 총장 명의의 수료증 발급.


■ 기대 효과

이 연구의 내용과 정책 제안이 대학, 지자체, 기관의 협력 하에 실현된다면, 이는 시니어 학습 
자 개인과 대학, 지역과 사회의 차원에서 각각 다음과 같은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첫째, 시니어 학습자는 대학에서의 인문학 평생교육을 통해 자기 계발 및 교양 증진이라는 학습의 본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또 다른 시니어 학습자와의 소통과 관계 형성을 통해 사회적 존재로서의 인정 욕구 또한 충족할 수 있다. 외부 기관의 평생교육과 달리 대학의 경우 더욱 심화된 학습으로의 연계가 가능하다는 점도 장점이다. 만약 시니어 학습자의 학업 성취가 우수하고 학업에의 의지를 지니고 있다면, 해당 분야의 심화 과정이나 다른 분야로의 연계학습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둘째, 지역 인문대학은 시니어 학습자를 대학 제도 내로 적극 견인함으로써, 학령인구 감소에 
대응하고 대학의 사회적 역할을 제고할 수 있다. 대학은 지역 사회 구성원에게 학습의 장을 제공하고, 대학을 플랫폼 삼아 시니어 학습자의 네트워크가 형성될 수 있다. 이는 지역사회를 선도하는 학습공동체가 되어 지역 발전에 기여할 것이다.

셋째, 지역과 사회의 차원에서는 시니어 인문학 교육과정이 고령층의 사회적 고립을 막을 뿐만 아니라, 사회활동에 참여하는 인구의 급격한 감소를 지연시키는 데 기여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시니어 계층의 대학으로의 진입과 청년층과의 어울림이 실현된다면, 연령과 계층으로 양극화된 사회 갈등을 해소하고 세대 간 화합에도 기여할 수 있다. 이는 단지 시니어 계층에게만 한정된 효과가 아니라 그 후속 세대의 삶 또한 풍요롭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이라는 점에서 그 가치가 크다.

이상의 연구 내용과 정책 제안은 춘천을 대상으로 한 것이지만, 향후 다른 지역으로 파급될 가능성 또한 매우 크다. 학령인구 감소와 지역 소멸은 특정 시군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 다. 이제 지역 사회 내 지식 거점 플랫폼으로의 대학의 새로운 소명에 주목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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