處容舞와 五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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處容舞와 五行
  • 연호탁 가톨릭관동대 명예교수·영어학
  • 승인 2023.01.10 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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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호탁의 ‘말로 푸는 역사 기행’_ 處容舞와 五行

 

2023년 새해가 되었다. 올해는 12간지로 검은 토끼해인 계묘년이다. 그런데 언론에서 그렇다고 하니까 그런 줄 알지 왜 검은 토끼해냐고 묻는 사람을 내 주변에서는 보지 못했다. 한자문명권인 동북아시아 농경사회는 음양과 오행론을 바탕으로 자연현상을 바라본다. 여기에 상생 상극을 보태 인간사의 조화와 갈등에 대한 설명을 꾀한다. 

인간이 사는 세상에는 수많은 상징이 존재한다. 도로 표지, 음악이나 수학 부호들이 상징에 속한다. 언어도 일종의 상징이다. 감정이나 의사 전달을 목적으로 한 손짓, 얼굴 표정도 상징이랄 수 있다. 상징으로서의 언어는 말로서, 글로서 의미를 지닌다. 동양 철학, 민속학에서의 10간, 12지라는 문자 상징도 글자마다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런 관점에서 계묘년은 오행 상으로는 물, 방위로는 북쪽, 색상으로는 검은색을 상징하는 癸와 오행 상으로는 木, 동물로는 토끼, 방위로는 동쪽, 계절로는 봄, 연중 달로는 음력 2월을 가리키는 卯라는 글자의 결합이다(음력으로 매년 1월은 寅月이 된다). 때문에 계묘년을 검은 토끼의 해라고 하는 것이고, 내년은 천간 10글자와 지지 12글자 간의 60개 조합 중 癸卯의 뒤를 잇는 甲辰年이다. 따라서 아래 표에서 보듯 갑진년은 大林木과 동방, 청색을 뜻하는 甲과 中央土, 봄, 푸른색, 음력 3월, 용띠를 상징하는 辰이 결합된 푸른 용의 해가 되는 것이다. 
아래 표를 참고하길 바란다.

근래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자신에게 맞는 색상을 선택해 식품, 의상, 장신구, 인테리어 디자인 등에 적용하는 칼라 테라피 분야가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한다. 우리의 선조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오행론에 근거한 색상을 다양한 삶의 양식에 적용해 왔다. 고구려 무용총 고분 벽화 四神圖를 보면 동편에 청룡, 남방에 주작, 서쪽에 백호, 북쪽에 현무가 그려져 있다. 동방-청색, 서방-백색, 남방-붉은색, 북방-검은색의 일치된 관계를 따른 사례다.

고구려 四神圖

『삼국유사』에 실린 처용설화를 바탕으로 한 處容舞는 나쁜 기운을 몰아내고 국태민안을 기원하기 위해 해마다 섣달그믐날 궁중에서 벌인 춤판이다. 이때 동서남북과 중앙을 상징하는 五方色 옷을 입은 다섯 명의 무용수가 춤을 춘다. 오방색은 위에서 말한 四方色 외에 중앙 土를 상징하는 黃色을 포함한다. 이렇듯 인간은 살면서 매사에 의미를 부여한다. 

處容舞

그런데 처용무가 기능면에 있어 우리와는 멀리 떨어진 히말라야 고산지대에 자리했던 고대 불교왕국 라다크, 부탄 등지의 체추(tse-chu) 의식과 상당히 닮아 있다. 체추의 궁극적 목적은 불운과 악귀를 몰아내는 축귀(逐鬼)에 있지만, 오랜 전통의 축제로서 주민들 간 유대를 강화하는 사교의 장을 마련하는 기능이 크다. 때문에 한 켠에서는 종교의식이 벌어지고, 또 다른 한 켠에서는 장이 서서 생필품 사고팔며 흥정하는 소리가 유쾌하고도 왁자지껄하게 들린다. 의식에 참가하다 배가 고파지면 가난한 주머니 깊숙이 넣어둔 소액 지폐를 믿고 근처 식당을 찾아간다. 목목이라는 만두국을 사먹기 위해서다. 우리가 학교 입학식이나 졸업식날 짜장면을 사먹던 풍습이 있던 것과 흡사하다.

                      가면과 채색 의상을 걸친 승려들이 축체라는 의식을 통해 악귀를 몰아내고 있다.

글자적 의미가 ‘열 번 째 날’인 체추는 참(cham)이라고도 한다. 주로 승원의 승려들이 가면을 쓰고 참 댄스를 추기 때문이다. 처용가와 처용무의 주인공 處容 아ᄇᆞㅣ의 한자어 이름 處容의 우리말 고어 표기는 ‘쳐용’ 또는 ‘제융’이다. 이 말의 뜻은 아직 알지 못한다. 그러나 지금으로서는 엉뚱한 발상처럼 들릴 수 있겠으나 체추와 처용에 더하여 신라 2대 국왕의 시호 南解次次雄의 次次雄 또는 慈充이 연관어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의심을 품고 있다. 자충이라는 칭호는 金大問의 말대로라면 巫를 뜻하는 방언이다. 이렇듯 자충 또는 차차웅은 정치지도자이면서 동시에 종교 지도자 역할을 수행한 사람에게 붙이는 것이라고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두고 볼 일이다. 말은 사람 따라 이동하기 때문이다.  


연호탁 가톨릭관동대 명예교수·영어학

한국외대에서 영어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명지대에서 중앙아시아사 전공으로 두 번째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가톨릭관동대 관광경영학과 명예교수로 그동안 『중앙일보』에 ‘차의 고향’, 『동아일보』, 『중앙일보』, 『문화일보』 등에 칼럼 ‘문명의 뒤안, 오지 사람들’, 『교수신문』에 ‘욕망의 음식: 음식문화사’를 연재했다. 저서로는 『문명의 뒤안 오지의 사람들』, 『차의 고향을 찾아서』, 『궁즉통 영어회화』, 『중앙아시아 인문학 기행: 몽골 초원에서 흑해까지』, 『문화를 여행하다: Travel, Culture&People』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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