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하는 유다, 광기에 사로잡힌 군중 -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
상태바
질문하는 유다, 광기에 사로잡힌 군중 -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
  • 최승연 뮤지컬평론가
  • 승인 2023.01.09 22:3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최승연의 ‘뮤지컬 인사이트’

 

                                               [수퍼스타] 공연사진 (블루스테이지 제공)

앤드류 로이드 웨버와 팀 라이스 콤비가 20대에 쓴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이후 <지크수>)는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된 지 5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모던하다. 1971년 브로드웨이 마크 헬링거 극장(Mark Hellinger Theatre) 초연 당시, 공연은 예수의 생애 마지막 7일을 유다의 시점으로 재현하여 지지와 반대를 동시에 불러일으켰다. <지크수>의 핵심은 예수의 희생의 의미를 다소 ‘비꼬듯’ 질문한다는 것이다. ‘인간의 죄를 위해 대속의 제물로 바쳐진 예수,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아들 예수를 희생시킨 사랑의 하나님’이라는 성경의 중심 테마는 따라서 뮤지컬의 관심사가 아니다. 
(⁎ 한국어의 외래어 규정에 따르면 제목의 ‘superstar’는 ‘슈퍼스타’로 쓰는 것이 맞다. 그러나 이 글은 한국의 라이선스 공연을 다루기 때문에 제작사 ㈜블루스테이지에서 공식적으로 쓰고 있는 제목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를 그대로 쓰기로 한다.)

대신 예수는 로마의 식민 상태에 놓인 유대인들의 정치적 리더로 그려진다. 작품의 극적 긴장은 예수와 군중(군중에는 예수의 충실한 제자였던 시몬과 베드로도 포함된다) 그리고 유다 사이에서 형성되며, 빌라도와 헤롯, 가야바 그룹은 예수의 죽음이라는 움직일 수 없는 결말을 진행시키는 인물로 존재한다. 정치적 책임을 지기 싫은 헤롯과 빌라도 사이의 핑퐁 게임이 공연의 후반에 등장하기는 하지만, 이미 죽음을 직감한 예수는 이에 전혀 저항하지 않는다.  

작품의 모던함은 1차적으로 극적 긴장이 발생하는 방식, 즉 공연이 예수의 죽음을 해석하는 방식에서 만들어진다. 물론 ‘록 오페라’로 개발된 성스루(Sung-Through) 양식과 그 안을 채우는 웨버의 록 음악은 작품의 모던함을 언제나 감각적으로 일깨워주는 일등 공신이다. 모든 넘버는 각 캐릭터의 특성과 드라마를 명확히 보여주는 ‘대사’와 같이 들리며 정확한 구간에 배치된 리프라이즈와 음악의 모티프들은 드라마를 매우 풍성하게 만든다. 

 

                                      [수퍼스타] 공연사진: 지저스 임태경 (블루스테이지 제공) 

막이 오르기 전 예수는 자신의 운명을 예감하고 신의 길을 이미 선택한 상태다. 그러나 유다는 예수의 이 선택을 이해할 수도, 따를 수도 없다. 유다는 예수를 로마의 식민 상태에서 해방시켜줄 정치적 리더로 믿고 제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유다에게 천국보다 중요한 것은 ‘인간의 길’,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내야 할 지독한 식민의 ‘현실’이다. 그러나 현재 추종자들은 예수가 말하는 천국의 아름다움에 취해 있고 예수는 그 추종자들에게 둘러싸여 ‘수퍼스타’가 된 기분으로 신의 길을 가고 있다고, 유다는 생각한다. 

유다는 예수의 인기가 올라갈수록 그 정치적 파장은 걷잡을 수 없이 번질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유다의 눈에는 오로지 천국이라는 환상에 젖은 광신적인 군중이 보이지만, 예수는 그렇지 않은 것 같아 괴롭다. 그래서 유다는 예수에게 적대적인, 정확히 말하면 그의 ‘인기’에 적대적인 가야바에게 예수를 넘긴다. 그것은 배신이 아니라, 어떻게든 상황이 정치적으로 비화되지 않도록 취한 조치였다. 하지만 유다의 생각과 달리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증폭된다. 군중은 광기에 휩싸여 빌라도에게 예수의 사형을 종용하고 예수는 말할 수 없는 고초를 당하게 된다. 이 과정을 전부 지켜본 유다는 결국 배신자로 역사에 기록될 자신의 운명을 예감하고 다른 한편으로 스스로를 자책하는 양가감정 상태에서 정신착란을 일으키며 자살한다. 그리고 예수는 조용히 십자가에서 죽는다.  

만약 <지크수>가 유다를 이렇게만 묘사했다면, 뮤지컬은 성경에서 설명하지 않은 유다의 ‘배신’을 해석하는 하나의 텍스트가 되었을 것이다. <지크수>의 진짜 의도는 사후의 유다를 다시 무대에 불러 세우는 장면에 있다. 유다는 이 마지막 장면에서 뮤지컬이 제작될 수 있었던 최초의 넘버 ‘수퍼스타’를 마치 자신이 수퍼스타가 된 것처럼 부른다. 보통 이 장면은 유다와 천사들의 화려하고 컬트적인 쇼로 구현되는데, 그 수위는 유다의 질문 내용을 감싸며 장면의 마지막으로 갈수록 점점 증폭된다. 

 

                                               [수퍼스타] 공연사진 (블루스테이지 제공)

유다는 질문한다. 부처와 마호메트 그리고 예수 중에 진짜 수퍼스타는 누구냐고, 왜 그때 그렇게 죽었냐고, 아직도 그 죽음의 의미를 알 수 없다고, 그 희생은 무엇을 위한 것이었냐고. 그리고 또 질문한다. 당신은 사람들이 메시아라고 말한 그 사람이냐고, 자신은 정말로 알 수 없으니 알려 달라고 몇 번이나 반복한다. 무대는 유다의 반복된 질문을 조명과 음악과 안무의 소용돌이로 표현하며 완전한 클라이맥스로 넘버를 끝낸다. <지크수> 초연 당시 특히 공연을 충격적으로 받아들였던 기독교계가 주목한 것은 바로 이 질문들이었다. 예수의 신성을 벗긴 것도 모자라 성경의 핵심 테마를 의심하는 결말이라니. 그러나 <지크수>의 이 질문은 1940년대 생 웨버와 라이스의 68혁명 세대적 질문이기도 했다. 보수주의와 기성세대로부터의 해방과 저항의 에너지로 가득한 1970년대를 살던, 20대 예술가들의 어찌 보면 당연한 질문이기도 했다.

‘50주년 기념’이라는 부제를 달고 7년 만에 돌아온 이번 시즌 <지크수>(프로듀서 정회진, 연출 홍승희, 음악감독 김성수, 안무 서병구, 광림아트센터 BBCH홀, 2022. 11. 10~2023. 1. 15. 지저스 마이클 리 임태경, 유다 한지상 윤형렬 백형훈 서은광, 마리아 김보경 장은아 제이민, 빌라도 김태한 지현준, 헤롯 육현욱 전재현, 가야바 이한밀 김바울 등)는 공연의 핵심을 정공법으로 다루며 인터미션 20분을 포함한 135분으로 깔끔하게 정리된 무대를 보여주었다. 군더더기 없이 타이트하게 정리된 장면들은 앙상블의 일사불란한 움직임으로 밀도 있게 연결되었으며, 조명(구윤영)이 특히 효율성 있게 사용됨으로써 장면 정리에 큰 역할을 하고 있었다. 

이번 시즌 공연에서 앙상블은 여러 장면에서 미장센을 만드는 요소였을 뿐 아니라, 광기에 사로잡힌 군중을 안무와 움직임으로 표현하여 공연의 핵심을 감각적으로 드러냈다. 가령, 예수의 고통을 배가시키는 ‘The Temple / Lepers’ 장면의 휘몰아치는 안무와 ‘39대 채찍질’ 장면의 안무는 중심 없이 휩쓸리는 군중들의 광기를 공포스러우면서도 미학적으로 표현했다. 특히 39대 채찍질 형벌 장면은 앙상블의 안무가 드라마를 직설적으로 표현하여 매우 인상적이었는데, 빌라도의 결정은 사실 성난 군중을 달래기 위함이었다는 드라마적 강조점이 명확히 보였기 때문이다. 앙상블이 한 명 씩 돌아가며 예수를 내리치다가 후반으로 갈수록 두 명 씩 짝을 지어 가중시키던 흐름은 빨라지던 배우들의 호흡과 음악의 템포 만큼 폭주하는 군중들의 양상을 그대로 드러냈다. 훌륭한 선택이었다. 

 

                            [수퍼스타] 공연사진: 유다 한지상, 안나스 김민철(블루스테이지 제공)

한편, 개인적으로 이번 <지크수>에서 가장 눈여겨봤던 것은 2013년부터 유다 역을 맡았던 한지상 배우였다. 한지상 배우의 유다 해석은 이미 유명했지만, 여러 부침을 겪고 유다로 돌아온 그의 해석이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는 모든 움직임 하나하나에 이유와 맥락이 존재하는 연기를 보여주고 있었다. 예수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지만 그를 여전히 따르고 사랑하기에 자신의 말을 들어주기 원하는 심리를 여러 겹의 층위를 중첩시키며 드러내고 있었다. 중심 공간에서 떨어져 무대 상수에서 예수를 관찰하는 위치에 놓였을 때조차도 철저히 유다로 존재하며 예수의 모든 행동과 선택에 정서적으로 관여하고 있었다. 가장 집중되었던 순간은 마리아의 솔로 넘버 ‘I don’t know how to love him’을 자살 직전에 리프라이즈하던 구간이었다. 오케스트라의 모든 연주를 중단하고 오로지 배우의 정서와 호흡으로만 극장을 채움으로써, 예수에 대한 유다의 지극한 마음이 마치 ‘늦게 배달된 편지처럼’ 묘사되었다. 가장 황홀하고 가장 아름다웠던 순간이었다. 

그러나 이번 시즌 공연을 통해 다른 한편으로는 예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배우의 풀이 더 확보되어야 할 필요를 느꼈다. 마이클 리에 비해 임태경 배우는 다소 밋밋한 보컬을 갖고 있어서 예수의 록 넘버들을 완전히 소화하고 있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예수의 분노와 예민한 반응들이 장면에 필요한 수위만큼 채워지지 못해 공연 초중반 빌드 업 구간들의 밀도가 전반적으로 낮았다. 예수의 대표적인 솔로 넘버 ‘Gethsemane’의 울부짖음도 다소 위태롭게 들렸다. 아주 당연한 사실이지만, 공연의 킬링 넘버에 대한 아쉬움은 잘 잊히지 않는 법이다. 

<지크수>는 본질적 모던함을 채울 수 있는 유니크한 연출력이 있다면, 언제나 현재진행형으로 만날 수 있는 클래식이다. 톰 오호건의 도발적인 브로드웨이 초연 연출이 여전히 세련되고 흥미롭게 보이는 것은, 유다와 군중 그리고 예수의 삼각 편대를 B급 컬트로 개념화했던 그의 독특한 해석 때문일 것이다. 해석이 가미된 새로운 연출로 다시 돌아올 <지크수>의 미래를 기다린다. 

 
최승연 뮤지컬평론가

런던대학교(로열 할러웨이)에서 연극학 석사, 고려대에서 국어국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국제한국학센터 연구교수, 워싱턴 대학교(시애틀) 동아시아학과 객원연구원, 청강문화산업대학교 공연예술스쿨 교수 등을 역임했다. 주요 논저로는 “청년 테마로 본 뮤지컬: 팬덤의 참여욕망과 수행성에 대한 고찰”, “라이선스 뮤지컬의 현지화에 대한 일고찰”, “확장하는 보편, 타협하는 로컬리티”, “해방 후 오영진의 좌표와 음악극 실험”, “만들어진 비애와 감성의 연대”, 미국 뮤지컬과 국가정체성의 형성(공역), 멜로드라마적 상상력(공역) 등이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