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향(餘響)! 김지하의 생명의 노래는 비로소 그 향기를 세상에 흩뿌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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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향(餘響)! 김지하의 생명의 노래는 비로소 그 향기를 세상에 흩뿌리기 시작했다
  • 이명아 기자
  • 승인 2023.01.08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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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지하, 타는 목마름으로 생명을 열다: 김지하 시인 추모 문집 | 김지하시인추모문화제추진위원회 엮음 | 김봉준 등 지음 | 모시는사람들 | 344쪽

 

2022년 5월 8일 별세한 김지하 시인을 향해 그의 동지와 후배와 후학들이 화해와 용서, 이해와 승화의 마음으로 세상 속에 고백한 글들, 그리고 2022년 6월 29일의 49재 추모문화제에서 풀어낸 추억과 회한, 계승을 다짐하는 글들을 모아서 김지하에게 맺힌 응어리를 가진 모든 이와 해원하는 굿판을 펼치는 책이다. ‘타는 목마름’과 ‘생명’의 두 바퀴로 굴러 온 그의 전 생애 가운데, ‘타는 목마름’의 김지하만을 기억하고 그 이후를 훼절로 보는 관점을 넘어 ‘생명’의 세계로 나아간 김지하까지를 온전히 모시는 비나리를 담고 있다. 김지하의 발자취를 ‘문학’ ‘예술’ ‘생명운동’ ‘정치사회’의 네 방면에 걸쳐서 접근하면서 그 누구보다 뜨거웠던 삶을 추억하고 영결하는 데 그치지 않고, 김지하라는 수레에 올라타서 새로운 시대로 열어나가고자 하는 동지(同志)와 동사(同事)들의 눈물어린 노래, 미소 띤 약속을 담아냈다.

‘타는 목마름으로’는 대체로 저항시인, 민주화투사, 민중예술가로서의 그의 생애 전반부를 대표하는 말이라면, ‘생명’은 많은 사람들이 주목하지 못한/않은 생명평화 사상가로서의 그의 생애의 후반부를 대표하는 말이다. 김지하는 그중 어느 한쪽에 전면적으로 갇히지 않고 그 사이-너머를 살아간 우리 시대의 시인-예술가이자 수난자이며, 구도자이자 사상가임을, 새삼스레, 그의 빈자리에서 절절하게 재발견한다.

그는 한편으로 시대와 불화하였고, 역사와도 불화하였으며, 마침내는 세계와 불화하였던 불온한 존재였다. ‘나는 찢어진 사람’이라는 고백(1990, 강연 ‘개벽과 생명운동’)은 민주화 투사로서의 그의 60년대, 70년대 삶에 대한 일언지하의 참회문이었으며, 80년대 이후 생명운동사에 대한 자평이었으며, 다가오는 시간(1991, 기고문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우라’)에 대한 예언이었다. 그날 이후 그는 스스로와도 불화하며 애린(愛隣, 이웃, 시대와 민족과 민중, 생명과 평화를 사랑함)의 노래를 그의 수난의 청구서로 받아 안았다. 그로부터 다시 30년, 그는 때때로 맑음, 대체로 흐림의 시간을 관통하며 흘러왔다.

 

1985년 3월 민족문학의 밤에서 강연하는 김지하 시인(사진: 박용수,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제공)<br>
1985년 3월 민족문학의 밤에서 강연하는 김지하 시인(사진: 박용수,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제공)

그러나 죽음에 가장 가까운 불모지(감옥) 바로 그곳에서, 죽임을 넘어서는 생명을 발견하였던 그 구도의 시간과 공간 속으로 석방되어 탈-죽임의, 모심-살림의 시대를 예비하며 생명-평화에 마음을 쏟았고, 그러면서 시대의 수레바퀴 속에 압살되기를 마지않았던 이가 또한 김지하였다. 그가 예견하는 생명 시대를 그 스스로는 온전히 목격하지 못하고 돌아가야 한다는 서러움이, 때로 분노가 그의 말년의 몽니를 자아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조차도, 그가 떠난 마당에 다시 새로운 의미로 다가오는 것이다. 그의 이승의 자리가 비워짐으로써, 그는 새롭게 발견되고, 그가 떠남으로써 그는 새롭게 맞이되고, 그가 영면함으로써 그는 새롭게 깨어나 다시 빛나기 시작한다.

그의 생애 전반부의 삶은 ‘수난 속에서 구도의 길’을 걸어 ‘여기까지 애써 걸어 온’ 길이다. ‘타는 목마름’으로 ‘황톳길’을 ‘불화살’처럼 살아온 길이다, 그는 개화와 척사, 좌파와 우익 사이-너머의 길을 연 개벽파(開闢派)이되, 채 봄이 오기도 전에 꽃을 피워 봄을 짓느라 스스로는 동상(凍傷)을 면치 못하였던 ‘큰 시인’이었다. 누군가는 ‘그의 그림자 뒤에 엎드려 울’며, 또 누군가는 허위허위 ‘삼도천 꽃밭 마음껏 걸어가’시라 굿춤을 춘다. ‘김지하에게로 가는 길’은 ‘흰 그늘’의 길이며, ‘씻김의 자리, 향아설위의 자리’이니 앞으로 나아가다 보면 만나는 것은 김지하이기도 하고 우리들 자신이기도 할 것이라고, 남은 이들은 고백한다.

이 책에는 “김지하 시인은 민주화 운동의 선구자로서 새 시대의 여명을 열었으며, 한국문학예술의 선구자로서 한국 예술의 새 경지를 열었으며, 생명사상의 선구자로서 한국사상사의 새 지평을 열었다”고 총평하는 사람들, 그의 한 갑자의 공생애의 전반의 표면과 이면을 넘나들며 그와 생사고락을 같이한 동지들의 회한과 화해와 용서의 추억담과 통곡이 담겨 있다. “구성지게 부르던 ‘부용산’”을 그리워하고, 김지하를 위한 변명, 김지하를 위한 초혼, 김지하를 위한 기원을 담고 있다. 김지하가 살아 있을 때, 정작 그의 존재 자체가 거대한 장벽이 되어 미처 보이지 않았던, 드러나지 못했던, 성언(聲言)되지 못하였던 진면목이 하나하나 발견되고 있다.

그러나 이 책은 과거로 흘려보내는 만사(輓詞)는 아니다. 그러기에는 김지하는 여전히 미지(未地)이고 미맹(未萌)인 새 시대의 예고라고 여긴다. 이제 비로소 시작이라고 예감한다. 생전의 그가 민족적 민주주의 장례식 즈음에서 ‘타는 목마름으로’의 시대를 시작하고,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우라’는 토혈(吐血)로부터 그의 ‘생명’의 시대를 시작하였듯이, 그의 죽음으로서 다시 개벽할 수 있게 된 다시 생명 시대로의 생명의 문을 여는 열림굿인 셈이다. 그의 생전의 삶이 감옥 안의 감옥으로부터 감옥 밖의 감옥으로 놓여나와 광야를 헤매는 선지자처럼 미래를 향한 무인지경의 길을 허위허위 걸어간 것이었다면, 이제야말로 육신에 걸림 없는 해방의 영혼, 자유의 영성으로서 생명의 세계를 영구히 살아가는 셈이다. 여전히 그는 우리가 좇아가야 할 지남(指南)이요, 미망(迷妄)과 욕망(慾望)의 시대가 귀감해야 할 “한 오리 햇빛”(〈애린〉)이다.

이 책에 글을 실은 김지하 시인의 동지, 후배, 후학 들은 그들 자신이 하나의 시대요, 하나의 장르이며, 하나의 담론이지만, 모두가 스스로를 전체로서의 김지하의 한 조각을 이야기하기에도 벅차한다. 김지하는 수많은 시와 담론을 쏟아냈으나, 정작 스스로는 말로써 포착되지 않은 거대한 산맥이며 웅혼한 생명이기 때문이리라.

여향(餘響)! 그의 글씨와 그림을 소개하는 글의 꼭지명이다. 그의 영혼은 영면하였으되, 그의 생명의 노래는 비로소 그 향기를 세상에 흩뿌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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