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백의 고향 쇄엽(碎葉)은 페르시아어 Suy-ab의 음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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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백의 고향 쇄엽(碎葉)은 페르시아어 Suy-ab의 음차자?
  • 연호탁 가톨릭관동대·영어학
  • 승인 2020.03.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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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연호탁의 ‘말로 푸는 역사 기행’]

■ 기획연재: 연호탁의 ‘말로 푸는 역사 기행’ (9)_ 이태백의 고향 쇄엽성은 키르기스스탄에 있다
 

▲ 시르 다리야(the Syr Darya) 유역의 추강 (전자는 굵은 푸른색, 후자는 키르기스스탄의 수도 위쪽의 푸른 선)
▲ 시르 다리야(the Syr Darya) 유역의 추강 (전자는 굵은 푸른색, 후자는 키르기스스탄의 수도 위쪽의 푸른 선)

키르기스스탄의 수도 비시켁(Bishkek)에서 동쪽으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토크모크라는 인구 5만 남짓한 소도시가 있다. 토크모크(Tokmok)는 ‘망치’라는 뜻의 키르기스 말이다. 이 도시는 추강 계곡(the Chuy Valley)에 자리 잡고 있다. 주민들은 여기를 츄이 어러우(Çüy Örööü)라고 부르며, 멀지 않은 곳에 사는 카즈흐스탄 사람들은 슈 앙가리(Shý ańǵary)라고 부른다. 한자로는 ‘초하楚河’라고 한다. 회족回族의 일파인 동간족東干族이 사용하는 둥간어(Dungan)로는 츄(Çw)다.쇄엽은 ‘물 [강]가의 (도시)’라는 뜻의 江에 해당하는 우리말은 무엇일까? ‘ᄀᆞᄅᆞᆷ’이다. 그런데 이 말은 일상용어로 더 이상 쓰이지 않는다. 안타깝게도 만주어는 언어 자체가 소멸된 사어死語가 되었지만, 우리말에서는 고유의 아름답고 값진 또는 맛깔 나는 어휘가 사라져 버렸다. ‘ᄀᆞᄅᆞᆷ’이 그러하고 ‘친구’를 뜻하는 말 ‘동무’가 남한에서는 행방불명된 지 오래다. ‘벗’이 있기는 하나 이 말도 언제 언중言衆에게서 버림받을지 모른다.

“묏눈과 ᄀᆞᄅᆞᆷㅅ 어르메 드르히 서늘ᄒᆞ니(山雪河氷野蕭飋)”(杜解 4:4).

江과 河와 湖에 해당하는 옛말이 ‘ᄀᆞᄅᆞᆷ’인 것도 그렇지만 ‘들’의 고형 ‘드르’가 ㅎ초성의 주격조사 ‘히’를 취한다는 점도 이채롭다.

과거 우리말도 다른 많은 언어처럼 받침(종성자終聲字)이 거의 없었다. 고작해야 ㄴ, ㅁ, ㅇ, ㄹ 정도만 받침으로 사용되었다. 따라서 요즘 우리가 ㄹ을 받침으로 쓰는 것과는 달리 옛사람들은 별개의 음절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들’이 아니라 ‘드르’라고 했다. 그 흔적이 강릉말에 남아있는데, 필자 또래 또는 더 나이를 먹은 강릉토박이들은 “선생님/우리/이애/그애들은” 대신에 “선상님/우리/야/갸드르는”이라고 말한다.

▲ 이백  (출처: 위키백과)
▲ 이백 (출처: 위키백과)

시성詩聖 두보杜甫에 대하여 시선詩仙으로 불리는 당나라 시인이 있다. <달타령>에 달에 가서 놀았다는 그 사람은 이백(李白, 701~762년)이다. 자字가 태백太白, 호는 청련거사靑蓮居士라고 알려져 있다. 남긴 시가 무려 1,100여 수에 달한다. 그는 당 현종이 사랑한 귀비貴妃 양옥환楊玉環의 아름다움을 활짝 핀 모란꽃에 비유했다. 모란꽃 같은 그녀는 어떤 체형이었을까? “환비연수環肥燕瘦”(양귀비는 통통하고 조비연趙飛燕은 파리하다)라는 고사성어에 의하면, 그녀는 제법 뚱뚱한 몸매를 지녔던 것 같다. 또 중국 정사에 양귀비를 가리켜 ‘자질풍염資質豊艷’이라 한즉, 이 역시 체구가 둥글고 풍만한 느낌의 미인이란 소리다. 양귀비 이전에 현종의 총애를 받았던 후궁 매비가 양귀비를 비비(肥婢, 살찐 종년)라 부르며 욕설을 퍼부었다는 일화를 통해서도 그녀가 살집이 있는 여자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시대에 따라 미의 기준이 다른 바, 당시 당나라에서는 중앙아시아의 영향을 받아 “풍비농려豊肥濃麗 열렬방자熱烈放恣”라 하여 풍만함이 미의 으뜸이었다.

李白(701~762년)은 수말隋末에 그의 선조가 서역 쇄엽碎叶으로 이주해갔다가, 유년시절 아버지와 함께 绵州 昌隆(현 四川省 江油) 青莲鄕에 옮겨와 거주했다. 당시 그곳에서 벌어진 전란을 피해서 그랬을 것이라 짐작된다. 쇄엽(碎叶, Suyab)은 현 키르기즈스탄 북부 토크마크 부근의 악베심 지역으로 唐나라 때는 안서도호부安西都護府에 속했다. 이백은 자신의 출신에 대해 조적농서성기(祖籍陇西成紀, 오늘날의 감숙성 정저서남甘肅省 静宁西南) 사람이라고 했다.

▲ 양귀비와 조비연
▲ 양귀비와 조비연

황실 시인이던 이백은 양귀비에 대해 “허리가 굵어 몸매가 아름답지 못하고 용모도 그리 신통하지 못하다”는 내용의 시를 썼다. 이 시를 읽고 발끈한 양귀비가 현종을 충동질하여 이태백을 먼 나라로 귀양 보내버렸다고 하는데 과연 어디로 갔을까? 천산 너머 그의 옛 고향은 아니었을까?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전성남戰城南>이라는 시를 쓴 배경이 아무래도 궁금하다. 그 일 절은 이러하다.

.........
조지해條支海 일렁이는 물결에 병기를 씻고
天山 눈 덮인 초원에 말을 풀어 풀을 뜯긴다.
만 리 머나먼 원정길에
삼군의 병사들 모두 지치고 늙어가네.
.........

이백의 고향에 대해서는 면주沔州라는 설이 있고, 곽말약郭沫若은 쇄엽碎葉이라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이태백의 고향이라고 추정되는 쇄엽성은 어디에 있었을까? 그리고 중국인들은 왜 碎葉이라고 기록했을까? 쇄엽은 ‘물 [강]가의 (도시)’라는 뜻의 페르시아어(혹은 당시 현지 언어인 소그드어) Suy-ab의 음차자일 가능성이 크다. Suyab은 한 때 서돌궐제국의 수도이기도 했다.

쇄엽성은 세엽천細葉川 동쪽에 위치해 있었다. 그렇다면 細葉川은 오늘날의 악베심 근처를 흐르는 추강(the Chuy River)이다. 길이가 천리가 된다는 기록처럼 북으로 흘러 다른 여덟 개의 강들과 함께 카자흐스탄 발하시 호수로 흘러들어간다. 이 일대에 서돌궐의 맹주 돌기시(Turgish)가 자리 잡고 있었다. 여기서 당나라의 현장법사(602~664년)가 만난 가한이 통 야구브다. ‘통’은 ‘호랑이’라는 뜻의 돌궐어다.

현장은 당시의 한문 불교 경전의 내용과 계율에 대한 의문점을 팔리어와 산스크리트어 원전에 의거해 연구하려고 627년(혹은 629년)에 천축天竺을 향해 떠나 645년에 귀국했다. 天竺은 Sindh의 음차자로 인도印度를 가리킨다. 그가 천축행 중도에 고창(高昌, 투르판)과 구자를 거쳐 쇄엽에 당도한다.

『대당서역기大唐西域記』에서 현장은 쇄엽에 대해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겼다.

“쇄엽(현장은 소엽素葉으로 기록)은 서쪽으로 수십 개의 성이 있는데, 성마다 장(長, 우두머리)을 두었다. 명령을 받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모두 투르크(돌궐)에 예속돼 있다. 쇄엽에서 카산나국(Kasana or Kushane)에 이르기까지 토지는 소그드라 이름하여, 사람은 소그드인이라 한다. 문자, 언어도 그 명칭을 소그드 문자, 소그드어라고 일컫는다.”

쇄엽碎葉, 세엽細葉, 소엽素葉 등으로 이표기된 Suyab은 suyab이 결합된 합성어다. áp 또는 ab는 물(water)을 뜻하는 범어다. 범어로 江은 síndhu라고 한다. 페르시아어로 강은 daryâ 또는 daryāb이다. 물은 범어와 마찬가지로 ab이다. 티베트어로 물과 강은 chu / tsangpo, 호수는 tso다. 현지인들이 종카(Dzongkha)라고 하는 부탄어로 물과 강은 공히 ch(h)u다. 부탄어는 남부 티베트어로 분류되며 동쪽으로 국경을 접하고 있는 북인도 시킴주의 주민들이 구사하는 시킴어(Sikkimese)와 밀접한 관련이 있고 두 언어로의 소통이 어느 정도 가능하다. 페르시아어의 영향을 받은 소그드어에서 물과 강은 ab이다.

카자흐 말로 강은 제티수(Zhetysu: “seven rivers”)에서 보듯 수(su)라고 한다. 위구르어에서도 강이나 물을 su라고 한다. 신장 위구르 자치주에 속한 악수현(阿克苏, Aksu)은 ‘백수白水’(Ak ‘white’ + su ‘water’)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연호탁 가톨릭관동대·영어학

한국외대에서 영어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명지대에서 중앙아시아사 전공으로 두 번째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가톨릭관동대 관광경영학과 교수로 그동안 『중앙일보』에 ‘차의 고향’, 『동아일보』, 『중앙일보』, 『문화일보』 등에 칼럼 ‘문명의 뒤안, 오지 사람들’, 『교수신문』에 ‘욕망의 음식: 음식문화사’를 연재했다. 저서로는 『문명의 뒤안 오지의 사람들』, 『차의 고향을 찾아서』, 『궁즉통 영어회화』, 『중앙아시아 인문학 기행: 몽골 초원에서 흑해까지』, 『문화를 여행하다: Travel, Culture&People』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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