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돌하는 감정 이론들의 흥미로운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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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돌하는 감정 이론들의 흥미로운 이야기
  • 이현건 기자
  • 승인 2023.01.08 15: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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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정의 철학 수업: 철학으로 감정을 읽습니다 | 겐카 도루 지음 | 박은주 옮김 | 필름 | 316쪽

 

철학이라는 관점에서 감정을 들여다본다. 젊은 철학자가 감정의 철학이라는 주제로 대학에서 강의한 내용을 책으로 엮었다. 철학은 흔히 이성과 논리, 합리적인 것을 추구하는데 감정은 보통 그 반대편에 있다고 여겨지곤 한다. 그런데 철학으로 감정을 읽는다는 건 무슨 뜻일까? 당연하고 쉽게만 생각했던 일상의 감정 세계가 철학이라는 돋보기로 새롭고 낯설어지기 시작한다.

흔히 감정이라고 하면 ‘감정적이다’, ‘감정에 치우친다’ 같은 표현으로도 자주 쓰여 뭔가 불안정하고 비합리적인 느낌을 주기도 한다. 이에 반해 철학은 추상적인 주제를 다루지만 이성적 사고를 바탕으로 논리를 이끌어내기 때문에 이론적이고 합리적인 느낌을 준다. 철학이란 실생활과 거리가 멀고 어렵고 딱딱하기만 한 것 같지만, 당연하게만 여기던 것을 낯설게 보게 하여 새로운 통찰로 이끄는 힘이 있다. 

이 책 또한 감정이라는 매우 당연하고 친숙한 소재를 철학이라는 시선을 빌려 새롭게 바라볼 수 있게 했다. 유명 철학자의 생각을 다루는 대신 ‘논의를 만드는’ 철학의 관점에서 감정을 고찰한다. 사실 저자는 옛 철학자들의 의견보다 심리학이나 신경과학 등 현대 과학의 마음 연구를 더 많이 참고했다고 말한다. 그래서 철학뿐 아니라 심리학, 신경과학, 문화인류학, 진화생물학 등 다양한 분야의 연구 성과가 소개된다. 어떤 것이 유일한 답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서로 대립하는 이론들을 골고루 알려주고, 어떤 이론이 옳은지에 대해 아직 합의되지 않은 이야기도 소개하여 우리가 스스로 생각의 길을 찾도록 안내한다.

저자는 신체 반응을 중시하는 감정 이론과 인간의 판단과 사고를 중시하는 감정 이론을 함께 설명하며 감정의 철학 이야기에 깊이를 더한다. 한 예로 슬픔이 눈물을 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눈물이라는 신체 반응이 먼저 일어나 그 반응을 인식하는 것이 슬픔이라고 주장하는 제임스―랑게 이론을 소개한다. 하지만 이론의 내용을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 이론이 지닌 결점, 이 이론을 둘러싼 의문점도 함께 짚어보며 사고의 지평을 넓힌다. 이 이론과 반대되는 주장을 하는 감정 이론 역시 소개하며 알면 알수록 알쏭달쏭한 감정의 세계를 다각적으로 풀어낸다. 이외에 감정에 관한 사고실험, 다양한 심리학적 연구 결과들이 사례로 등장해 감정을 둘러싼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이런 식으로 슬픔 외에 분노와 공포 같은 우리의 기본 감정에 대해서도 다시 성찰하게 하는 계기를 선사한다.

감정은 이성과 대립하는 것일까? 감정은 어디까지 맞고 어디까지 틀릴까? 살아온 문화가 다르면 감정을 느끼는 방식도 다를까? 로봇에게도 감정이 있을까? 무서울 걸 알면서도 왜 공포 영화를 보는 걸까? 철학의 관점으로 보면 쉬워 보이던 문제도 금방 복잡해져버린다. 하지만 저자는 얽힌 실타래를 술술 풀어내듯 감정에 얽힌 여러 의문에 친절하게 답한다. “감정에 휩쓸리지 말고 이성적으로 행동해”, “이성으로 감정을 통제해” 같은 말을 자주 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감정은 이성보다 뒤떨어지거나 이성과 대립하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저자는 감정이 없으면 이성적일 수도 없다는 신경과학의 사례를 소개하며 둘의 상호 보완적인 관계를 설명한다.

스스로 인식하지 못하는 감정도 있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무의식적인 감정을 경험한 적 있는가? 인식하지 못했지만 사실 공포를 느꼈다든가 하는 것 말이다. 이외에 로봇은 감정이 있는지, 무의식적 감정이라면 있을 것 같다는 식으로 흥미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도덕적 판단에 감정이 얼마나 영향을 미칠까 하는 이야기도 눈에 띈다. 유명한 도덕적 딜레마인 트롤리 딜레마를 예로 들며, 사람이 판단을 할 때 감정이 관여한다는 사실을 말한다. ‘다수를 위해 소수를 희생해도 되는가’라는 문제를 둘러싼 공리주의와 의무론의 첨예한 갈등은 많은 사회 문제를 돌아볼 때도 적용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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