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상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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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동일 논설고문/서울대학교 명예교수·국문학
  • 승인 2023.01.08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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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일 칼럼]

상담은 어떤 일을 어떻게 할 것인지, 그 방면의 전문가와 상의하는 절차이다. 자진해서 하며, 의무 사항은 아니다. 선택해 수용할 수 있는 참고 사항을 제공할 따름이고, 명령을 내리지는 않는다. 부담스럽게 생각할 것은 아니다.

중학교 교사인 제자가 진로상담에 관한 업무를 맡는다고 한다. 찾아오는 학생들의 장래 희망을 묻고, 의사, 외교관, 학자, 기술자, 작가 등의 전문가를 초청해 필요한 상담을 하도록 한다고 한다. 이것을 담임선생이나 부모가 자기 할 일을 가로챈다고 나무라지 않는다. 도와주어 고맙다고 한다.

상담은 진로상담만이 아니다. 건강상담, 법률상담, 세무상담, 투자상담, 취미상담, 애정상담 등등 아주 많다. 어느 상담에서든지, 그 방면의 전문가가 능력을 발휘해 필요한 사람을 도와준다. 다방면의 상담이 원활하게 이루어지면, 차질이나 반목이 줄어들고 서로 돕는 기풍이 조성된다. 좋은 사회가 된다고 할 수 있다. 

연구상담은 아직 없다. 사제 간의 연구지도와 달라 연구상담이라고 별도로 일컬어야 할 것은 더러 무형적으로 이루어지는 데 그치고 표면화되지 않았다. 사회적인 관심사가 되지 못하고 있다. 개인적 친분이 없는 양쪽이 만나 연구상담을 할 수 있는 길은 없다. 이것은 아주 잘못되었다고 여기고, 시정을 하려고 내가 나선다. 연구상담을 하기로 작정하고, 다음과 같은 광고를 홈페이지(조동일을 만납시다)에 냈다.

 

자격 제한은 실수요자에게 우선권을 주기 위해 필요하다. 나는 국문학자이지만 연구를 학문론으로 확대하고, 연구의 원리와 방범에 관해 많은 논의를 하고 있어 상담 분야를 제한하지 않는다. 식당에서 만나고 커피점에도 함께 가서 가까운 사이가 되어야, 상담이 잘 진행된다. 상담료가 없으면 미안하게 여기고, 많으면 부담이 된다. 식사와 커피의 값이 상담료이다.

이 광고를 보고 누가 큰 걱정을 했다. 지도교수의 소임을 침범해 원수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제자가 다른 사람과 연구상담을 하는 것을 싫어하면 나쁜 지도교수이고, 환영하면 좋은 지도교수이다. 나쁜 지도교수를 만난 액운에 대처하는 방법을 함께 찾아내는 것이 연구상담의 주요 의무이다. 일본 동경대학에 초빙되어 가 있을 때, 예상하지 않던 이런 경험을 많이 했다. 

여러 분야 한국인 유학생들이 찾아와, 지도교수의 요구와 자기의 희망이 너무 달라 괴롭다고 했다. 지도교수의 요구는 대강 이렇다. 이론은 생각도 말고, 자료 연구를 범위를 되도록 줄여 철저하게 해야 한다. 특정 자료에서 글자 한 자, 단어 하나가 어떻게 쓰였는지 최초로 조사하는 것이 최상의 연구이다. 이런 요구 탓에 숨이 막혀 견딜 수 없다는 말을 거듭 듣고, 대처 방안을 조언해주었다. 유사한 상담 경험을 축적하고, 다음과 같은 일반론을 정립했다. 

나쁜 지도교수는 으레 이상한 고집이나 심각한 열등의식이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상처를 건드리며 맞서는 것은 절대 금물이다. 우러르며 따르는 듯한 자세를 보여주어야 한다. 시키는 연구와 하고 싶은 연구 사이의 거리를 적절하게 조절해 학위를 무사히 받고, 그 뒤에 하고 싶은 연구를 하는 쪽으로 나아가면 된다. 다시 생각하면, 나쁜 지도교수가 훌륭한 반면교사이다. 불운이 행운인 줄 알면, 하고 싶은 연구가 탄력을 얻는다. 

위의 광고가 나가자, 연구상담 희망자가 바로 나타났다. 국문학에서 박사를 갓 했다고 하고, 내가 연구상담을 한다는 것을 지도교수가 알려주어 연락한다고 했다. 앞으로 어떤 연구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고 싶다고 했다. 좋은 지도교수를 만난 것은 행운이지만, 반발의 대상이 없는 불운 탓에 연구 방향을 분명하게 하지 못하는 것 같다.     

이에 대해 회신한 말도 옮긴다. “유튜브 방송 조동일문화대학 ‘학문 왜 어떻게’를 시청하고, 희망하는 연구와 관련된 질문을 몇 개 준비하고 오면 됩니다.” 그 질문에 대한 해답을 내가 주겠다는 것은 아니다. 스스로 얻으라고 독려하려고 한다. 

연구가 순조롭게 이루어지면 타성이 생겨, 학문을 왜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는 근본적인 의문이 생기지 않는다. 이 경우에는 행운이 불운이다. 이런 불운을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고, 상실된 문제의식이 되살아나게 독려하는 것이 연구상담의 중대한 임무이다. 

말로 설명해 납득하도록 하지 말아야 한다. 문제의식을 되살리는 싸움을 붙여야 한다. 학문은 토론이고 싸움이다. 외부에 적이 없으면 자기 자신이 둘로 나누어 치고받고 해야 한다. 이런 싸움이 치열해지도록 부추겨야 한다. 이것이 연구상담을 잘하는 능력이다.

연구상담은 건강상담, 법률상담, 세무상담 등의 다른 상담보다 더 긴요하다. 다른 상담은 개인을 위해 필요하지만, 연구상담은 공익사업이다. 창조나 생산의 근본이 되는 원리를 탐구하고 개발하는 연구 작업이 잘되게 도와주기 때문이다. 이런 연구상담이 지금까지 공인되지 않은 것은 큰 잘못이므로 시급히 시정해야 한다.

연구상담은 혼자 해보다가 말 일이 아니다. 얼마 동안 시험하고 할 말을 미리 조금 흘린다. 연구를 선도하다가 은퇴한 분들이 일제히 나서서 연구상담을 맡는 것이 바람직하다. 좋은 봉사를 하면서 능력을 나누어주면, 사는 보람이 커지고 늙음의 도래를 연기한다. 이것이 수명이 100세까지 늘어나는 시대에 잘 사는 좋은 방법이다. 

젊은이들은 연구 임무가 산더미 같이 밀어닥쳐 갈피를 잡지 못해 고민이고, 연구 역량이 누적되고 식견이 높아진 은퇴자들은 할 일이 없어 무료하다. 불행한 양쪽이 만나 유무상통하면 둘 다 행복해진다. 집안에서 손자와 할아버지가 함께 즐겁게 놀며 웃음꽃을 피우는 것 같은 일이 학계에서도 있어야 한다. 

연구상담이 사회 전체의 관심사가 되고, 최상의 복지로 평가되어야 한다. 전례가 있는지 묻지 말고, 새로운 전례를 만들어야 한다. 연구상담의 일반화를 새로운 선진국의 징표로 하고, 세계사의 다음 시대를 만들어나가는 데 앞장서야 한다. 

연구상담 봉사를 하는 협의회나 단체를 만드는 것도 생각할 일이다. 보수나 다른 지원은 필요하지 않다. 정부는 회관을 만들어 장소를 제공하고, 최소한의 운영비만 부담하면 할 일을 한다.

 

조동일 논설고문/서울대학교 명예교수·국문학

서울대학교 불어불문학과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으며 같은 대학 대학원 국어국문학과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계명대학교, 영남대학교, 한국학대학원 교수를 거쳐 서울대학교 교수를 지냈다. 서울대 명예교수이자 학술원 회원으로 계명대학교 석좌교수를 역임했으며 현재 중국 연변대학 명예교수이기도 하다. 주요 저서로 <서사민요연구>, <한국문학통사>(전6권), <우리 학문의 길>, <인문학문의 사명>, <소설의 사회사 비교론>(전3권), <대등한 화합: 동아시아문명의 심층>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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