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천의 옛 간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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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천의 옛 간판들
  • 박영택·경기대 교수/미술 평론가
  • 승인 2020.03.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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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택의 그림이야기]
▲ 사진작가 이영
▲ 사진작가 이영

이영은 청계천 일대의 상점들, 황학동의 만물시장 등을 돌아다니면서 그곳 가게들에 걸린 간판을 촬영했다. 2007년도의 일이다. 이후 지속적으로 간판과 거물의 외관이 그의 사진에 의해 수집되고 있는 대상들이다. 당시 그가 흥미롭게 본 간판이란 함석판이나 벽면에 페인트를 묻힌 붓으로 직접 쓴 상호명이다. 공들인 궁체풍의 서체로 쓰인 한글 문자는 오래전의 것들로서 어딘지 복고적인 내음을 진하게 풍겨준다. 순수한 문자만으로 이루어진, 서체가 주는 필력의 맛이 응축된 당시 간판은 이른바 아날로그 간판의 매력을 온전히 가시화하면서 현판처럼 걸려있거나 벽화처럼 부착되었다. <보전당>, <쓰리스타상사> <개미슈퍼>, <무아레코드>, <삼부화랑> 등이 그것이다.

전적으로 간판만을 가득 안겨주는 사진 속에는 오로지 문자만이 덩그러니 놓여있다. 그는 도시의 간판, 간판에 쓰인 문자를 채집한 셈이다. 그것들은 이제 주변에서 보기 어려운 희귀한 간판들이다. 오늘날 누가 붓으로 그런 문자를 쓰고 있을까? 인간의 손길, 노동의 내음이나 익숙하게 숙련된 필력이 생생하게 살아있는 간판은 지금, 실종되었다. 마치 직접 그린 영화 간판이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듯이 말이다. 동일하게 손으로 직접 간판을 썼던 간판장이들이 사라지고 그러한 간판도 사라졌다. 이제는 기계가 그런 일을 대신하고 있다. 매끄럽고 완벽한 컴퓨터의 글자꼴들이 인간의 손 내음을 창백하게 거둬들였다.

그러나 청계천 일대의 오래된 몇몇 가게들은 여전히 그 옛날의 간판을 달고 있다. 아마도 지방 어느 허름한 동네에도 이런 간판들은 남아있을 것이다. 하여간 그 간판들은 지금 맹렬하게 사라지기 직전이다. 이영은 그러한 간판의 죽음, 시간과 노동의 부재, 다양한 업종과 그곳에 종사했던 이들의 사라짐을 목도하고 그것들을 수습해 사진으로 남겼다.

간판에 대한 애도! 디지털 시대에 종적을 감춘 아날로그에 대한 향수!

정신분석학이 우리의 일부인 무의식을 보여주듯, 사진은 우리 삶에서 잘 인지되지 않는 진실의 순간을 촬영을 통해 불현듯 보여줄 수 있음에 주목한 이는 발터 벤야민이다. 그는 외젠 앗제(1856~1927)가 촬영한 19세기 말, 파리 건물 외관의 사진에서 그러한 초현실주의적인 징후를 읽었다. 대상의 피부에 밀착해 차분하게 재현하는 사진 속에는 유령과도 같은 시간의 재림과 아득한 죽음과 부재의 흔적들, 예기치 못한 균열이 벌어지기도 한다. 또한 벤야민은 사진이라는 기계로 인해 예술을 기술적으로 복제하는 것이 가능해지면서 “현재의 대중들이 사물에 좀 더 가까이 가고 싶은 욕망, 그리고 복제품으로 사물의 유일함을 흡수하며 이를 극복하고자 하는 똑같이 열정적인 관심”이 유발된다고도 지적했다.

▲ 이영, 만물시장, 컬러사진, 2007
▲ 이영, 만물시장, 컬러사진, 2007

같은 맥락에서 한국의 산업화와 근대화가 남긴 황폐화된 잔해, 파편들 그리고 남겨진 기억 들을 채집하는 이영의 사진에는 고고학적인 관심과 수집의 욕망이 구현되고 있다. 일찍이 1930년대에 김복진(조각가이자 미술평론가)은 당시 경성시가지를 장식하고 있던 간판의 의미에 대해 최초로 언급한 적이 있었다. 당시 자본주의와 상품의 위력을 간판에서 간파한 것이다. 간판은 상품경제에서 불가피한 선전도구이자 도시를 장악하는 강력한 이미지다. 오늘날 도시의 건물들은 온통 무수한 간판들에 의해 지배당하고 있다. 건물의 외관을 빼곡히, 촘촘히 점유하고 있는 간판은 그 모든 것을 압도하면서 현란하고 무지막지한 문자를 관자들에게 거의 폭력적으로 안긴다. 그것은 사람들의 욕망의 도화선을 건드리고 그 무엇인가를 갈구하게 하는 동시에 경쟁적으로 자기 존재를 가시화한다.

이영은 그런 간판을 주의 깊게 들여다보았다. 그러나 그의 눈에 들어온 간판들은 다분히 복고적인 간판들이고 더 이상 오늘날 생존할 수 없게 된, 효율성과 합리성, 기계화의 대세에 의해 밀려난 손작업으로 이루어진 누추한 간판들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 간판들은 형언하기 어려운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한국 산업화가 맹렬히 추구되던 지난 시간대의 흔적을 안겨주고 청계천이 번성했던 어느 시절을 추억하고 저 간판을 일일이 써나가던 장인들에 대한 묘한 향수와 회고적 감정도 안타깝게 거느린다. 어린 시절 동네에 위치한 간판가게의 주인들은 대부분 저렇게 함석판이나 나무판으로 만든 바탕 위에 페인트를 찍어 능란하고 익숙한 솜씨로 한글서체를 멋들어지게 쓰곤 했다. 마치 혁필화를 그리던 이처럼, 옛날 장돌뱅이 민화가들이나 이발소 그림을 그리던 이들처럼 말이다.

생각해보면 간판도 나름의 역사가 있다. 나무판에 쓴 한자 간판을 지나 함석판에 페인트로, 이후 세련되고 멋진 디지털 간판 등에 이르기까지 변천을 거듭해왔다. 이영이 보여주는 간판들은 지난 시간대의 한국 간판의 이력의 어느 한순간을 ‘훅’하고 안긴다. 거기에 잊고 있었던 누군가의 공력과 손의 힘과 소박하지만 나름 진솔했던 상호명이 추는 추억의 여운이 짙다.


박영택·경기대 교수/미술 평론가

대학원에서 미술사를 전공하고 뉴욕 퀸스미술관에서 큐레이터 연수를 마쳤다. 금호미술관 큐레이터를 거쳐 1999년부터 현재까지 경기대학교 서양화·미술경영학과에서 교수로 재직 중이며, 전시분석, 미술비평, 큐레이터십, 이미지 읽기, 현대미술의 이해 등을 강의하고 있다. 논문으로는 「식민지시대 사회주의미술관의 비판적 고찰」 「한국 현대동양화에서의 그림과 문자의 관계」 등이, 저서로는 『예술가로 산다는 것』, 『테마로 보는 한국 현대 미술』을 비롯해 다수가 있다. 현재 국립현대미술관 운영자문위원, 서울시립미술관 운영위원, 한국미술품감정연구원 이사, 정부미술품 운영위원, 아트페어 평가위원, 2020 전남국제수묵비엔날레 자문위원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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