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역사책’에 더 높은 잣대를 세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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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역사책’에 더 높은 잣대를 세우다
  • 김학이 동아대학교·역사학
  • 승인 2020.03.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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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말하다]

■ 책을 말하다_ 『인삼의 세계사: 서양이 은폐한 ‘세계상품’ 인삼을 찾아서』 (설혜심 지음, 휴머니스트, 2020.02)
 

설혜심이 탁월한 역사가라는 것은 진작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인지는 몰랐다. 그의 『인삼의 세계사』는 평자가 개인적으로 지금까지 읽은, 한국 역사학자가 한국에서 생산해낸 그 어느 역사책도 따라가지 못할 수준을 보여주었다. 한 층(層)이 아니라 두 층쯤 높다. 이 책은 많은 동료와 후학들이 모방하고 따라잡고 추월하고자 할 표석이 될 것이다. 이미 수많은 서평이 쏟아지고 있고 앞으로도 그러하겠지만, 평자의 눈에 설혜심의 연구가 훌륭한 이유는 무엇보다도 ‘좋은 역사책’의 조건들을 두루, 그리고 훌륭하게 구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첫째, 훌륭한 역사책은 새로운 사료를 발굴한다. 역사가란 자신의 질문에 답해주는 사료가 없는 한 아무 것도 하지 못한다. 설혜심이 이용한 새로운 사료의 방대함은, 특히 한국에 있으면서 서양사 사료를 찾아 헤매는 동료 학자들에게 전율을 일으키기에 충분하다. 일본 주재 동인도회사 직원이 작성한 일지와 본사에 보낸 편지, 동인도회사 회의록, 영국과 프랑스 왕립학회에 제출된 보고서, 런던과 맨체스터와 리버풀과 글래스고와 필라델피아에서 발간된 신문 기사들, 수많은 의학 저널, 그 많은 약전(藥典)과 회고록 등. 역사를 진지하게 연구해본 사람은 안다. 역사가에게 가장 중요한 능력은 새로운 사료의 발굴이다. 저자도 명료하게 의식하고 있었다. 「들어가는 글」의 마지막 문장으로 저자는 썼다. 자신이 시종일관 견지한 연구 모토는 “자료들로 하여금 ‘서양 역사 속 인삼의 존재를 스스로 말하게 하라’였다.”

▲ 한국 국경 근처에서 본 인삼: 프랑스 출신 예수회 신부 자르투가 1711년 본국에 보낸 보고서에 실은 인삼 그림. 자르투의 보고서는 서양에 처음으로 고려인삼의 산지를 확인해준 사례에 해당한다.
▲ 한국 국경 근처에서 본 인삼: 프랑스 출신 예수회 신부 자르투가 1711년 본국에 보낸 보고서에 실은 인삼 그림. 자르투의 보고서는 서양에 처음으로 고려인삼의 산지를 확인해준 사례에 해당한다.
▲ 진생과 닌진: 프랑스 화학자 조프루아와 식물학자 드 가르소가 집필한 〈79가지 식물에 대한 설명과 장점, 용도〉에 소개된 진생(인삼·아래)과 닌진(당근)
▲ 진생과 닌진: 프랑스 화학자 조프루아와 식물학자 드 가르소가 집필한 〈79가지 식물에 대한 설명과 장점, 용도〉에 소개된 진생(인삼·아래)과 닌진(당근)

물론 관건은 사료 속에서 발견해내는 역사적 사실들의 새로움과 풍부함이다. 설혜심의 책에는 놀랍고도 신기한 새로운 사실들이, 마치 기지의 사실이기라도 한 양 아무렇지도 않게 넓고도 풍부하게 펼쳐져 있다. 인삼의 효능에 대한 그 많은 보고와 기록들, 예수회가 중국에 세운 약방, 인삼에 대한 서양 최초의 박사학위 논문, 인삼 분류법을 둘러싼 논쟁, 인삼을 둘러싼 인물만 하더라도 로크, 라이프니츠, 흄, 볼테르, 루소를 거쳐, 평자가 연구할까 고민하기도 했던, 17세기 전반에 활동했던 최후의 르네상스적 만물학자 아타나시우스 키르혀에 이르기까지. 읽는 이의 가슴이 벅찰 지경이다.

둘째, 훌륭한 역사책의 주장은 복잡하지 않다. 오히려 간결하다. 독일의 사회학자 니클라스 루만이 정교하게 이론화했듯이, 인간 인식의 본질이란 무릇 복잡성의 감축이다. 역설적이게도, 이야기 틀이 간결해야 풍부한 내용이 담긴다. 평자가 개인적으로 가슴에 안고 살아온 역사가들만 하더라도, 독일의 사회사를 열어놓았던 한스 울리히 벨러는 19/20세기 독일사의 내용을 근대적인 공업과 중세적인 정치사회가 모순을 일으킨 것으로 간결하게 정리했다. 2차 대전 이후 독일이 생산한 최고의 역사가일 라인하르트 코젤렉은 서양 근대를 경험공간과 기대지평이 갈수록 멀어지는 현상으로 간결하게 정리했다. 근자에 미국의 역사학자 피터 스턴스는 어린이의 역사를 노동으로부터 교육으로의 이행으로 간결하게 정리했다. 『인삼의 세계사』는 평자에 따라 다양하게 읽히겠지만, 나는 그 책이 인삼의 세계사에 얽힌 그 많은 역사적 사실들을 ‘신비한 영약’이라는 인삼의 문화를 서양의 자본이 뒤에서 올라타려 한 과정으로, 오리엔탈리즘을 자본축적의 회로 안으로 접수하려 한 과정으로 간결하게 정리했다고 보았다. 그리하여 자본주의는 근본적으로 경제적이지만 무엇보다도 문화적이라는 것이다.

▲ 여성의 맥박을 재는 약사: 유럽에서 약사와 약국은 18세기가 되어서야 전문화된 직업으로 확립되었다.
▲ 여성의 맥박을 재는 약사: 유럽에서 약사와 약국은 18세기가 되어서야 전문화된 직업으로 확립되었다.

셋째, 훌륭한 역사책에는 ‘사람’이 있다. 역사는 이론이 아님은 물론 논리도 아니다. 역사는 욕망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행동들이 행해지고 만나고 배반하고 결과하는 것들의 생생한 총체다. 그렇게 하여 훌륭한 역사책은 인간과 사회와 삶의 복합성을 드러내고, 그로써 인간을 이분법의 억압으로부터 해방시켜 자유롭게 해준다. 설혜심의 책에는 수다한 희비극이 펼쳐진다. 1617년에 최초로 서양에 인삼을 소개한 리처드 콕스는 일본인 아내 덕에 동아시아에 대한 광범한 지식을 쌓아 올렸지만 아내의 성적인 열정 때문에 파괴된다. 그 일은 안쓰러운 개인사로 간주할 수도 있겠지만, 대영박물관을 탄생시킨 슬론이 자메이카의 코코아를 팔기 위하여 인삼을 폄하한 사실, 그리고 캐나다에서 인삼이 발견되자 중국 차가 인체에 해롭다고 선전하는 모습은 근대 초 ‘경제인’의 얼굴을 보여주는 것으로만 치부할 수 없다. 그와 병행하여 인삼에 대한 ‘학문적’ 진술이 오락가락하기 때문이다. 또한, 독립 직후 미국이 자국산 인삼을 중국으로 가는 첫 수출품으로 실어 날라 막대한 이윤을 남겼지만, 이에 눈이 멀어 과잉 수출로 치달은 끝에 인삼 값의 폭락을 부른 것은 구조적이다. 훌륭한 역사책에서 언제나 만나는 장면, 동기와 결과가 어긋나는 그 인간적이고도 구조적인 장면들을 여기서 대면하다니!

▲ 유럽에 들어온 이방약재: 각종 이방약재로 둘러싸인 약국에서 약초를 선별하고 있는 약제상. 1750년경 록박사(Dr. Rock)가 제작한 판화.
▲ 유럽에 들어온 이방약재: 각종 이방약재로 둘러싸인 약국에서 약초를 선별하고 있는 약제상. 1750년경 록박사(Dr. Rock)가 제작한 판화.

넷째, 훌륭한 역사책은 과거를 현재와 상이한 모습으로 보여주되, 변화를 직선적인 발전으로 제시하지 않는다. 이는 그래야만 과거가 실체적으로 도드라지기 때문이고, 또한 그래야만 현재가 상대화되고 탈자연화되며, 그래야만 인간이 현재와 구조적으로 다른 미래를 꿈꿀 수 있기 때문이다. 17세기 중반 서양인들은 인삼이 수면장애, 식욕부진, 폐렴, 천식, 위궤양, 고열, 전신부종, 창상, 옆구리 통증, 상처, 결석, 임포, 성병 등에 효험이 있다고 보았는데, 이는 19세기 초까지도 크게 달라지지 않아서 인삼은 계속해서 황달, 나병, 괴혈병, 허약체질, 탈수, 변비, 배뇨 곤란, 황열병 등등의 치료제로 소개되었다. 평자가 보기에 이는 동양의 사상의학과 서양의 체액론이 교차하면서 나타난 현상으로, 서양사에서 의학의 고대(古代)가 1850년대 세포설의 등장과 함께 끝나니 만큼 어쩌면 지당하다고 할 것이다. 대부분의 평자가 설혜심의 책에서 주목하는 서양 의학에 의한 인삼의 타자화 현상은 바로 이 시점에 본격화되는데, 이는 바로 그때 화학이 보다 정교화되는 동시에 산업화되어 자본과 결합되기 때문이다. 그 시기에 서양의 수많은 본초 약제가 타자화되고 전통 민간의학이 배제되었으며, 아주 구체적으로 산파가 주변화된다. 다시 말해서 인삼을 타자화하려는 시도는 학문적 현상인 동시에 권력의 결과물이었던 것인데, 흥미롭게도 인삼은 결코 파괴되지 않는다. 인삼의 화학 성분은 1960년대에 비로소 구명되느니만큼, 인삼의 고대는 그 때까지 지속되었다고 할 것이다. 그래서 그런가, 이 책을 읽고 난 뒤에도 인삼은 여전히 신비로웠다. 심지어 자랑스럽기까지도.

다섯째, 훌륭한 역사책은 자기 시대의 인문학 담론과 대결한다. 현재주의 역사학은 독(毒)이지만, 현재적 관심은 역사학을 비로소 수립시킨다. 포스트휴먼 시대 인문학 담론의 중핵에는 흔히 “물질문화”로 일컬어지는 물건(things)이 자리한다. 인간은 도구인 물건과 분리된 적이 없기에, 인간을 도구 및 환경과 분리시켜 독립화시키는 것은 출발 자체가 오류라는 것이고, 더 나아가서 물건이 행위능력(agency)을 갖는다는 주장이다. 이 책이 인삼의 “사회적 삶”을 추적한 것, 인삼이 저 먼 고대부터 무려 1960년대까지 변치 않는 표상을 간직한 채 아시아와 유럽과 미주대륙을 풍미하며 문명과 지역과 국가와 계급에 할당되거나 모방되는 과정을 풍성하게 그려낸 것은 지배적인 인문학 담론과의 역사학적 대면이라고 하겠다. 한 가지 더 있다. 책 제목이 『인삼의 세계사』이다. 저자는 글로벌 역사 혹은 트랜스내셔널 역사를 실천하려 한 것이다. 트랜스내셔널 역사학은 자칫 도자기, 차, 총, 직물 등등의 물건들이 같은 시기에 세계 구석구석에서 사용되었다는 공허한 진술로 끝나기 십상인데, 저자는 월러스틴의 세계체제론의 장단점에 유의함으로써 그 역사학에 풍부한 내용을 기입했다. 설혜심에게 경의를 표한다.


김학이 동아대학교·역사학

한국외국어대학교 독어과를 졸업한 뒤 서울대학교 서양사학과에서 석사학위를, 독일 보쿰 대학에서 역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동아대학교 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요 논문으로 「바이마르 말기의 기업가와 정치」, 「나치즘과 근대화」, 「홀로코스트와 근대성」, 「감정사 연구의 지평: 우테 프레베르트를 안내자로 하여」, 「19~20세기 독일인들의 감정」 등이, 지은 책으로 『나치즘과 동성애』가 있으며, 옮긴 책으로 『히틀러국가』, 『홀로코스트, 유럽 유대인의 파괴』, 『나치 시대의 일상사』, 『나치스 민족공동체와 노동계급』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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