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기필코 세 번째가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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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기필코 세 번째가 되고 싶습니다
  • 조은영 편집기획위원/원광대·미술사
  • 승인 2023.01.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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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은영 칼럼]

왜 사는가? 왜 무한한 우주 시공간에서 찰나의 한 점인 생명을 영위하고 있는가? 사춘기적 질문이나 교육계의 ‘꼰대’스러운 물음이 아니다. 굴레처럼 돌아가는 바쁜 일상 속에서 한 번씩 묻는 자기점검이랄까. 나란 존재가 이름 없는 풀꽃처럼 스러진 후에도 순환하는 “인간의 굴레”는 전혀 지장 받지 않을 터이니, 자칫 일중독자의 수렁이나 선생이라는 직업병에 몰입되지 않기 위함이다. 인생 말년의 회환을 덜기 위한 장치인 셈이다. 새해를 맞으며 응답 없이 메아리치는 교육과 정치개혁 건의 대신에 자신을 점검해본다.
   
우주 시초 이래 단 하나뿐인 소중한 한 사람, 한 사람을 한시적이나마 가르치고 배우는 직업을 가졌으니 막중한 사명이 아닐 수 없다. 처음에는 이를 머리로는 알았지만, 체휼하지 못했다. 퇴직을 몇 년 앞둔 시점에야 자신을 있는 그대로 학생들에게 쏟아내기 전에 자기점검을 하게 된 철부지 선생임에다. 나보다 한결 나은 성품을 갖춘 많은 제자와 동료, 인생 선후배들 덕에 오늘에 이르렀다. 

한 그루 나무, 한 송이 꽃, 한 덩이 돌, 한 알의 모래만큼 나는 괜찮은 존재인가? 오랫동안 거듭해온 생각이다. 적어도 이들 생물과 무생물은 사람들에게 나처럼 상처주지 않는다. 다른 존재보다 자신을 더 낫게 여기지도 않는다. 이들은 자기중심적 언행불일치의 삶을 영위하지 않으며, 있는 자체만으로도 다른 존재들에게 위로와 기쁨과 생명을 준다. 또한 우리 터전인 지구와 생태계에 생채기를 내거나 위해를 가하지도 않는다. 보는 눈이 있는 자들에게는 윌리엄 블레이크(William Blake)의 시구처럼 꽃 한 송이는 천국을 보게 해주고, 모래 한 알은 세상을 보게 해준다. 우리 모두가 같은 우주에서 유래되고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상기시켜주며, 우리 원천인 무한한 우주를 유한한 내 안에 가두려고 발버둥치지도 않는다. 있는 자체로서 세상을 아름답게 빛내고 다른 생명들을 지탱해주는 이들은 나보다 훨씬 이 세상에 유용한 필수적 존재이다.

반면에 “내가 욕망하고 사랑하는 것이 곧 나다.” 지구상 수십억 명의 ‘나’는 각자 나를 위한, 나에 의한, 나의 세계를 구축하는 존재라는 사실에 몸서리칠지라도, 철저히 ‘내’가 우주에서 1순위가 되는 것이 당연시되는 세상이다. 그러니 나무와 꽃, 돌과 모래 같이 가치 있는 존재가 되려는 씨름은 애초에 시지푸스의 반복적인 분투와 같다. 다른 생물과 무생물의 존재가치를 꿈꾸는 것은 인간 본성에 역행하는 소망이리라. 지구에 끊임없이 재앙을 초래하는 우리 인간이 없었다면 훨씬 좋은 터전이었을 도처에서, 세상을 의식하지 않으며 묵묵히 제 자리를 지키는 풀꽃이나 나무같이 좋은 존재가 될 수 있을까. 아무리 재능 있고 지혜로운 사람이라도 혈관 일부만 잘못되거나 불의의 사고로 모든 지식과 소유를 잃고, 거동할 수 없게 되고 당장 내일이 없게 될 ‘내’가 세상의 중심이라는 근거 없는 욕망과 착오로부터 어떻게 진정 자유로울 수 있을까. 

이토록 부족한 ‘내’가 1순위가 아니어야 한다는 오랜 신념은 변함이 없다. 처음 대학에 재직하게 된 이유, 삶과 교육에 대한 믿음이 첫 번째이다. 물론 교육을 통해 장차 일어날 수 있는 전쟁이나 인재(人災)를 막고 싶었던 이상론은 이제 실용적으로 바뀌었지만 말이다. 이어서 학생의 공익이 직업상 우선인지라 두 번째이고, 나는 세 번째라는 생각은 여전하다. 학생과 동료들을 자아성취의 수단으로 삼는 ’내로남불‘을 일삼는 선생이 되려면 학교 안에서 밥벌이하기보다는 학교 앞에서 노점상을 하는 편이 낫다는 결심도 그대로이다. 그렇지만 의례히 1순위가 되고자 하는 본성 때문에, 특히 이타적인 기질이 DNA에 별로 없는 나 같은 경우에는 실행이 쉽지 않다. 첫 번째 자리를 ’사는 이유‘에, 두 번째는 ’사는 터전의 주역들‘에게 내주고, 스스로를 세 번째 자리에 두는 것이 심리학적으로 불행을 자초할 수 있겠지만 그나마 나이 들면서 조금씩 편안해지니 다행이다. 

인생 선배들 말처럼 최고의 가치는 결국 이타적인 사랑이고, 철 들기 위해서는 늙어감이 필요한가보다. 현재의 ‘나 됨’에서 내 덕과 공은 미미할 뿐임을 갈수록 절감한다. 타고난 선조들의 유전인자를 비롯해서, 이 어리석은 삶의 여정에서 선한 영향력을 끼친 모든 분과 존재들, 아울러 그 모두의 각각을 있게 한 시공간을 넘나드는 무수한 사람과 존재들, 그리고 안타깝게도 스스로의 소중한 삶을 희생하며 자신처럼 살지 않도록 반면교사가 되어준 분들까지 그들 모두의 덕이다. 오늘에 이르게 하고, 이 새해를 맞이하게 해준 모든 존재들께 깊이 감사드린다. (feat. “I Am Second” & James K. A. Smith, You Are What You Love.) 


조은영 편집기획위원/원광대·미술사

미국 델라웨어대학(University of Delaware)에서 미술사 석사와 박사 학위 취득. 국립 스미소니언박물관 Fellow와 국제학술자문위원, 미국 국립인문진흥재단(NEH)과 루스(Luce)재단 Fellow, 중국 연변대학 객좌교수, 일본 동지사대학 국제대학원 강의교수를 거쳤으며, 국내에서 현대미술사학회 회장, 원광대 평생교육원장, 대외협력처장, 국제교류처장을 역임했다. 현재 원광대 조형예술디자인대학 미술과 교수로 미국 스미소니언박물관 위원 등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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