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법을 만드는가? 법의 본질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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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법을 만드는가? 법의 본질은 무엇인가?”
  • 이현건 기자
  • 승인 2023.01.0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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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 문명의 지도: 세계의 질서를 만든 4000년 법의 역사 | 퍼난다 피리 지음 | 이영호 옮김 | arte(아르테) | 640쪽

 

‘법의 본질’은 무엇인가? ‘법 없는 사회’는 성립 불가능한가? 법이 ‘정의’를 구현해주는가? 이를 이해하려면 먼저 ‘법의 역사’를 알아야 한다. 이 책은 부제가 설명하듯 “세계의 질서를 만든 4000년 법의 역사”를 담은 책이다. 법체계의 흥망성쇠를 ‘문명’, ‘제국’, ‘사회’의 맥락에서 다면적으로 탐구한 이 책은 법이라 부를 수 있는 세상의 거의 모든 관습과 사상에 대한 연구를 펼쳐낸다.

이 책이 증명하는 것은, “법치는 각기의 사회와 문화 속에 다원적으로 존재한다”라는 점이다. 로마법을 통해 문명사를 살피는 기존의 연구 관습에서 완전히 벗어나, 법치가 서구 근대에만 특유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명확히 밝힌다. 유럽의 법을 중심에 두고 인류사를 해석하는 통념을 깨고 아프리카, 아시아, 아메리카 전역에서 개발된 다양하고 정교한 법체계를 분석하며, 현재 우리에게는 전근대적이고 엉뚱하다고도 여겨지는 서약과 시죄에서부터, 뉴욕의 다이아몬드 상인들의 불문율, 마피아 조직의 규칙, 티베트고원 라다크의 관습, 정치적 권력을 초월하는 종교법의 세계(힌두교·유대교·이슬람교·불교 등), 교회법과 대별되는 세속법, 국제법까지 ‘법의 본질’을 통찰하기 위해 법체계의 전방위를 다룬다. 또한 법체계가 단순한 규칙의 집합이 아니라 사회질서와 문명을 창조하는 방법임을 역설한다.

저자는 각기 다른 시간과 공간, 그리고 문화적 맥락에서의 ‘법들’이 만들어진 과정을 돌아보면서, 현대 국가에서 적절하다고 여겨지는 법과는 매우 다른 구조를 보인다는 것을 해부한다. 법은 영토의 경계 안에 머물지 않고 새로운 땅으로 전파되며 지역 관습 및 규칙과 공존하는 양상, 법과 종교가 구별되지 않는 경우 등을 분석한다. 

4000년에 걸친 법의 역사를 한 권에 담았다고 해서 단순히 피상적인 통사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소공동체 내부의 미시적 법률 행위들에서부터 글로벌한 법체계의 연계들이, 문명이라는 거대한 역사적 궤적 속에서 어떻게 복잡한 지도를 그려왔는지 하나의 그림에 엮는 방법론을 바탕으로 ‘법치주의의 본질’을 꿰뚫어 전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은 ‘법인류학의 개론’에서 나아가 ‘법의 사회사’, ‘권력의 정치사’로서 기능한다.

책은 크게 3부로 나뉜다. 사회 구조에 대한 공통의 비전으로서의 법체계, 웅장하고 통일된 문명을 구상하는 방편으로의 고대의 법(1부 질서의 비전), 지역의 관습과 주변부의 규율이 법이라는 수단으로 종교·도덕의 이상과 융합되었던 중세의 법(2부 문명의 약속), 현대 법체계, 반법률주의의 사회들, 국제법(3부 세계의 질서)으로 구성된다.

이 세 파트에서 공통으로 다루는 주제는 ‘무엇이 법을 만드는가’, 즉 무엇이 법적 관행, 사상, 원칙을 통합하는가이다. 한 축은 왕이나 사제가 통치의 도구로서 갈등을 관리하는 수단으로, 한 축은 법학자가 법의 실체를 발전시켜 지적 운동으로 취급하는 학문적 의견의 장으로, 또 다른 한 축은 재판관과 변호사 등의 법률가가 법 규율을 해석하고 실질적인 문제에 적용하는 장으로, 세 축이 주요 법체계로 발전한 규칙을 만들었음을 논하며, 아울러 주변부에 있는 사람들(부족민, 마을 주민, 상인 등)도 법이 제공하는 가능성을 파악해, 자신들의 세계에 질서를 부여할 새로운 방법을 모색했음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이를 통해 저자는 법을 통해 ‘권력’이 흘러가는 경로를 드러낸다.

이 책은 인류의 전 문명사를 통틀어 인간은 늘 법의 영향하에 있었음을 실증한다. 저자는 법이 인류 문명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요소라고 분석하며, 우리가 기존에 법이라고 인식하지 않았던 영역까지도 ‘법이라는 렌즈’를 통해 문명을 조망한다.

이 장대한 법의 문명사가 천착하는 지점은 ‘법은 누구의 것이 되어야 하는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법을 어떻게 이용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로 귀결된다. 저자는 “법의 지배는 보편적이거나 불가피한 것이 아니다”라고 말하며, 법은 분명히 권력의 도구로 기능하지만, 종종 “권력에 저항하는 수단”이 되었음을 명확히 밝힌다. ‘민주주의’와 ‘인권’의 원칙을 담아, 권력을 휘두른 자들에게 맞서고 도전하는 일이 ‘법의 역할’임을 확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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