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케이팝 … 끊임없이 충돌하는 지역성 케이와 보편성 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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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케이팝 … 끊임없이 충돌하는 지역성 케이와 보편성 팝
  • 이규탁 한국조지메이슨대학교·문화연구
  • 승인 2020.03.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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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말하다]

■ 저자가 말하다_ 『갈등하는 케이, 팝: 한국적인 동시에 세계적인 음악』 (이규탁 지음, 스리체어스, 2020.02)
 

지난 2월 3일 출간된 <갈등하는 케이, 팝>(스리체어스, 2020)은 방탄소년단과 트와이스로 대표되는 2010년대 이후의 ‘3세대’ 케이팝 가수·기획사 및 그들의 국내외 팬덤 문화 등에 초점을 맞춘다. 1996년 H.O.T.를 기점으로 하는 기획사-아이돌 시스템 중심의 한국 대중음악은 1990년대 말 ~ 2000년대 초반 무렵부터 대만, 홍콩, 중국 등 동아시아의 중국어권 국가들을 중심으로 인기를 얻으며 국제적인 음악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이 시기만 해도 TV 드라마를 중심으로 하던 동아시아 속 ‘한류’ 콘텐츠의 일부로 여겨지던 이 음악은 2007년 이후 원더걸스, 소녀시대, 빅뱅, 슈퍼주니어 등으로 대표되는 2세대에 이르러 해외 팬들과 미디어로부터 ‘케이팝(K-Pop)’이라는 이름을 부여받으며 인기의 영역을 크게 확장했다. 특히 2012년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에서 히트한 이후 케이팝은 북남미, 유럽, 중앙아시아 등에서 주목받으며 세계화의 정도를 가속화했다.

저자는 이런 흐름에 힘입어 케이팝의 성공이 신기함과 특이함을 바탕으로 잠깐 수용자들의 주목을 받았다가 곧 인기를 잃게 되는 일회성에 그친 것이 아니라, 록이나 힙합처럼 독립적인 카테고리의 글로벌 대중음악 장르 중 하나로 자리하게 되었음을 지적한다. 해외 음악산업에서는 케이팝이 비(非)영어·비서구권 음악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성공한 음악이라는 점에서 보다 이전에 글로벌 시장에서 유의미한 성과를 거둔 스웨디시팝(Swedish Pop)이나 라틴팝(Latin Pop), 월드뮤직(World Music) 등과 비교하곤 한다. 케이팝이 이들 장르와 여러 가지 공통점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음악적 특징 외에 ‘한국’이라는 특정한 국가·민족 브랜드가 장르 규정에서 매우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는 점은 케이팝만이 가진 특성이다. 가수, 업계, 국내외 수용자 모두 ‘케이팝은 한국성(韓國性, Korean-ness)을 만족시켜야 한다’라는 개념을 공유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여기서 ‘한국성’이라 함은 케이팝이 비영어·비서구권 출신의 한국인이 한국어로 부르는 노래여야 한다는 일차원적인 의미인 동시에 그것이 가지고 있는 독자적인 요소, 가령 음악의 혼종적 요소, 특유의 뮤직비디오와 퍼포먼스가 주는 시각적 이미지, 독특하고 충성도 높은 팬덤, 가수(아이돌)들과 팬들 사이의 친밀하면서도 때로는 지나치게 밀착된 관계 등을 모두 포함한다.

저자는 이를 케이팝이 한국성을 상징하는 ‘케이(K)’와 대중음악의 보편성을 나타내는 ‘팝(Pop)’의 결합으로 이루어진 음악이라고 해석한다. 케이팝은 지역적인 특수성과 글로벌한 보편성의 결합을 통해 국내외에서 모두 인기 음악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 그러나 특수한 음악이자 동시에 보편적인 음악이라는 이중적인 특성은 때로는 서로 충돌하며, 케이팝의 글로벌화가 심화될수록 이러한 충돌은 과거보다 다양한 양상으로 더욱 자주 일어난다. 케이팝의 내재된 속성으로 인해 필연적으로 촉발되는 ‘케이’와 ‘팝’의 갈등인 것이다.

일부에서는 이에 대해 ‘케이팝이 보다 보편적인 팝의 영역으로 들어갈 때 비로소 진정한 의미에서의 글로벌 대중음악으로서 자리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저자는 케이팝이 ‘케이’를 완전히 버리기는 쉽지 않다고 주장한다. 그것은 케이팝의 한국성, 즉 ‘케이’가 속칭 ‘국뽕’으로 대변되는 국내 팬들의 민족주의적 감성이 아닌, 보편적인 영미 중심 ‘팝’과는 다른 어떤 것을 추구하는 해외 팬들의 요구에 의해 유지되는 측면이 강하기 때문이다. 많은 해외 수용자들이 영미·서구 중심 대중음악(혹은 대중문화 전반)에 대한 일종의 대안(代案)으로서 케이팝에 주목하고 있으며, 이는 ‘팝’이 아닌 ‘케이’를 통해 구현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자국이 아닌 해외 팬들이 오히려 케이팝 가수라면 영어가 아닌 한국어 가사로 노래 불러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하거나 비한국계·비동아시아계 가수가 케이팝을 한다고 하는 것에 강한 거부감을 표하는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다.

저자는 방탄소년단, 트와이스, 아이즈원, EXP에디션, 슈퍼엠 등 현재 실제로 국내외에서 큰 인기를 누리고 있는 케이팝 가수들의 사례를 자세히 분석하며 이러한 딜레마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이들은 각각 ‘전형적이지 않은 케이팝’, ‘다수의 외국인이 참여하고 있는 케이팝’, ‘외국 산업과의 합작을 통해 만들어진 이중적 정체성의 케이팝’, ‘한국인이 없는 케이팝’, ‘한국보다 해외에서 더 인기 있는 케이팝’을 대표하는 그룹들로, 그 외에도 다양한 3세대 케이팝 가수들 및 그들의 팬과 미디어 담론 사이에서 벌어지는 한국과 동아시아 및 그 바깥 지역에서의 다양한 사례들이 글 내용의 풍성함을 더한다.

케이팝은 글로벌 대중음악산업의 중심에서 빗겨나 있는 비영어·비서구권 지역인 한국에서 만들어진 대중음악으로 국가 간 장벽과 언어·문화의 차이를 극복하고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고 있지만, 여전히 국가와 특정 지역 및 민족을 중심으로 하는 민족주의 담론에서 자유롭지 않다. 이는 케이팝이 비주류 정체성, 소수 문화, 독특함을 상징하는 문화로서 해외에서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실은 케이팝 자체가 주류 음악산업의 문법 및 비즈니스 논리와 공고히 결합된 음악이자 한국이라고 하는 지역 특수성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음악이라는 딜레마에서 나오는 갈등이다. 하지만 이러한 간극은 사실 2010년 초중반 이후 큰 변화를 맞이한 전 세계 새로운 세대들의 문화 수용 방식을 잘 드러내는 사례이기도 하다. <갈등하는 케이, 팝>은 케이팝이 문화 세계화와 미디어 환경의 변화가 만들어내는 탈중심화 경향 및 보편과 특수의 동시적 확산, 그로 인한 갈등과 통합, 재창조의 과정을 보여주는 의미 있는 문화 현상임을 잘 보여준다.


이규탁 한국조지메이슨대학교·문화연구

서울대학교 영어영문과를 졸업했으며, 동 대학 언론정보학과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美 George Mason University에서 문화연구(Cultural Studies)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한국조지메이슨대 교양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며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회 선정위원이다. 케이팝과 대중음악을 집중적으로 연구한다. 저서 《케이팝의 시대》, 《대중음악의 세계화와 디지털화》, 《갈등하는 케이, 팝》, 《교양의 효용》 (역서), 《모타운: 젊은 미국의 사운드》 (공역)를 비롯해 케이팝과 대중음악에 관한 다수의 글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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