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 갈등 사회에서 올바른 공공정책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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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치 갈등 사회에서 올바른 공공정책을 찾아서
  • 권혁주 서울대·정책학
  • 승인 2023.01.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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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에게 듣는다_ 『갈등사회의 공공정책: 자유와 책임의 관점에서』 (권혁주 지음,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324쪽, 2022.11)

 

최근 우리나라는 경제적 이해관계뿐만 아니라 정치적 가치관의 충돌로 사회갈등이 점점 더 심각해지는 상황입니다. 이 책은 갈등이 심화되는 한국 사회에서 올바른 공공정책을 수립하는 방법과 보편적 복지, 연금 개혁, 지능 정부 등 구체적인 정책에 관한 필자의 연구를 담고 있습니다. 그러나 행정학 연구자뿐만 아니라 현장에서 사회문제를 풀어나가기 위해 고민하는 공직자들과 시민들이 의사결정을 하는 데 실질적인 도움이 되고자 누구나 편하게 읽고 이해하기 쉽게 기술했습니다. 

음악과 영화 등 한류 열풍이 전 세계를 휩쓸고, 세계가 대한민국의 성과에 대해 찬사를 보내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 우리는 고단하고 우울한 현실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43.5%를 기록한 노인 빈곤율은 OECD 최고 수준이며, 2021년 0.81명을 기록한 출산율은 아이를 낳고 키우기에 너무 힘든 현실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또한, 계층과 지역 간의 갈등과 더불어 세대와 성별 갈등도 더욱 첨예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사회갈등을 관리하고 해소해야 할 정부는 오히려 문제를 악화시키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2014년 세월호 침몰 사건에서 정부는 위기를 효과적으로 관리하지 못했고, 그 이후로도 소득주도 성장과 부동산 정책 등에서 이해관계자의 설득과 동의 없이 무리하게 정책을 추진하여 정책 실패를 거듭했습니다.

정부의 정책 실패와 사회갈등의 심화는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와 민주주의 정치체제에서는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경제적 이해관계의 대립과 정치적 경쟁으로부터 기인합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사회갈등은 단기간에 급속한 경제발전과 민주화를 이룬 한국의 특수한 맥락을 이해해야만 그에 따른 적절한 대응책을 찾을 수 있습니다. 필자는 한국 사회의 독특한 갈등의 맥락이 결과우선주의에서 비롯되고 있음을 지적하면서 이 책의 논의를 시작합니다. 

결과우선주의란 공정한 규칙과 올바른 방법을 따르기보다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어떠한 방법이라도 동원하는 태도를 묘사하는 말입니다. 실제로 우리 사회에서 법과 제도를 무시하고 어떻게든 원하는 결과를 만들어 내는 사람이 더 많은 보상을 받는 일이 허다했습니다. 권력을 쥔 집권 세력은 힘으로 원하는 바를 밀어붙이는 일이 다반사였는데, 그 이유는 적절하고 합당한 과정을 중시하는 국정운영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원하는 결과를 얻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결과우선주의는 필연적으로 자가당착에 부딪힐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 규칙을 어기고 편법을 쓴다면 당장에는 좋을지 몰라도, 종국에는 반대 세력도 결국 마찬가지로 행동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누구도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하는 죄수의 딜레마 상황에 봉착하며 갈등은 더욱 깊어집니다. 
 
그렇다면 서로 다른 생각과 이해관계를 가진 시민들 사이에서 올바른 정책에 대해 어떻게 합의하고 이를 추진할 수 있을까요? 행정 관료제는 어떠한 규범에 따라 업무를 수행해야 할까요? 진정 관료들은 집권 세력이 결정한 바를 아무런 영혼 없이 무조건 집행하기만 하면 될까요? 이 책을 통해 이 같은 질문들에 대해 독자들과 함께 생각을 나누어 보고자 합니다.

이 책은 크게 3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부에서는 정책 갈등관리의 이론적 전제와 방안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서로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에서 정책을 둘러싼 갈등을 풀어나가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공유된 전제가 필요합니다. 이 같은 공유된 전제에서 출발하여 몇 가지 기본적 규범을 찾아내고 거기서부터 한 걸음씩 정책에 대한 탐색을 시작할 수 있게 됩니다. 

1부의 1장은 자유와 책임을 그 출발점으로 삼았습니다. 아무리 생각이 달라도 우리는 모두 자유로운 인간이라는 점을 동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의 전제는 책임입니다. 이는 우리가 모두 공동체에서 생활한다는 객관적 사실에 근거합니다. 공동체에서 생활하기 위해서는 일정한 규칙이 필요하고, 그에 대한 책임이 따르게 됩니다. 1장은 자유와 책임에 관해 깊이 있게 분석하고 올바른 공공정책의 역할과 범위에 대해 규명합니다. 그러나 자유와 책임만으로는 공공정책을 설계하는데 충분하지 않고, 더 나아가 서로 다른 이해당사자의 입장 간의 차이를 잘 조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2장에서는 이성과 숙의를 통한 갈등관리에 대해 분석합니다. 특히 민주주의 사회에서 갈등관리를 위한 조건과 시민들이 가져야 할 역량에 대해 살펴봅니다. 

제2부는 공공정책을 집행하는 행정 관료제의 책임성과 정책관리에 대해 살펴보고 있습니다. 특히 3장은 입법·행정·사법 사이의 견제와 균형뿐만 아니라 집권 세력과 행정 관료제 사이의 통제와 견제가 민주주의·공화주의에 따른 정책을 집행하는 길이라는 점을 주장합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행정 관료제가 지켜야 할 정치적 중립은 헌법적 가치를 준수하고 존중하는 구성적 정치성임을 밝힙니다. 이와 함께 4장은 공공정책의 정치적 성격에 살펴보면서, 정책이 정부가 의도하지 않은 정치적 성격을 띨 수 있음을 지적하고, 5장은 공무원의 적극 행정을 방해하는 것이 복지부동뿐만 아니라 권한 남용이라는 이론을 제시합니다. 

3부는 1부와 2부에서 살펴본 이론과 행정 체제를 가지고 다섯 가지 구체적인 정책에 대해 살펴봅니다. 신고리 5·6호기 원전 공사 재개에 관한 공론조사, 보편적 복지와 공적연금 개혁 등 갈등의 쟁점이 되는 정책 사안에 대해 다룹니다. 또한, 눈을 세계로 돌려 국제개발 협력의 규범적 논거와 그에 따른 올바른 방향에 대해 살펴보고, 미래에 민주주의의 위협이 될 수 있는 지능 정부에 대해서 논의합니다. 이러한 정책을 설계하고 집행하기 위해 증거에 기반한 합리적 접근은 꼭 필요한 조건입니다. 이러한 조건에 따른 지난 60년간 정책학의 연구는 정책의 내적 타당성을 점진적으로 높여 주었습니다. 그러나 이 책의 이론적 논의에서 밝히듯이 과학적·합리적 분석만으로는 올바른 정책을 만들기에 충분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과학적·합리적 관점에 더해 규범적 관점의 접근으로 공공갈등을 해소하는 올바른 정책을 만들 수 있음을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이 책은 오랫동안 정책에 관해 연구해온 필자의 실천적 고민을 담고 있습니다. 그 고민의 핵심 내용은 정치이론과 규범적 접근을 통해 정책문제를 풀어보고자 하는 모색과 탐구입니다. 그러나 정책연구가 정치이론과 철학의 도움만을 받는 것만은 아닙니다. 정치이론과 규범은 불가피하게 추상적이고, 경쟁적인 철학 사이에서 양립 불가능한 이론적 평행선을 제시하는 데 그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생활세계에서 제기되는 구체적인 공공정책과 갈등에 관한 연구를 통해 이 같은 추상성을 극복한다면 그 또한 철학적 연구에 커다란 기여가 될 수 있습니다. 이 책에서 자유의 보편성에 관한 논의를 복지의 보편적 보장으로 구체화한 것이 좋은 예입니다. 이렇게 정치이론과 정책연구의 실용적 결합을 통해 조금씩 더 나은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 갈 수 있다고 필자는 책의 결론을 맺습니다.


권혁주 서울대·정책학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교수. 서울대 정치학과 졸업. University of Oxford, St Antony’s College에서 박사학위 취득. 성균관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UN Research Institute for Social Development의 Research Coordinator, 한국행정학보 편집위원장, Global Social Policy 공동 편집위원장, 국제개발협력학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서울대학교 글로벌 행정발전 연구소에서 관료제, 사회개발, 취약국가에 관해 연구를 수행했으며, 최근에는 공화주의 관점에서 민주적 국정운영에 관해 연구를 수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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