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문학의 탄생 - 쿠쟁 드 그랭빌의 『최후의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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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문학의 탄생 - 쿠쟁 드 그랭빌의 『최후의 인간』
  • 박아르마 서평위원/건양대·프랑스문학
  • 승인 2023.01.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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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베르타스]

 

‘최후의 인간’은 인류의 소멸을 전제로 탄생한 종말론적 상상력의 산물일 것이다. 인류의 종말이 실제 있을지, 있다면 언제일지, 최후의 생존자는 누구일지 묻다 보면 궁금증을 넘어 스스로 공포심을 만들어내기 마련이다. 마치 핵전쟁을 연상케 할 정도로 황폐해진 지구에서 최후의 인간이 탄생하고 그가 구원자처럼 인류의 재탄생을 위한 여행을 떠나며, 인간의 완전한 절멸을 원하는 최초의 인간이 그를 만나 인류 재탄생 프로젝트를 단념하게 만든다는 스토리가 있다.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이야기이다. 영화 ‘아바타’로 관객을 모으고 있는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40년 전 영화 ‘터미네이터’에서도 인류를 구원할 사라 코너의 출산과 그녀의 출산을 막아 인류의 종말을 완성하려는 미래에서 온 사이보그 T-800의 싸움을 볼 수 있다. ‘최후의 인간’에 관한 종말론적 상상력을 이야기로 처음 만든 사람은 프랑스 작가 쿠쟁 드 그랭빌이다. 그는 이른바 ‘세계 최초의 SF 문학’을 탄생시킨 장본인으로 무려 200년 전에 디스토피아와 아포칼립스에 관한 상상을 통해 최후의 인간을 등장시킨 서사를 완성했다니 놀랍기만 하다.

『최후의 인간Le dernier homme』(도서출판 b)의 저자 장 바티스트 쿠쟁 드 그랭빌은 1746년 프랑스의 르 아브르에서 태어난 인물로 결혼한 전직 사제로 프랑스 대혁명을 겪었고 자살로 생을 마감한 독특한 이력을 지니고 있다. 비록 그랭빌이 구체제가 몰락한 대혁명의 시대를 살았고 성직자로서 신의 의지가 아닌 인간의 이성이 중심이 되는 계몽주의와 유물론의 확산을 지켜보았다고는 하지만 그가 떠올린 인류의 현실은 참혹하기만 하다. 인간은 생식력의 퇴조로 자식을 낳지 못하고 식량 부족으로 기아에 시달린다. 그뿐만 아니라 태양계의 질서가 깨짐에 따라 인류는 기후 변화에 따른 위기를 겪게 되고 마침내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 한편으로는 이미 핵전쟁을 경험했고 재앙에 가까운 기후 변화와 환경파괴를 매일 겪고 있는 우리 시대와 비교하여 19세기가 그 정도로 아포칼립스의 시대였는지 궁금해진다. 『최후의 인간』을 단지 저자의 종말론적 세계관을 반영하는 작품으로만 본다면 그의 소설에 세계 최초의 SF 문학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저 전직 가톨릭 신부가 성경의 요한 계시록을 변주해서 기이한 이야기를 만들어낸 것으로 볼 수 있으니 말이다.

그랭빌이 소설을 통해 보여준 과학적 상상력은 그의 동향인 쥘 베른 못지않게 기발하고 경이롭다. 주인공 ‘오메가르’가 인류 재탄생 프로젝트를 위해 배우자가 있다는 브라질로 가는 데 사용한 이동수단은 비행선이다. 당시 인류는 대륙을 횡단하는 첨단 교통수단을 만들어냈을 뿐 아니라 지구의 종말에 맞서 강과 바다의 물길을 인위적으로 돌려 간척지를 만들어 식량 생산량을 늘리려고 시도한다. 다만 ‘유한한 것’을 ‘무한한 것’으로 만들려는 인간의 노력 혹은 과학기술의 힘은 자원의 남획과 환경파괴를 불러일으켜 오히려 인류의 종말을 앞당길 뿐이다. 과학기술의 발전이 인류에게 무한대의 행복을 보장하고 밝은 미래를 약속해줄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은 그의 소설에서 여지없이 깨진다. 쥘 베른의 소설 『신비의 섬』의 등장인물들도 과학자 사이러스 스미스의 능력을 맹신하며 기구를 타고 표류하게 된 섬에 전기와 철도까지 놓으려 하지만 섬이 완전히 폭발하면서 좌절하고 만다. 인류의 달 착륙을 예견할 정도로 과학기술의 발전에 희망을 품었던 쥘 베른조차 환경파괴에 따른 재앙에 대한 경고는 그랭빌과 다르지 않았다.

인류의 파멸을 목전에 두고 있는 최후의 인간 오메가르는 어떤 사람도 겪지 못한 딜레마에 놓인다. 그의 첫 번째 선택은 ‘터미네이터’의 사라 코너처럼 결혼을 통해 아이를 낳아 그 후손이 저항군의 지도자가 되든 인류 부활의 희망이 되든 인류의 종말에 정면으로 맞서는 것이다. 두 번째 선택은 신의 의지를 전하러 과거에서 온 최초의 인간 아담의 말을 받아들여 출산을 막고 인류의 역사를 끝냄으로써 요한 계시록을 완성하는 것이다. 유다가 예수를 팔아넘겨 부활이라는 사건을 가능하게 했다면 오메가르는 스스로 소멸하여 신의 역사를 이루려 한 셈이다. 온전히 한 인간의 선택에 따라 인류의 미래가 결정되는 것도 전형적인 SF 소설과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인류 종말은 이미 예견되었고 완성될 사건일까, 그랭빌이 인류 종말을 상상했던 19세기 초와 비교해 21세기의 인류는 어떤 환경에 놓여 있는 것일까, 우리도 오메가르 앞에 놓여 있던 선택지를 언젠가 받게 될까, SF 소설에 빠진 것인지 새해 벽두부터 희망 대신 인류의 불안한 미래를 떠올리게 된다.


박아르마 서평위원/건양대·프랑스문학

건양대학교 휴머니티칼리지 교수. 서울대 대학원에서 프랑스 현대문학을 전공하여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건양대 휴머니티칼리지 브리꼴레르 학부 학부장과 박범신 문학콘텐츠 연구소 소장으로 있다. 지은 책으로 『글쓰기란 무엇인가』, 『투르니에 소설의 사실과 신화』가 있고, 번역한 책으로 『살로메』, 『춤추는 휠체어』, 『까미유의 동물 블로그』, 『축구화를 신은 소크라테스』, 『칸트 교수의 정신없는 하루-칸트 편』, 『데카르트의 사악한 정령-데카르트 편』, 『녹색 광선』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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