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구열 … 중국과 한국 ⑳
상태바
학구열 … 중국과 한국 ⑳
  • 조동일 논설고문/서울대학교 명예교수·국문학
  • 승인 2023.01.01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조동일 칼럼]

한국은 중국의 책을 가져와 열심히 공부했다. 그 정도가 지나치다고 여기고 중국에서 질투했다. 북송 문인 소식(蘇軾)은 고려에 책을 수출하지 말아야 한다고 나라에 상소했다. 중국에는 없는 책이 고려에는 있으니 중국의 체면이 손상된다고 했다. 

그보다 조금 뒤에, 북송에서 고려로 온 사신 서긍(徐兢)이 견문한 바를 <고려도경>(高麗圖經)에 기록했다. 곳곳에 책이 아주 많고, 학구열이 대단해 군졸이나 어린아이들까지 글공부를 한다고 했다. 모두 중국에서 볼 수 있는 바를 능가해 놀랍다고 했다.

한국인은 중국보다 뒤떨어지지 않으려고, 중국에 지지 않으려고 공부를 열심히 했다. 중국은 읽을 책을 공급하고, 경쟁 상대가 되어주는 이중의 기여를 했다. 읽기만 하지 않고 쓰기도 열심히 해서 글을 읽고 책을 지은 업적이 나날이 축적되었다. 조선 초에 본국의 문장을 모아서 정리한 <동문선>(東文選)을 편찬하면서 그 서문에서 말했다.

“고려가 삼국을 통일한 이래로 문치가 차츰 흥성했다. 광종(光宗)은 과거제도를 설치해 인재를 뽑았다.” 그 이후 당대에 이르기까지 “(빼어난) 인물들이 정수(精粹)를 갖춘 문장을 지어 역동성을 발휘한 것이 또한 옛날에 비해 손색이 없다. 이것은 우리 동방의 문장이다. 한나라나 당나라의 문장이 아니며 또한 송나라나 원나라의 문장이 아니라, 바로 우리나라의 문장이다. 당연히 역대의 문장과 더불어 천지 사이에 나란히 행세해야 한다. 어찌 민멸되어 전해지지 않아서야 되겠는가.” 

신분제를 철폐하고 평등사회를 이룩하는 과정에서 한국인 누구나 상위신분의 양반이 되는 상향평준화를 택해 학업이 필수요건으로 등장한 것이 중국이나 일본과 달랐다. 중국은 과거 급제자 본인만 당대에 한해 신사(紳士)라는 상위신분을 지니다가, 신해혁명을 거치고 과거제가 철폐되자 상위신분 소지자가 없어져 하향평준화 사회가 되었다. 일본에서는 정인(町人, 조닌)이라는 상공업자를 새로운 신분으로 인정해 신분제의 동요를 막은 효과가 오늘날까지 지속된다. 누구나 분수에 맞게 처신하고 직업 이동이 적어 활력이 모자란다. 

한국에서는 과거 급제를 필수 요건으로 하지 않고 양반 신분이 유지되며, 공식 또는 비공식의 방법으로 양반이 되는 길이 열려 있었다. 양반 노릇을 하려면 글공부를 하고 과거에 응시해야 했다. 과거 응시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나 큰 혼잡이 일어났다. 한시문을 지어 문집을 만드는 일이 성행해 전적의 유산이 넘치도록 많다. 그 정도에 그치지 않고, 한문 공부의 열풍이 사회 전체로 퍼졌다. “양반이 글 못하면 절로 상놈 되고/ 상놈이 글 하면 절로 양반 되나니/ 두어라 양반 상놈 글로 구별하느니라”라고 하는 고시조가 있다. 

중인 신분의 시인 천수경(千壽慶)이 차린 서당은 한문을 잘 가르쳐 큰 인기를 얻은 것으로 알려졌다. 위항의 부호들이 자식들을 가르치기 위하여 다투어 초치했다. 학생이 모두 5ㆍ60명이나 되어 반을 나누어 교육을 할 정도였다. 법도가 매우 엄했다고 했다. 그 무렵 김홍도(金弘道)가 그린 풍속화에 아버지는 자리를 짜고, 어머니는 물레를 돌리는 곁에서 아이가 책을 읽는 모습을 그린 것이 있다. 어떻게 해서든지 자식은 가르쳐야 한다고 여겨 서당에 보내는 풍조를 보여준다. 

학구열은 외국으로 이주한 교민에게서도 확인되는 한국인의 특성이다. 중국 조선족은 교육을 민족종교로 삼는다고 한다. 구소련 여러 나라의 고려인이나 미주의 한인도 공부를 잘 해 사회 진출을 바람직하게 하는 데 남다른 노력을 쏟고 있다. 카자흐스탄에 갔을 때, 어린 나이에 강제로 이주된 고려인이 여성들까지 학교를 다녀 우수한 성적을 얻어 명문 대학을 졸업했다는 말을 듣고 놀랐다.

학구열만 가지고 대단한 업적을 성취하지는 않았다. 한문과 함께 국문을 사용하고. 글쓰기가 구비전승과 밀접한 관련을 가진 것이 남다른 역량의 근거가 되었다. 경전을 언해하자 뜻이 분명해지고, 쟁점이 드러난다. 많은 논란을 해온 것은 말과 글이 상호작용을 했기 때문이다. 한문에서 해온 체언철학에다, 구비철학을 원천으로 하는 용언철학을 보태 둘이 생극의 관계를 가지도록 했다. 

안민영(安玟英)이 “높으락 낮으락 하며 멀기와 가깝기와/ 모지락 둥그락 하며 길기와 자르기와”라고 한 것이 용언철학의 좋은 본보기이다. 체언은 버리고 용언을 다채롭게 활용해, 상생과 상극이 ”둘이락 하나락, 밀기와 당기기와”라고 하는 데 이르렀다. 이런 깨달음이 잠재적으로 작용해, 여러 방면의 창조가 성과 있게 이루어진다. 그 내막을 알면 하는 일을 더 잘 할 수 있다.

한국은 중국과 경쟁하고 중국보다 앞서려고 열심히 노력했다. 학구열을 높이는 것이 가장 소중요하다고 여기고 노력을 집중한 결과, 교육과 학문에서 대단한 발전을 이룩했다. 중국은 더 노력할 필요가 없는 높은 경지에 이르렀다고 여기고, 경쟁 상대를 찾지 않아 이럴 수 없다. 지금 쓰고 있는 이 책을, 중국에서는 생각하지도 않는다.

 

조동일 논설고문/서울대학교 명예교수·국문학

서울대학교 불어불문학과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으며 같은 대학 대학원 국어국문학과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계명대학교, 영남대학교, 한국학대학원 교수를 거쳐 서울대학교 교수를 지냈다. 서울대 명예교수이자 학술원 회원으로 계명대학교 석좌교수를 역임했으며 현재 중국 연변대학 명예교수이기도 하다. 주요 저서로 <서사민요연구>, <한국문학통사>(전6권), <우리 학문의 길>, <인문학문의 사명>, <소설의 사회사 비교론>(전3권), <대등한 화합: 동아시아문명의 심층> 등 다수가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