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 진보와 보수 사조의 생성과 전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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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 진보와 보수 사조의 생성과 전개
  • 고성빈 논설위원/제주대학교·정치학
  • 승인 2023.01.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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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빈 칼럼]

‘철학자의 길’에서 출발하는 진보와 보수

사상과 철학은 정치를 통해서 구현된다. 그래서 정치적 진보와 보수 사조의 원류는 철학자의 길에서 사색을 통해 탄생하고 성장한다. 

진보주의는 사고의 운동성과 유동성을 특성으로 하며, 따라서 외발성 변화의 자극에 대해 저항감보다 유연하게 대하는 경향이다. 보수주의는 사고의 관례와 관성을 내면화하며 외발성 자극에 대해 자존과 권위로 대하는 경향이다. 진보는 변화에 친화적이라 사고의 경계와 구분 짓기를 허물려고 하며, 보수는 현상의 안정적 유지에 능숙하여 사고의 경계와 구분하기를 확정하려고 한다. 

이른바, 진보는 변화하는 환경에서 신속하게 새로운 가치를 개척해 나가려는 경향이지만, 보수는 변화하는 환경에서 잃어버릴 수 있는 고유의 가치를 수호하려는 사명감이 강하다. 진보는 현상에 대해 문제의식을 항상 품고 있으며, 보수는 현상 유지의 이점을 생각한다. 보수가 ‘근대의 완성’을 외칠 때, 진보는 ‘탈근대적 문제의식’을 표출한다. 

그러나 실제로 진보와 보수가 현실에 나타나는 현상은 상대적이다. 시대가 흐르면 새로운 사안이 개입되어 진보적이고 보수적인 특성의 양과 질이 달라지기도 한다. 즉, 시대에 따라 양자는 서로 상대적으로 진보적이고 또한 보수적이다. 

예를 들어, 동양의 주자학은 한대 이래 불교와 도교에 의해 종교적 신비주의가 만연하여 혼란해진 사회 사조와 풍조를 ‘거경궁리’(居敬窮理)를 활용하여 합리적 영역으로 인도한 진보적 사상이었으나, 이후 시대 흐름에 따라 교조화하여 보수의 상징이 되었다. 

서구 계몽주의 시대는 기독교적 세계관에서 탈피하여 이성과 계몽, 주체와 국가를 인간 중심으로 정의하고 개념화하는 것이 근대적 진보였다. 그러나 오늘날은 근대가 규정한 개념을 보수는 수호하려고 하고, 진보는 탈근대적 문제의식을 제기하면서 자신들이 규정했던 ‘근대적 사고체계’를 파편화하고 있다. 

따라서 동아시아의 서세동점-미세동점의 시대에 서양식 모던-보이와 모던-걸은 진보의 동경 대상이었으나, 21세기 모더니즘은 ‘유럽의 철 지난 명품브랜드’가 되고 말았다. 이제는 어느 모던-걸이 전혜린처럼 담배를 물고, 명동 ‘모나리자 다방’에 앉아 불란서 소설, “슬픔이여 안녕”(프랑수와즈 사강)을 읽고 있다면 동네 할머니가 틀림없다. 


서세동점 시대: 이란성 쌍둥이 탄생

이러한 논리를 배경으로 삼아, 21세기 동아시아의 이란성 쌍둥이 진보-보수 사조의 탄생과 전개를 판가름해보자. 특히, 서세동점과 미세동점(냉전과 탈냉전 이후) 시대를 거치면서 생성된 주제에 중점을 두고 토론한다. 

양대 사조의 원류를 경전적 사고체계가 주도했던 고전시대로 소급하지 않는다. 고전시대를 셈에 넣는다면, 공자는 보수, 역성혁명론을 말한 맹자는 진보, 맹자보다 순자는 더욱 진보, 성선설은 보수, 성악설은 진보라는, 어쩌면 황당하게 통속적인 진보-보수 이원론에 빠져 허우적거릴 수밖에 없다. 굳이 고전시대를 셈에 넣어 진보-보수를 나누려면, 구체적인 사안을 가지고 나누어야 할 것이며 그것을 일반화하는 것은 ‘논란을 위한 논란’을 각오해야 할 것이다. 

대체로 서세동점의 시대에는 동서이원론 사유체계에서 진보와 보수 사조가 형성되었다. 문화적 반전통-서구화는 진보였고, 전통-신전통 사조는 보수였다. 정치영역에서는 서구적 계몽과 반제국-반식민 저항사조를 공통으로 제시하던 공화주의적 민족주의 진영은 보수, 계급혁명의 사회주의 진영은 진보로 분류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시대 동아시아 시민사회는 ‘역사-문화의 단절시대’였다. 일본은 맹목적 서구모방의 침략주의로, 한국과 중국은 피침략으로 자기 주도의 역사와 문화가 단절된 시대라서 ‘순응과 모방, 저항과 모방, 저항과 거부’라는 한정된 선택지밖에 없던 시대였다. 다만 이 시대의 주류인 저항(구국)과 모방(계몽)의 사조는 이후 미세동점의 시대로 이어져 진보와 보수 사조 발전에 중요한 씨앗으로 작용하였다는 의미가 있다. 


미세동점 시대: 성장

동아시아 차원에서 진보와 보수 사조를 논하는 것은 국가주의와 아울러 서구중심주의를 벗어나려는 노력의 표현이다. 그리고 동아시아 문제들은 한 국가에 한정된 경우보다는 한중일 모두와 연동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탈냉전시대에 들어서 그동안 좌우 이념의 이원론적 대결구도에 빠져 제기하지 못했던 동아시아에 내재한 역사적, 정치적 문제들이 분출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동아시아 시민-지식인들이 주요 문제들에 대해 어떻게 의식하느냐에 따라 진보와 보수로 분류할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하며, 동아시아 시각으로 지역문제를 분석하려는 ‘동아시아학’에 중요한 참고가 되고 있다. 

동아시아의 진보와 보수 사조를 판가름하는 기준을 지식과 문화의 영역에서 살펴본다. 이 주제는 동아인의 정치체계와 생활세계의 영역에서 그다지 갈등적이지 않은 것처럼 보이지만, 심층에서 은밀하게 갈등의 근원을 구성하고 있다. 문제의 출발은 서구중심주의적 역사론과 근대화론에 대한 견해이다. 서세동점의 시대에 동아시아에는 서구식 근대화를 존숭하는 풍조가 발생하여 냉전시대까지 이어지면서 진보-보수 사조를 형성하였다. 

그러나 탈냉전 이후 오늘날에는 서구 주도의 지식-담론 패권에 대한 문제의식이 등장하면서 탈서구적이고 주체적인 역사와 정치발전을 추구하려는 진보 사조가 힘을 얻고 있다. 서구 오리엔탈리즘을 해체하려는 동아인의 주체적 각성은 이 같은 노력을 대표한다. 따라서 서구의 지식으로 역사를 해석하던 과거의 진보는 이제는 보수화하고, 자생적인 사유방식(탈서구중심주의 역사와 근대화론)으로 세계를 인식하는 새로운 진보 사조가 확산하고 있다. 

이른바, 근래 동아시아학은 동서양 어느 한 지향이 아닌 ‘탈동서이원론’의 사유를 추구하고 있다. 이것은 진보와 보수 양대 사고방식에 대한 진보적 문제의식의 소산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은 동아시아 고전문화에 집착하거나, 또는 서구식 사고만을 합리적이라고 보는 견해는 한 동전의 양면처럼 같은 맥락의 보수주의다. 

따라서 동아시아 근대화론과 관련하여 양대 사조의 특성을 적용해보면, “서구 주도 근대화론”(막스 베버 외)을 전복하는 “유교 주도 근대화론”(황태연)을 제기한 것은 진보적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두 논리가 모두 하나의 방향성만을 강조하면서 동서이원론을 선험적으로 내재화하는 측면에서는 보수적이다. 진보 사조의 운동성과 유연성을 장기 역사에 적용한다면, 인류 문명의 근대화 발전은 “동서양 상호학습효과에 의한 상호연동과 혼성근대화”(필자)를 통하여 끊임없이 ‘생성’(becoming)하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미국-서구의 콜로세움과 동아시아 검투사들

다음으로 사상적이고 내면적이지 않은 외면적이고 가시적인 갈등을 수반하는 진보와 보수 사조의 전개를 보자. 

첫째, 전후 정치적 진보와 보수가 동아시아에서 성장하는 데 결정적인 지표는 국가주의적 대결 구도를 완화하려는 사조인가 아니면 그것을 유지 확대하여 국익과 정파적 이익을 도모하는가이다. 즉, 동아시아 우호협력 증진을 중시하는 다원적 사고와 미국이 주도하는 이분법적 동맹체제를 중시하는 국가주의적 사고의 차이다.

진보 사조는 일본이 동아시아 침략사에 대해 솔직하게 반성한다는 전제에서 미세동점을 극복하고 자주적인 동아시아 협력체제를 만들어 나가자고 한다. 반면, 보수 사조는 미국과 힘을 합쳐 중국과 러시아의 침략적 대국주의(실제로 침략과 학살은 미국과 일본이 더 경험이 많다)에 대항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 때문에, 이들은 침략을 반성하지 않고 자부하는 일본 보수의 적반하장의 음모적 국가전략에 눈을 감고 미세동점의 지식-정치적 패권주의에 호응하고 있다. 

전후 미국은 남북한-중-러-일 사이에 교묘하게 갈등 관계를 조성하여 동아시아를 분열시키는 기만적 지배전략을 활용하고 있다. 여기에 지식계도 이러한 미국의 분열전략에 편승하거나 혹은 저항하려는 사조와 진영으로 나뉘어 갈등하고 있다. 예를 들어, 미국은 일본의 침략사에 대한 반성 부재를 간접적으로 묵인하면서 남북한-일, 중-일 양국의 대결구도를 조장하고 이용하고 있다. 또한 한반도 분단체체를 영속화하기 위해 남북갈등, 남남갈등을 증폭시켜 북한-중-러와 한-미-일 양대 갈등 구조를 미국의 이익에 맞추어 운영하고 있다. 미국에는 해결되어도 안 되어도 두통거리인 북한 핵문제는 미국의 패권전략에 좋은 향신료가 되고 있다. 대북제제는 남북한 협력체제 구성을 방해하기 위해 북한을 총알받이로 내세운 사실상 한반도를 식민화하기 위한 지배전략이다. 즉, 남북한과 남한의 진보-보수 양 진영은 미국이 건설한 콜로세움에 검투사로 나서 미국과 유럽, 중-일 관객이 팝콘을 먹으며 환호하는 가운데 도끼를 휘두르며 싸움에 열중하고 있다. 

이렇게 진보-보수 사조는 철학의 길에서 출발했으나, 그 동아시아 현실형은 국가주의적 ‘기만이 판치는 체스판’(브레진스키)에서 ‘나 살고 너 죽기’ 데스게임으로 전개되고 있다. 

다음으로, 동아시아에서 벌어지는 국가주의적 갈등의 시각에서 진보-보수 바라보기를 넘어 그것을 마주하는 시민-지식인 사회로 들어가 본다. 시민-지식인의 세계에서는 제국과 국가권력의 의도를 중시하는 보수와 그보다는 민중의 바람을 더 중시하는 진보로 특성화할 수 있다. 

중국은 미국과의 갈등구도를 이용하여 민주화와 정치개혁을 무한 연장하고 있다. 진보적 시민-지식인은 민주화와 표현의 자유를 희망하면서 하드파워 대국 건설보다 신문화 건설을 통한 문명대국의 길을 내심 희망하고 있다. 반면 민족주의적 감정으로 공산당의 반미전략에 편승하여 신중화제국몽을 상상하는 대국주의적 보수도 있다. 이들은 강력하게 중국 중심주의 사고에서 동아시아 문화-역사공정을 지지한다. 

일본 정계와 사회는 침략사를 반성하여 동아인의 공감을 얻고 지역협력을 중시하는 진보와 그것을 거부하고 탈아입미 전략에 집중하려는 보수로 나뉜다. 보수는 동아시아 협력을 중시하기보다 한-미-일과 중-러-북한 축과의 경쟁구도를 고정화하여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확보하는 데 힘을 더 쏟고 있다. 특히 일본 사회는 충분히 민주화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진보적 시민-지식인 활동이 한국보다 미약한 게 사실이다. 침략사를 반성하여 이웃 국가들과의 화해를 촉구하는 진보 인사는 극소수에 불과하여 진보적 정치세력과의 연대에 많은 도움을 주지 못하는 형편이다.

한국전 이래 한반도는 미-중-소(러)에 의해 분단체제가 고착화하면서 한국 내 시민-지식인 사회는 미국의 존재에 대한 견해로 나뉜다. 진보는 ‘비판적 문제의식’, 보수는 ‘무조건 순종’으로 미국의 존재를 바라본다. 북한에 대해서도 진보는 한반도 민족과 국가의 만년대계를 위하여 과거의 원한을 뒤로 하고 대화와 경제협력을 복원하려고 하는데, 보수는 미국의 국익을 자기화하여 남북 대결구도를 확대생산하면서 정파적 이익만을 추구하고 있다. 이러한 남북 대결구도는 사실 미-중-러-일본이 바라는 바이다. 남북 협력구도가 구축되면 한반도를 자신들의 욕심대로 지배하기가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동아시아에서 남북한-대만-오키나와 문제를 장난감 다루듯 하면서 주인 행세하는 미국은 (한중일+아세안)이 지역에서 평화공존의 사고를 확대하는 추세를 달가워하지 않는다. 자국의 영향력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중국도 암묵적으로는 미국과 함께 한-일 갈등, 남-북 갈등, 남-남 갈등을 즐기고 있다. 즉, 한국 보수와 미-중-일이 묵시적으로 공감하는 바는 남-북한 인민은 영원히 싸워야 하고, 심지어 남한 내부에서도 진보-보수가 열렬히 친미-반미로 싸우면서 정신을 못 차려야 즐겁다는 것이다. 게다가 한-중-일이 서로 적대하게 되면 미국은 비용도 안 들이고 이들을 견제할 수 있으므로 지속해서 분열전략을 동아시아에 발휘할 것이다. 

진보 사조에서 보면, 현 상황에서 주한미군은 ‘동아시아의 계륵’이다. ‘미국이 동아시아 평화를 지켜준다’라고 큰소리치고 있는 게 가소롭다. 중국에서도 개혁 이전에는 한국과 일본으로 유학하거나 여행하는 것도 허용이 안 되었으나, 이제는 가능한 시대가 되었다. 일본 보수의 침략사 왜곡도 한-미, 미-일 안보동맹에 가려져 제대로 부각하지 못했으나 이제는 많은 토론이 진행되고 있다. 또한 중국이 자국 중심의 교역 관행을 발휘하는 것도 비판받고 있으며, 한국인의 지나친 친미-반중의 왜곡된 상호인식에 대해서도 성찰과 담론이 전개되고 있다. 그리고 이 모든 주제의 배후에는 ‘서구와 미국 중심주의적 세계인식’을 극복하려는 인정투쟁의 사유가 숨어 있다.


해답: 자기 주도의식의 각성

동아시아에서 양대 사조가 격렬하게 작용하는 세 지점은 대만 2·28학살(47년), 제주 4·3학살(48년), 오키나와 미군기지화(72년)이다. 대만 2·28에 대한 국가권력의 왜곡과 양안대결 구도, 제주 4·3에 대한 친미 보수정권의 국가폭력과 미세동점의 전주곡, 메이지 일본의 오키나와 강제병합(1879년)과 강압적 옥쇄사건(45년), 전후 미군기지화가 생성하는 갈등은 동아시아의 진보와 보수 사조의 갈등, 미제국-국가 동맹과 시민-지식인 사회의 상호긴장 관계를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나아가 이 세 섬의 진보적 시민-지식인에 의해 추진되는 반제국-반국가-반식민의 인정투쟁은 탈냉전시대 동아시아의 자의식 각성을 대변하고 있다. 

동양적 세계인식론은 자연과 국가, 인간을 하나의 유기체로 생각한다. 동아시아도 의식을 가진 한 생명체다. 내부의 구성단위들은 동아시아의 생명 유지를 위해 “상호연동과 혼성의 발전”을 지속하고 있다. 생명체는 성숙할수록 의식의 깨달음이 깊어지면서 ‘외부의 힘에 의존하면서 살아왔던 어린 시절을 성찰하며 자기 주도적으로 살기를 희망한다.’ 이러한 자의식의 계몽을 동아시아에 비추어 보는 이유는 이제야말로 동아인이 진보와 보수, 자주와 의존의 사이에서 무엇을 선택할 것인지를 판단해서 22세기 동아시아시대를 개척해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고성빈 논설위원/제주대학교·정치학

런던대학(SOAS)에서 정치학 박사를 취득했으며, 제주대학교 정치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동아시아 사상과 역사논쟁에 흥미를 가지고 현재 동아시아의 사상사적 문제에 관해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한국 근현대사 역사의 현장』(공저), 『동아시아 담론의 논리와 지향: 비판이론의 탐색』이 있으며, 그 외 동아시아담론, 중국, 일본, 티베트에 관한 다수의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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