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 권력에 맞서는 토끼의 민중적 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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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 권력에 맞서는 토끼의 민중적 슬기
  • 임재해(林在海) 안동대 명예교수·민속학
  • 승인 2023.01.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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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 기고] 띠로 보는 계묘년

 

올해는 공교롭게도 계묘년 토끼띠 해이다. 토끼해가 공교롭다고 하는 것은 토끼의 민중성 때문이다. 지난해 임인년이 백수의 왕 호랑이해라면, 올해 계묘년은 호랑이 권력에 핍박 받으며 수난을 겪는 백성 상징의 토끼해이다. 따라서 계묘년 새해에는 토끼해답게 권력의 횡포에 저항하는 시민들의 민중운동이 한층 드셀 조짐이다. 왜냐하면 토끼는 호랑이의 일방적 횡포에 순순히 당하지 않고 슬기로 반격을 가해 기존 상황을 역전시키는 능력을 지닌 까닭이다. 

호랑이해 다음에 으레 토끼해가 짝을 이루며 이어지는 것처럼, 한국 설화나 우화에서도 토끼는 으레 호랑이와 짝을 이루어 출현한다. 토끼와 호랑이는 늘 짝을 이루되, 상생의 짝이 아니라 상극의 짝을 이룬다. 호랑이는 백수의 왕으로서 군주를 상징하는 반면, 토끼는 힘없는 백성을 상징하는 까닭이다. 절대 군주로서 왕의 속성을 지닌 호랑이는 토끼를 보기만 하면 으레 잡아먹으려들기 일쑤이다. 그럼에도 토끼는 결코 호랑이에게 잡아먹히지 않는다. 오히려 슬기로 반격하여 호랑이를 죽음의 수렁에 빠뜨린다. 그러므로 호랑이와 토끼의 상하 강약 관계가 뒤집어져서 토끼는 해방되고 호랑이는 곤경에 처하는 반전이 일어난다. 

토끼가 호랑이의 폭력에서 벗어나는 것은 민중이 왕권의 횡포에서 해방되는 일이나 다르지 않다. 과연 그런 반전이 현실적으로 가능할까 의문이다. 힘으로 맞서서는 결코 왕권을 이길 수 없는 까닭이다. 그러나 슬기를 발휘하면 얼마든지 왕권을 무력하게 만들고 민중적 승리를 누릴 수 있다는 것이 토끼와 호랑이 이야기의 속뜻이다. 

권력에 맞서는 약자의 슬기는 권력의 욕망을 역이용하는 데서 발휘된다. 권력은 으레 두 가지 욕망을 추구한다. 하나는 권력욕이고 둘은 물욕이다. 실제로 호랑이는 백수의 왕이면서도 더 큰 권력을 숭배한다. 토끼는 그러한 점을 역이용하여 스스로 호랑이보다 더 큰 권력을 자처한다. 호랑이가 의심하자 토끼는 자기 뒤를 따라와 보라고 한다. 호랑이가 토끼 뒤를 따라가자 토끼 앞을 지나던 뭇 짐승들이 두려워서 벌벌 떨고 도망친다. 사실은 토끼 뒤의 호랑이를 보고 도망친 것인데, 호랑이는 토끼의 권력이 더 무서워서 그러는 줄 알고 토끼 몰래 도망치고 만다. 토끼는 권력의 속성을 끌어들여 무지한 호랑이 권력의 횡포를 물리친 것이다.

호랑이는 권력욕과 함께 물욕에도 눈이 어둡다. 먹을 것을 앞에 두고도 더 많은 먹을 것을 탐닉하다가 기어코 함정에 빠지게 된다. 토끼는 호랑이의 욕심을 잘 아는 까닭에 자기가 잡아먹힐 위험에 빠지면 으레 더 많은 먹을 것을 제시하여 호랑이의 욕심을 부추긴다. 물고기를 많이 낚아주겠다며 얼음 구멍에 호랑이 꼬리를 담그게 하거나, 참새를 많이 잡아먹도록 해주겠다며 눈을 감은 채 입을 벌리고 기다리게 한 다음 불을 질러서 호랑이를 죽음의 위기로 몰아넣는다. 토끼를 잡아먹으려다가 더 큰 욕심 탓에 죽을 고비에 이르는 것이 호랑이다. 

왕과 백성, 권력과 민중의 상하 종속관계가 뒤집어지는 반전 상황은 현실 권력에도 고스란히 나타난다. 권력에 대한 욕망으로 대통령 임기를 부당하게 연장하여 장기집권하던 독재자는 이승만처럼 쫓겨나거나 박정희처럼 피살되기 마련이다. 군사력으로 권력을 찬탈한 전두환과 노태우도 군사반란죄로 징역형을 살았다. 권력의 힘으로 사적 이익을 챙기던 박근혜는 민중들의 촛불시위로 탄핵 당했고 이명박도 구속 수감되었다. 모두 지나친 권력욕과 물욕이 불러일으킨 죄과로서 사필귀정이라 할만하다. 최고 권력자에서 범죄자로 전락한 반전 상황의 배후에는 독재권력과 비리권력에 저항한 학생운동과 시민운동이 있었다.

 

               제23회 전국학생만화공모전 카툰 부문 금상 수상작 ‘윤석열차’.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윤석열 정부의 현실 권력에 대한 문제도 심각하다. 문제는 집권하면서 서서히 발생한 것이 아니라 출발부터 심각한 문제로 드러났다. 집권 초부터 두 가지 문제가 불거졌다. 하나는 대통령실의 용산 이전이고, 둘은 검찰 출신으로 주요 인사를 도배한 사실이다. 대통령 당선자가 정부 수립 이래 대통령 집무공간이었던 청와대를 거부하고 임의로 집무실을 옮긴 일은 처음이다. 관저도 마찬가지이다. 그럼 다음 대통령도 제멋대로 대통령실과 관저를 옮길 수 있다는 말이다. 결국 5년마다 대통령의 뜻에 따라 집무실과 관저를 일방적으로 옮긴다면, 재정 지출과 국력 손실, 국정 혼란이 엄청날 것이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 몫이다.

다음은 인사 문제이다. 군사쿠테타로 집권한 박정희와 전두환이 군부출신을 중용한 것처럼, 윤석열 정부는 검찰출신을 대거 중용했다. 법조계뿐만 아니라 경제와 행정, 정보 관련 기관에도 검찰을 집중 배치한 까닭에 검찰독재라는 말이 공공연하다. 군부독재의 잔재를 박근혜 탄핵으로 끝을 내는가 했는데, 새삼스레 검찰독재가 기승을 부리는 상황이 조성되었다.

검찰독재는 단순히 검찰이 정부 요직을 독점했다는 사실에 한정되지 않는다. 검찰인사 독점이 결국 문재인과 이재명 관련 수사를 과도하게 함으로써 보복 수사로 비춰지는 반면, 윤대통령 가족들의 범죄에 관해서는 덮어버린 채 넘어가는 불공정 행태로 나타난다는 사실이다. 장모 최은순씨의 범죄는 물론, 부인 김건희씨의 허위이력서, 주가조작, 논문표절 등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든 엄청난 사건들에 대해서는 아예 수사조차 하지 않거나 혐의 없음으로 종결하고 있다. 나의 죄는 덮어버리는 반면 정적의 죄는 과도하게 파헤치는 것이 검찰독재의 진상이다.

최고 권력을 잡고도 검찰권력으로 철옹성을 쌓는 한편, 전정부와 야당, 노조를 적으로 간주하여 공격적 수사를 하는 것은 권력욕 과잉이다. 권력욕에 이어 사적 관계에 있는 인물을 요직에 채용하고, 대통령실과 관저 공사를 맡도록 하여 이권을 챙기도록 하는 것은 물욕 과잉이다. 김건희씨가 목에 걸고 손목에 찬 값진 보석들이 대통령실 말대로 지인에게 빌린 것이라면, 이 또한 지나친 물욕 과잉이다. 지나친 권력욕은 독재로 이어지고 물욕의 탐닉은 부정부패를 낳기 마련이다.

조문 없는 조문외교와 이** 욕설 논란으로 빚은 외교 참사 등은 논란거리로 머물다 사라질 문제이다. 그러나 사실 보도를 한 MBC를 취재에서 배제하는 행위는 언론 탄압으로 두고두고 문제될 것이다. 이태원 참사에 대한 사전 대응 소홀과 사후 처리의 무책임에 대해서도 쉽사리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정부의 존재 이유인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지 못한 책임에 대해서는 유족과 함께, 뜻을 같이하는 시민들이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하며 책임자 처벌을 요구할 것이기 때문이다. 

재벌기업의 법인세 감세를 서두르는 반면에 사회적 약자에 대한 복지예산을 축소한다든가, 기업주와 사용자 편에 서서 강경한 노조 탄압을 자행하는 등으로 빈익빈부익부 현상이 한층 심화될 조짐이다. 정치는 원래 백성들을 잘 다스리는 일이다. ‘다스리다’의 고어 ‘다ᄉᆞ리다’, ‘다ᄉᆞᆯ리다’의 어원은 ‘다 살리다’이다. 다 살리는 정치를 하려면 못 사는 사람을 잘 살게 하는 것이 최선이다. 그런데 지금 정부는 잘 사는 사람은 더 잘 살게, 못 사는 사람은 더 못 살게 하는 최악의 정치를 하고 있다. 그러므로 경인년에 벌어진 호랑이 권력의 폭주에 대하여 계묘년과 함께 출현하는 토끼의 민중적 슬기는 사태를 반전시키는 역습으로 나타나게 마련이다. 

 

지난해 8월 5일 국회 소통관에서 국내 13개 교수연구자 단체가 공동으로 김건희 여사 논문 표절에 대한 성명서를 발표했다.

교수사회도 슬기를 발휘하여 권력의 횡포로 일그러진 학문세계를 바로잡아야 마땅한 한 해가 될 것이다. 지난해는 권력의 위세에 눌려 상습적인 가짜이력서로 대학 강단에 선 강사에 대해서도 침묵하고, 명백한 박사학위논문 표절에 대해서도 속수무책이었다. 표절 사실을 다각적으로 검증하여 밝히는 데까지 나아갔으나 학위논문을 취소하는 데는 이르지 못했다. 뜻있는 교수들이 권력에 정면으로 맞서서 표절 사실을 구체적으로 밝혔으나 계란으로 바위치기였다. 교수집단이 가장 무력했던 한 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권력이 워낙 뻔뻔스러운 것은 물론, 대학이 권력의 시녀 노릇을 자처한 데다가 교육부까지 표절논문을 옹호하는 데 맞장구를 친 까닭이다. 

지금은 마치 학위논문 표절이 없었던 일처럼 잊혀져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 맞서려면 역설적 논리로 표절 사실을 일깨우도록 민중적 슬기를 발휘해야 한다. 박사학위의 명예를 끌어와 사실상 그 명예를 무색하게 만들고 오히려 박사학위에 숨겨진 허위를 드러나게 하는 방법이다. 그런 방법 가운데 하나가 ‘여사’를 드높여 ‘박사’로 호명함으로써 가짜박사를 부각하는 것이다. 그러자면 ‘영부인 김여사’가 아니라 ‘영부인 김박사’로 꼬박꼬박 호명할 필요가 있다.   

‘김박사’로 일컬을 때마다 김건희씨는 표절논문으로 학위를 취득한 가짜박사라는 사실을 상기시키도록 하는 것이다. 표절 논란이 극심한데도 침묵으로 일관한 ‘영부인 김박사’는 최소한의 염치조차 없는 까닭에 이 호명 또한 뻔뻔하게 묵살할 테지만, ‘영부인 김박사’ 호명을 듣는 국민들은 그녀가 사실상 가짜박사라는 사실을 새삼 알아차리게 마련이다. ‘박사’라는 명예로운 호명이 실제로는 불명예를 입증하는 호명으로 역설적 기능을 발휘하도록 하는 것이 토끼다운 슬기이다.

역법으로 보면, 토끼가 상징하는 묘시 또는 묘월은 한결같이 시작의 시간 또는 새로운 전환의 시기를 나타낸다. 묘시는 오전 5시와 6시로 하루 일과의 시작을 나타내는 시간이고, 묘월은 음력 2월로서 새봄이 시작되는 시기이다. 묘시는 어둠을 물리치고 여명의 아침을 맞이하는 시기이며, 묘월은 죽음의 겨울을 이기고 새싹이 움트는 생동의 계절이다. 역법으로서 계묘년 또한 이전 시기의 어둠과 죽음을 극복하고 광명과 생명의 환희를 맞이하는 전환의 해가 될 것이다. 그러나 역사적 전환은 저절로 오는 것이 아니다. 민중과 더불어 역사의 수레바퀴를 앞으로 굴리는 일에 대학의 지성들이 힘을 보태야 한다. 

토끼는 정치적 권력의 약자이면서 민중적 슬기의 강자이다. 횡포를 부리는 호랑이 권력을 슬기로 전복시키는 것이 토끼의 탁월한 역량이다. 인류의 역사는 정치권력의 횡포를 극복하고 민중적 슬기를 발휘하는 방향으로 나아왔다. 이것이 역사적 흐름의 실상이자 역사발전의 방향이다. 따라서 지성인들은 당연히 권력과 금력에 의도적으로 불화하는 것은 물론, 권력과 금력에 소외된 민중과 적극적으로 연대해야 한다. 그럼에도 교수들 가운데는 아직도 학문을 권력에 봉사하는 수단으로 이용하면서 사익을 추구하는 데 골몰하는 어용들이 적지 않다. 구체적으로 표절논문을 지도하고 심사하여 학위논문으로 통과시킨 교수들은 어용을 넘어서 표절에 협력한 공범자들이다. 교수사회는 이들부터 단죄하여 대학사회에서 추방해야 마땅하다.

교수사회가 사익추구에 매몰되어 공동체의 성숙과 역사발전을 거스른다면 지성인 이전에 예사 시민으로서도 부끄러운 일이다. 계묘년에는 교수사회가 깊이 성찰하고 크게 각성하여 역사적 진보의 이치에 맞게 민중적 슬기를 과감하게 발휘하는 특단의 노력이 기대되는 시기이다. 왜냐하면 지난해에는 권력에 의해 교수사회의 학문적 정당성이 왜곡되고 학위논문의 위상이 만신창이가 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민중적 슬기를 역동적으로 발휘하여 정치권력이 제멋대로 날뛰는 것을 막지 못하면 교수사회의 지성은 더 이상 설자리를 잃게 된다. 슬기를 잃은 지성인은 사실상 우매한 집단이나 다르지 않다. 계묘년 새해에는 교수사회의 집단지성이 호랑이 권력을 타도하는 토끼의 지혜처럼 더욱 변혁적으로 빛나는 한 해가 되길 바란다. 


임재해(林在海) 안동대 명예교수·민속학

영남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문학석사와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안동대학교 인문대 민속학과 교수로 있는 동안 민속학연구소장, 박물관장, 인문대학장을 역임하고, 실천민속학회장, 한국구비문학회장, 비교민속학회장, 한국민속학술단체연합회장 등의 학회활동을 했다. 현재 민속학과 명예교수, 남북역사문화교류협회 공동대표, 권정생어린이문화재단이사 일을 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 『민속문화를 읽는 열쇠말』, 『신라 금관의 기원을 밝힌다』, 『마을문화의 인문학적 가치』, 『고조선문화의 높이와 깊이』, 『고조선문명과 신시문화』 등 33 책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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