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 없는 싸움을 포기하지 않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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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 없는 싸움을 포기하지 않는 방법’
  • 교수노조
  • 승인 2022.12.27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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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논평]

어느덧 2023년이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을 만큼 다가왔다. 가는 해를 정리하고 다가오는 해를 준비할 때이다. 올해는 지난 수십 년간 적대적 공생관계를 유지해 온 거대 보수 양당 사이에 또 한 번의 정권 교체가 이루어진 해이다. 온건 보수 정당이 물러나고 극우 보수 정당이 집권함에 따라 정부의 친자본×반노동 행태는 더욱 극심해졌다. 윤석열 정부는 대우조선해양 노동자, 화물연대노동자 등 수많은 간접고용, 특수고용 노동자들을 무자비하게 탄압했고, 갈수록 심해지는 불평등을 완화하려는 노력은커녕 부자들의 세금을 줄여주고 줄어든 세금을 핑계로 복지 분야 예산을 대폭 삭감하는 등 인민이 아닌 자본에 충성하려는 본성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고등교육 분야도 예외는 아니었다. 대학 서열화와 사학비리라는 고질적인 병폐에 더해 학령인구 감소로 인한 비정년트랙 교수의 무차별 양산과 지역대학 위기까지 합쳐져 대한민국의 고등교육은 말 그대로 벼랑 끝에 서 있다. 지난 5월 유은혜 교육부장관 퇴임 후 위기 극복을 위해서는 도덕성과 전문성을 두루 갖춘 유능한 신임 장관이 절실했으나, 자격 미달 장관(후보자)이 두 번이나 낙마하는 우여곡절 끝에 결국 교육부 수장 자리에 오른 인물은 이명박 정부 시절 교육과학기술부 장‧차관과 교육문화수석을 담당하면서 ‘규제 철폐’ 중심의 시장주의적 교육 정책을 주도한 이주호 씨다. 

지난 12월 16일 이 장관은 자신의 첫 고등교육 주요 정책으로 ‘규제개혁’을 들고 나왔다. 과거 자신이 정책 책임자로 추진한 대학설립 준칙주의 도입으로 제정된 「대학설립·운영 규정」의 4대 요건(교사, 교지, 교원, 수익용 기본재산) 관련 기준을 대폭 완화하겠다는 것이 핵심인데, 이는 정부의 ‘규제 완화’ 정책 기조에 맞춰 사학 운영자들의 요구를 전폭 수용한 것일 뿐 학령인구 감소, 온라인수업 확대 등 변화하는 환경에 맞는 교육여건을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추가 조치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무책임한 계획이다. 이 정책은 필시 무분별한 구조조정과 교육여건 후퇴를 초래해 고등교육 위기를 심화할 것이며, 그로 인한 피해와 고통은 언제나 그래왔듯 기득권 사다리의 꼭대기에 오르지 못한 대다수 대학 구성원들의 몫이 될 것이다. 

이처럼 수구 보수 세력의 집권으로 내년에는 상황이 더욱 악화할 것으로 예상하기에 이를 막기 위한 진보개혁 세력의 더욱 강력한 투쟁 계획이 필요한 시점이다. 문제는 이미 지난 수십 년간 전국교수노동조합을 위시한 진보 성향의 다양한 고등교육단체들이 거대 양당의 무책임과 무능함에 맞서 투쟁해 왔음에도 상황은 나아지기는커녕 더욱 악화하였다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작금의 고등교육이 처한 절체절명의 위기야말로 우리의 패배를 입증하는 확실한 증거이다. 이길 때보다 질 때가 훨씬 더 많고 갈수록 악화하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어떻게 더욱 강력한 투쟁이 가능할 수 있을까. 

교육운동을 포함한 노동⸱사회운동의 동기는 사람마다 다르다. 내가 당한 부당함에 대한 억울함, 나보다 열악한 처지에 놓인 이들에 대한 동정심, 더 나은 세상을 추구하는 정의로운 신념 등 다양한 이유가 있을 수 있고 그 이유는 각기 모두 훌륭하다. 하지만 감정이나 신념에만 의지해서는 희망이 안 보이는 싸움을 지속하기란 쉽지 않다. 억울함이나 동정심 같은 감정은 그 감정을 일으켰던 특정 문제의 해소와 함께, 혹은 두려움이나 이기심 등 그 감정을 잠식할 만한 다른 감정에 의해 자연스레 사라지기 마련이며, 논리와 이성에 바탕을 둔 신념은 투쟁에 따르는 육체적, 정신적 피곤함과 고통에 따라 꺾여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당장은) 질 걸 알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싸울 수 있는 원동력은 특정 감정이나 신념이 아닌 인간답게 살고자 하는 ‘의지’이다. 인간다운 삶을 위한 핵심은 자유이고 자유의 본질은 ‘자율적인 삶‘이다. 인간은 노동하는 존재이며, 노동이야말로 인간을 다른 동물과 구분 짓는 가장 중요한 특징 중 하나이기에 자율적인 삶은 노동의 자율성 없이는 불가능하다. 하지만 자본주의 체제에서 노동은 그 자체로 자아실현을 가능케 하는 목적이 아닌 생존수단에 불과하고, 노동의 결과물은 온전히 노동을 한 사람의 몫이 되지 못하며, 노동을 실행한 결과와 노동의 대가가 일치하지도 않는다. 즉, 자본주의 체제에서 노동자는 자본에 예속되어 노동의 자율성을 보장받지 못하는 ‘임금 노예’에 불과하다. 나 자신이 인간다운 삶을 위한 자유를 온전히 누리지 못하는 노예에 불과하다는 자각, 그리고 더는 노예로 살지 않겠다는 각오와 투쟁을 통해 느끼는 진정한 자유만이 지난한 투쟁의 과정을 견디게 하는 힘이다. 

21세기의 시작과 함께 신자유주의 체제는 본격적으로 한국 대학사회에도 침투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 다른 직종에 비교해 상대적으로 높은 노동 자율성을 보장받던 교수들의 노동조건은 한없이 추락해 수도권 상위 대학과 국공립대학의 극소수 정년계열 전임교수를 제외한 대다수 교수가 대학 밖의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전혀 다를 바 없는, 때로는 그보다 더욱 열악한 처지로 내몰리고 있다. 바로 그 점 때문에 헌법재판소도 2018년 공식적으로 교수도 노동기본권을 보장받아야 할 노동자라는 판결을 내린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교수라는 직업에 부여된 사회적 이미지로 인해 대다수 교수는 자신의 노동자성을 스스로 부정하는 것이 현실이다. 설령 자신이 노동자임을 의식하더라도 ‘배고픈 자유인’보다는 ‘배부른 노예’로 살길 원하는 근본적 한계를 넘어서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교수노조 합법화 이전은 물론이고 합법화 이후 노동조합에 가입하는 교수들이 급격히 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학사회의 온갖 문제가 쉽게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중요한 이유다.

어떤 계기로든 이대로는 살 수 없다, 인간답게 살겠다는 의지가 확고해지는 순간 투쟁은 더 선택이 아닌 내 삶의 일부가 될 수밖에 없다. 인간답게 살 수 없는 체제하에서 인간답게 살 방법은 인간답게 사는 것을 가로막는 바로 그 체제에 당당히 맞서는 길 뿐이기에 설령 질 것을 알더라도 투쟁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투쟁의 과정에서 비록 세상은 변하지 않더라도 최소한 나 자신은 존엄한 존재임을, 진정한 자유인임을 느낄 수 있고, 그 해방감은 너무나도 달콤해서 다시는 이전의 노예 상태로 돌아갈 수 없게 된다. 그런 “행복한” 투쟁이 하나둘 모여 더디게나마 이 세상을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방향으로 이끌어 왔다.

그래서 내년 우리에게 필요한 더욱 강력한 투쟁은 대정부 투쟁이 아닌 “대교수 투쟁”이어야 한다. 이성으로 비관하되 의지로 낙관할 수 있는 교수를 한 명이라도 늘리는 것이야말로 희망이 안 보이는 이 싸움을 지속할 수 있는 방법이며, 그 어떤 대정부 투쟁보다도 실효적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5년간 노동조합 활동을 통해 진정한 자유인으로 거듭난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 부지회장인 유최안 동지의 고백을 함께 나누고자 한다. 지난 12월 10일 화물안전운임제 사수를 위한 공공운수노조 결의대회에서 발언한 내용 중 일부인데, 즉석 발언이다 보니 단어와 문장이 정리되지 않은 측면이 있을 수 있지만, 노예임을 거부하고 자유인으로 살기로 한 노동자의 인간다운 삶을 향한 의지를, 거기서 나오는 힘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2023년에는 교수사회에서 제2의 유최안, 제3의 유최안이 탄생하길 간절히 기대한다.

“조선소 하청노동자들이 노동조합 한다고 했을 때 모두가 잘릴 거로 생각했습니다. 네 것들은 안 된다고 조롱했습니다. 하지만 했습니다. 노동조합 지켜냈습니다. 조선소 하청노동자들이 파업한다고 했을 때 니꺼 밖에 모르는 니들은 절대 못 한다, 사람 새끼 같지 않은 니들은 절대 못 한다 했지만 결국 했습니다. 그래서 뭐 얻었냐, 뭐 바꿨냐, 뭐가 좋아졌냐고 묻는다면, 나는 바뀌었습니다. 나는 이겼습니다. 나는 한계를 넘었고, 내가 속한 계급, 노동자를 사랑할 줄 아는 노동자로 바뀌었습니다. 이제 나는 내가 사랑하는 화물연대가 승리하길 바라는 노동자가 되었습니다. 조선소 하청노동자들의 투쟁을 보며, 이길 수 없는 싸움에 왜 미친 듯이 달라붙냐 물었습니까? 화물연대 싸움을 보며 왜 혼자 미친 듯이 달라붙느냐 묻겠습니까? 이길 수 없는 거 알고 있습니다. 해도 안 되는 거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걸 알고도 할 수 있는 용기, 그것을 위해 팔 하나 정도는 자를 수 있는 정의로움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나를 넘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함께 고민, 그리고 실천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나 혼자의 괴로움이 아닌, 망설이고 있는 저 지저분한 인간들이 용기를 낼 수 있게, 어떻게든 내 가족 내 새끼밖에 모르는 저 지저분한 인간들의 가슴 속에 거름을 덜어낼 수 있게, 여러분들이, 우리가, 그리고 내가 마중물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화물연대 동지들, 고생하셨습니다. 사랑합니다. 투쟁!” 


2022년 12월  27일

전/국/교/수/노/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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