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주권, 법주권, 국가법인설을 통해 독일적 입헌주의를 설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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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주권, 법주권, 국가법인설을 통해 독일적 입헌주의를 설명하다
  • 이명아 기자
  • 승인 2022.12.24 2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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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 공법의 역사: 헌법/행정법/국제법의 과거·현재와 미래, 16세기부터 21세기까지 | 미하엘 슈톨라이스 지음 | 이종수 옮김 | 푸른역사 | 360쪽

 

이 책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 국가에 많은 영향을 끼쳐온 독일의 공법公法, 즉 헌법, 행정법 및 국제법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통시적인 관점에서 서술한 책이다. 저자가 다양한 자료를 토대로 살핀 독일 공법의 역사는 번듯한 시민혁명이 없었던 후발산업국가인 독일에서 어떻게 법학이 발전할 수 있었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답을 제공한다.

독일 공법의 역사는 신성로마제국이라는 느슨한 동맹체와 이를 구성하는 여러 군소 영방국가들의 지위를 법적으로 해명하는 데에서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프랑스에 비견할 만한 성공한 시민혁명이 부재했던 독일은 19세기에 국가권력을 법에 기속시키기 위한 노력을 전개했고 독일적인 법치국가Rechtsstaat의 원형을 완성시켰다. 

‘국민주권’(공동체의 의사를 스스로 결정하는 최종적 지위와 권위인 주권이 국민에게 있다는 헌법적 원리)을 애써 외면하면서도 전통적인 ‘군주주권’(주권이 군주에게 있고 군주가 국가 원수가 되는 제도)을 더 이상 고수하기 어려웠던 정치적 상황에서 독일은 ‘국가주권’(국가가 사회에 대한 정치적 지배권을 가지고 있다는 원리) 내지는 ‘법주권’(의회가 제정하는 법 자체에 주권이 존재한다는 주장. 정치에 대한 법의 우월을 주장하는 입장과 관련되며 법치국가사상과도 깊은 관련성이 있다.) 그리고 ‘국가법인설’(국가가 개인과 같이 법적으로 법인이며, 회사와 같은 법인에 여러 기관이 있듯이 군주는 국가라는 법인의 원수元首라는 기관이라는 주장)을 통해 입헌주의적 국가를 설명하려 했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통용되고 있는 ‘주관적 공권론’(개인이 국가에 대해 행사할 수 있는 공법적 권리) 또한 이 무렵에 등장했다.

후발산업국가였던 독일은 제국주의적 식민지 확보에서 뒤쳐진 상황을 만회하기 위해 제1차 세계대전이라는 불행한 선택을 했고 패배했다. 패전은 1919년 독일 땅에 최초의 민주공화국인 바이마르 공화국을 남겼다. 그러나 굴욕적인 베르사유 조약의 부산물처럼 여겨졌던 이 공화국은 헌정상의 여러 문제를 야기했고 결국 히틀러와 나치당이 합법적으로 권력을 장악하면서 불과 13년만에 막을 내렸다. 당대의 걸출한 공법학자들은 바이마르 공화국에서 빚어진 여러 문제들을 두고 치열한 논쟁을 벌였다. 카를 슈미트Carl Schmitt는 주권자의 결단적 의지의 부재에서, 한스 켈젠Hans Kelsen은 규범력의 부재에서, 루돌프 스멘트Rudolf Smend는 국민통합의 부재에서 제각기 그 원인과 나름의 해법을 모색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이들 모두가 나치의 권력 장악과 불법체제를 정당화하는 데 직·간접적으로 기여했다. 히틀러 중심의 전체주의적인 통합과 수권법 및 인종차별법 등 여러 악법惡法들 앞에서 오로지 실정법의 규범성을 강조하는 법실증주의만 들먹였던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은 인류 전체에 깊은 상흔을 남겼다. 특히 전쟁 중 벌어진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참혹했던 홀로코스트는 인간 이성에 대한 회의를 불러왔으며, 철저한 반성과 성찰을 촉구하는 계기가 되었다. 나치즘이 득세하던 동안 독일은 헌법질서를 상실했을 뿐만 아니라 법학도 심각하게 파괴되었다. 전쟁 후 독일 시민들은 분단이라는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분단은 여러 법적 문제들을 불러왔다. “법적 주체로서의 독일은 과연 사멸했는가?”(199쪽) 저자는 이와 관련된 문제를 크게 사멸 테제(“독일(제국)의 사멸 테제”)와 존속 테제(“독일의 연속성 테제”)로 나누어 설명한다(200쪽). 역자는 이를 보다 세부적으로 나누어 “사멸 테제에서는 패전과 점령으로 인한 소멸 이론과 분할 이론, 그리고 존속 테제에서는 구舊독일제국이라는 한 지붕 아래에 놓여 있는 두 나라로 설명되는 지붕 이론, 핵심국가 이론, 동일성 이론 등이 주창되어왔다”고 말하면서 “동·서독 간의 분단과 독일의 재통일 과정을 공법학의 관점에서 다루는” 이 부분이 “독일과 함께 줄곧 같은 분단 상황을 공유해온 우리에게 이 책이 특히나 유익”한 지점이라고 강조한다(14쪽).

분단 이후 서독은 반쪽짜리 민족국가에서 통일 시점까지 잠정적으로 적용되는 헌법인 기본법Grundgesetz을 중심으로 “사회적 법치국가”와 “사회적 시장경제질서”에 입각해서 정치적 안정과 경제적 번영을 누렸고 마침내 1990년 독일의 재통일을 이뤄냈다. 여기에는 특히 기본권 보장과 법치주의의 확립 및 권력 통제를 위해 전후에 처음으로 설치된 연방헌법재판소가 크게 기여했다. 독일의 재통일 상황은 극적이었다. 1989년 11월 9일에 분단과 냉전의 상징과도 같았던 베를린 장벽이 붕괴된 후 서독은 통일과 관련해서 2+4조약의 체결을 통해 국제정치적인 여러 현안 문제를 해결했다. 또한 동·서독 간 통일조약을 체결하여 향후의 사회통합 및 법통합 문제를 마무리지었다. 

나치 체제 하에서 독일 공법 교수들은 권력에 영합했다. 단지 두 명만 결연히 저항했을 뿐 나머지 대다수는 소극적으로 동조하거나 입을 닫거나 나치의 불법 체제를 법리적으로 정당화하는 작업을 기꺼이 떠맡았다. 전후에 진행된 탈脫나치화 작업에도 불구하고 과거 나치 체제에 복무했던 대다수 공무원과 법관들은 다시 공직에 자리 잡았고, 법학 교수들도 거의 대부분 별 탈 없이 강단으로 되돌아왔다. ‘지도자원리’ 등 나치 체제를 옹호했던 일부 법리들은 지난 1970년대 우리나라의 ‘유신 체제’를 정당화하는 데 동원되기도 했다. 한평생을 역사와 법 연구에 천착해온 저자는 “역사 앞에 눈감은 법률가는 위험하다”(21쪽)는 경고의 글을 남겼다. 역사를 애써 외면하는 법률가들이 그저 법전에서만 실정법을 끄집어낼 경우 위험한 법률가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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