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과 인권은 왜 만나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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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봄과 인권은 왜 만나야 하는가
  • 이현건 기자
  • 승인 2022.12.24 2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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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봄과 인권: 돌봄으로 새로 쓴 인권의 문법 | 김영옥·류은숙 지음 | 코난북스 | 293쪽

 

돌봄 이야기가 넘친다. 누구에게나 필요하고 누구나 하고 있기에, 보편적이면서도 저마다 사연이 있는 주제가 바로 돌봄이다. 코로나19 확산 이후 돌봄에는 위기라는 말이 자연스레 들러붙었다. 돌봄을 하고 돌봄을 받는 당사자들의 위기이자 돌봄이라는 관계, 제도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위기다. 돌봄은, 돌봄 위기는 우리 각자의 삶과 사회를 관통하고 있다.

그만큼 돌봄을 제대로 이해하는 게 필수다. 그러나 “돌봄은 영역별로 분리해서 고찰할 수 있는 게 아니라 모든 영역과 활동이 서로 긴밀히 연결되고 얽혀 있는 총체적인 묶음이요 다발”이기 때문에 이를 제대로 이해하는 길잡이가 필요하다. 이 책은 왜 돌봄과 인권이 만나야 하는지에서 출발해 돌봄의 생생한 목소리를 전달하며, 돌봄이 권리가 된다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지 돌봄을 인권의 시각에서 조망하고, 인권을 돌봄의 관점에서 총체적으로 이해하도록 돕는다.

저자들은 인권과 돌봄에 대한 주요한 철학적 논의는 물론 돌봄의 영역에 해당할 최근의 현상, 제도, 사건들과 당사자들의 구체적인 증언들을 두루 살펴 우리 사회 돌봄의 현주소를 비판적으로 점검하고, 가장 필수적이면서도 부수적인 활동 취급 받는 돌봄이 가장 근본적이고 중추적인 활동임을 입증하는 동시에 나아가 사회 원리, 관계의 원리로서 정의로운 돌봄 사회로 담대하게 전환해야 함을 역설한다.

1부에서는 기존 인권 담론에서 말하는 존엄, 독립, 자율의 의미를 다시 살피며 왜 지금 돌봄으로 인권을, 인권으로 돌봄을 사유해야 하는지 제시한다. 2부에서는 돌봄이라는 활동, 노동의 현장으로 들어가 구체적인 돌봄의 마음 씀을 헤아린다. 나아가 3부에서는 정의로운 돌봄 사회의 조건과 이를 위해 필요한 시민과 국가의 역할을 살핀다.

인권은 누구나의 존엄을 말한다. 그런데 인간은 왜 존엄할까. 철학자 칸트는 이성의 능력을 근거로 인간의 존엄을 설명했다. 한나 아렌트는 ‘정치적인 것을 감행할 능력’을 인간의 존엄으로 불렀다. 그러나 존엄을 어떤 ‘능력’을 기준으로 할 때 그것이 과연 보편적일까. 칸트조차 말년에는 치매를 앓아 이성을 상실했는데 그런 그는 존엄한 인간이 아닌 것인가. 현실에서도 마찬가지다. 거동을 할 수 없거나 인지가 떨어지는 사람은 자기의 무능, 의존이 입증될 때 비로소 장애인으로 인정받는다. 동시에 온전한 시민의 자격을 박탈당하고 온정주의, 시혜의 대상으로 전락한다.

이 책에서는 인간 존엄의 근거로, 또 돌봄과 인권의 연결고리로서 어떠한 능력이 아니라 인간의 취약성을 찾는다. 모든 인간은 취약하기 때문에 돌봄이 필요하다. 그것도 돌봄은 당장의 생존을 위해 시급하고 절실한 필요다. 권리 가운데서 특히 그것이 없으면 우리를 인간이라 칭할 수 없는 그 무언가에 '기본권'이라는 표시를 한다. 돌봄이야말로 기본권 중 기본권이다. 정당한 권리에는 의무를 부과하는 정당한 힘이 있다. 즉 돌봄의 권리 또한 이를 충족할 책임이 발생한다. 이는 누군가의 숭고한 희생, 착취로 채워져서는 안 된다. 보편적 권리로서 사회에 이 책임이 부과된다. 그리고 이 바탕에는 인간은 누구나 취약하고, 그렇기에 서로 의존하는 존재, 관계라는 보편성이 자리한다. 돌봄으로 인권을, 인권으로 돌봄을 생각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저자들은 취약성과 의존성, 또 존엄에 관한 다양한 논의들을 두루 살피면서 “인권은 모든 사람의 보편적인 취약성과 의존성이 그것에 대한 상호책임으로 해석되고 지지될 수 있도록 하는 장치가 된다. 돌봄을 매개로 사람을 사람답게 대한다는 것의 의미가 만들어진다”고 말한다.

책에는 지금 우리의 돌봄이 얼마나 부정의한지, 일방적인 희생과 착취를 바닥에 깔고 허약한 토대 위에 서 있는 실상을 두루 살핀다. 저자들은 우리 사회에 제기되고 있는 돌봄권 논의를 되돌아보고 정의로운 돌봄 사회로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돌보는 사회는 돌봄 자원이 풍부하고, 이 자원이 평등하고 정의롭게 분배되고 순환하는 사회”다. 그리고 “모두가 반드시 배우고 이해해야 하는 지식, 시민적 책임이기에 누구나 참여해야 하는 일, 헌법적 권리이자 의무로서 정의롭게 분배되어야 할 사회의 기초, 돌봄이 이렇게 이해되는 사회”다.

저자들이 돌봄 사회로의 전환에 필수라고 여기는 것이 있다. 바로 ‘돌봄 받을 용기’다.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의존과 돌봄의 대상에서 빼놓는 경향이 있다. 돌봄이 누구에게나 필요하다는 건 인정해도 그건 다른 이들에게 해당할 뿐 자신은 포함되지 않는다고 여긴다. 더욱이 어디서 어떻게 돌봄 받고 싶은지 바람과 요구를 구체화하는 대신 ‘나는 깔끔하게, 민폐 안 끼치고 살겠다’고 다짐한다. 돌봄과 거리가 멀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나 당장 누군가를 돌보고 있는 사람이나 마찬가지다. 그래서 저자들은 돌봄을 받는 데도 용기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폐 끼치는 사람들의 연대’야말로 서로의 차이를 넘어 의존에 대한 공통 감각을 시민적 덕성으로 만들 수 있는 힘”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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