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벌 사다리의 하위 대학생과 학부모가 벗어나야 할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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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벌 사다리의 하위 대학생과 학부모가 벗어나야 할 신화
  • 이광수 부산외국어대학교·역사학
  • 승인 2022.12.24 22: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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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한국 사회를 움직이는 여러 요소 가운데 변하지 않는 요소가 있다면, 그것은 학벌이다. 그것을 기준으로 보면, 현재 이 나라에는 하나의 균질화 된 대학생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학벌이라는 이 사회의 위계 사다리에서 윗자리를 차지한 대학생은 저 아랫단계에서 바둥거리는 대학생과는 이미 계급이 존재하는 게 사실이다. 그 이유가 부모의 덕일 수도 있고, 본인의 탓일 수도 있지만, 중고등학교 다니면서 공부를 제대로 하지 못해 사다리 저 아래에 자리한 대학에 들어간 학생은 이미 사다리 걷어차기 준비하는 윗자리의 대학생과는 하나의 대학생이 아닌지가 오래되었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대학생을 하나의 카테고리로 잡고, 젊음, 미래, 용기, 꿈, 야망 등을 그들의 특질로 규정한다. 그리고 그 규정은 신화로 작동하여 그 아래 사다리의 대학생을 좌절의 늪으로 더욱 처박는다. 

그와 관련한 이 사회에서 널리 퍼진 신화 몇 가지를 보자. 부모는 멀리 보라 하고, 학부모는 앞만 보라 한다는 말. 부모는 꿈을 꾸라 하고, 학부모는 꿈꿀 시간을 주지 않는다는 그 말. 바로 대표적인 신화다. 꿈을 가지고, 미래를 보라는 것, 의심의 여지없이 좋은 말이고, 고금에 걸쳐 존중해야 할 명언이지만, 그것은 공부를 잘 해 학벌 사다리의 상위에 자리 잡은 아이들에게만 해당하는 말이다. 일부 공부가 많이 떨어진 아이들은 따르지 않아야 할 신화일 뿐이다. 신화란 현실을 호도하면서 사회의 어떤 가치관을 널리 확립시켜 그 질서를 유지하고 공고히 만들고자 하는 기득권의 도덕률이다. 특히 가지지 못하고 소외당하고, 무시당하는 사회의 약자들에게는 강자가 만든 가치의 질서를 강요하는 폭력으로 작동한다. 

학벌 사다리에서 아래 위치한 대학생들은 미래를 보고 꿈을 꾸면서 살면 다 죽는다. 꿈과 미래를 가지고, 여행도 하고, 여러 경험도 쌓아가는 게 나중에 그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는 값진 보배가 된다는 말, 지금 여기 그들에게 해당하는 말이 아니다. 이 약육강식의 밀림 사회에서 목숨 부지하고 인간다운 대접 받으려면, 오로지 공부해야 한다. 앞만 보고, 오로지 공부해서 자격증 따고, 영어 공부 죽도록 하고, 책 읽고 토론하면서 면접 준비해야 한다. 현실을 직시하고, 사회에서 필요한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것을 해나가야 한다. 우리가 사는 이 사회는 그들이 멀리 보고 꿈을 꾸는 걸 허용하고 인정하고 그 잠재력을 알아주는 사회가 아니다. 학벌이 안 좋으면, 면접 한 번, 실력 발휘할 기회 한 번 주지 않는 잔인한 사회다. 

또 하나의 신화, 스스로 벌어서 학비하고, 생활비 쓰고, 그리하여 독립하고, 자립하여 살라는 말도 마찬가지 신화다. 그 독립성, 자립심, 자율 의지 또한 일류 혹은 사다리 위에 위치한 대학생들에게만 해당할 수 있는 말이다. 사다리 아래 위치한 특히 지방 사립대 그것도 인문계열 학생들은 부모에게 의존할 수 있으면 일단 의존하고, 오로지 모든 것을 공부하는 데 바쳐야 한다. 시쳇말로 공부에 올인해서 학벌을 커버하는 뭔가를 만들어 그들 심사자에게 보여줘야 한다. 부모가 여력이 있는 아이들은 알바 할 시간에 부모에게 일단 신세 지고, 그 시간에 죽을 둥 살 둥 취업 공부에 올인해야 한다. 그런데 부모가 여력이 없는 학생들이 진정 문제가 된다. 이런 학생은 학기 중에는 공부에 전념하고, 방학 때 알바에 올인하여 다음 학기 쓸 돈을 마련하는 수밖에 없다. 가난한 집 아이들이 대부분 지방 사립대 인문계열 학생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런 말 하기가 정말 서럽고 억울하지만, 그 더러운 세상 이겨내려면 그 길밖에 없다. 그래서 대학이 장학금을 늘리고, 그것도 학업 성적이 아닌 집안 경제력을 기준으로 하여 가난한 집 아이들에게 대거 장학금을 줘야 조금이라도 공평한 사회가 되고, 개천에서 용이 나오는 기회를 마련해주는 것인데, 우리 사회의 그 대학이 그런 고급스러운 양심과 양식의 전당은 아니다. 

한 가지 더 들어보자. 4년제 대학 그것도 인문계열 대학생이라는 것, 벗어나야 한다. 이 나라에는 인문계 대학 학과가 너무나 많다. 인문학은 대학에서 교양으로 가르치고 배워 익히면 될 일이다. 이 사회같이 학벌 만능주의의 틀 안에서 학벌 사다리에서 하위에 속하는 4년제 대학 인문 전공자는 교양과 양식은 배우고 쌓을지언정, 그것을 취업 전선에서 쉬 인정해주지는 않는다. 하위 학벌 4년제 인문 전공해서 취업 못하느니 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기술 배워 취업하고, 버젓한 직장 다니면서 돈 모아 가정 꾸리고, 아이 낳고 행복하게 자리 잡은 뒤, 나중에 회사에서 여유 생길 때 재입학 하거나 방송통신대 같은 데서 공부하는 게 더 낫다. 지금 그런 위치의 대학생이라면, 하루라도 더 늦기 전에 국비로 지원해주는 여러 기술 교육 기관으로 진로를 바꾸는 게 백번 낫다. 1억 원만 주면, 감옥 1년 갈 수 있다는 대학생 아이들의 말이 허투루 들리는가? 그게 현실이다. 그들의 캄캄하고 답답한 심정을 당신, 그 부모는 얼마나 공감하는가? 공감하면서도 그 자식들에게 4년제 대학 타령하는가? 혹시 당신의 자존심 때문은 아닌가,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이광수 부산외국어대학교·역사학

부산외국어대학교 인도학과 교수. 델리대학교(인도) 대학원 역사학과 석사 및 박사. 주요 저서로는 《힌두교사 깊이 읽기: 종교학이 아닌 역사학으로》, 《역사는 핵무기보다 무섭다》, 《인도에서 온 허왕후, 그 만들어진 신화》, 《인도 100문 100답》, 《인도 수구 세력 난동사》(공저) 등이 있고, 역서로는 《인도 고대사》, 《고대 인도의 정치이론》, 《성스러운 암소 신화: 인도 민족주의의 역사 만들기》, 《민족주의 사상과 식민지 세계》, 《마누법전》(공역) 등이 있다. 부산지역해고노동자생계비지원을위한만원의연대 운영위원장을 비롯한 몇몇 단체에서 사회운동을 하면서 정치 평론가 및 사진 비평가로도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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