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적 자유를 홀대하는 근거가 과연 타당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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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적 자유를 홀대하는 근거가 과연 타당한가?
  • 민경국 논설고문/강원대 명예교수·경제철학
  • 승인 2022.12.24 2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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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국 칼럼]

밀턴 프리드먼 이후 자유를 경제적 자유, 참정권을 의미하는 정치적 자유(민주주의), 그리고 언론・사상・집회의 자유 같은 시민적 자유로 구분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흥미롭게도 정치적·시민적 자유를 중시하는 사람도 경제적 자유를 무시하거나 적어도 경시한다. 경제적 자유를 부정한 대표적인 인물은 정치철학자 존 롤스였다. 그는 체계적으로 경제적 자유를 경시했다. 자유 원칙을 통해서 보호받을 자유의 목록에는 언론, 집회, 사상과 양심의 자유, 그리고 심리적 억압, 신체적 폭행·절단 등을 포함하는 인신의 자유(인신의 온전성), 자의적인 체포나 구속이 없는 자유(시민적 자유), 개인적 재산(personal property)을 소유할 권리와 직업선택의 자유(경제적 자유), 그리고 마지막으로 정치적 자유(참정권)를 포함하고 있다. 이런 자유들은 입법에 의해 보호할 기본권들이다. 유감스럽게도 특정한 종류의 재산, 즉 생산수단을 습득·보유·이용할 자유에 대한 권리나 계약자유에 대한 권리는 자유의 원칙에 의해 보호를 받을 수 있는 기본권이 아니다. 그의 정의로운 세상에는 광범위한 경제적 자유권이 허용되어 있지 않다. 
  
흥미로운 것은 롤스가 경제적 자유를 홀대하는 이유다. 어느 한 자유가 기본권이 될 수 있으려면 정의감과 같은 “도덕적 능력”을 개발하고 행사할 조건이 될 수 있어야 하는데,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를 비롯한 경제적 자유는 그런 조건이 될 수 없다는 것이 그 이유다. 그 대신에 시민적 자유와 정치적 자유(그리고 이 자유의 공정한 가치)는 정의감의 개발과 행사에 필요하다는 이유에서 기본권의 범주에 포함하고 있다. 주류경제학이 전제하듯이, 시장사회는 타인에 대한 어떤 관심과 배려도 없는 완전한 이기심에 사로잡혀 있는 그리고 합리적인 인간을 전제한다는 게 롤스의 인식이다. 좌경화된 사람들이 역사 교과서에서 자유라는 말을 빼려는 것도 그런 인간관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직시해야 할 것은 그런 인간은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인간이 아닐뿐더러 자본주의는 그런 인간을 조장하는 것도 아니라, 오히려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와 계약의 자유가 인정되는 자유 사회에서 훨씬 더 잘 도덕을 계발하고 연마할 수 있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서로 의존하면서 살아간다. 평등한 자유는 인간들의 상호의존성을 가능하게 하는 요소다. 상호의존 관계의 유익한 결속을 유지하는 사람들만이 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다. 가족, 공적인 삶, 도덕, 종교단체, 상공단체 등 정치와 독립적으로 형성된 자발적 연합에 의해 촉진되는 생산적인 상호의존이야말로 혁신과 기업가정신의 원천이다. 깊은 연합적 결속과 건전한 상호의존이 없으면 상업 정신도 위축되고, 장사하는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함께하는 버릇을, 즉 타인들과 결속하는 버릇을 배우지 못하면 문명 그 자체를 위태롭게 한다. 
  
이미 잘 알려져 있듯이 애덤 스미스는 『도덕감정론』에서 동감 능력을 바탕으로 하여 인간의 도덕성을 설명하려고 했다. 타인들이 반복적으로 부인하거나 비난하는 행동은 하지 않는다는 것이 사람들의 본성이다. 그런 행동이 어떤 것인가에 대해서는 인간들은 상상을 동원하여 판단한다. 토크빌이 『미국 민주주의』에서 밝혔듯이, 그가 미국에서 발견한 개인주의도 애덤 스미스에 가장 근접한 인간관을 전제했다. 인간은 사회 속에서 성장한다. 인간들이 고립적일 수 없는 이유는 그들의 행동이 상업문화를 뒷받침하는 필수적 법과 제도뿐만 아니라 도덕적 문화적 요소와 결부되어 있기 때문이다. 감정적이고 물질적인 상호의존 관계의 유익한 결속을 유지하는 사람들에게만이 시장의 자기 이익추구와 위험 부담을 장기적으로 지속할 수 있다. 
 
하이에크도 『자유헌정론』에서 밝혔듯이 오로지 직접적인 자신의 욕구에만 관심이 있다는 의미에서 인간이 이기적이라는 점(편협한 이기심)을 반대했다. 그는 친목 단체, 취미그룹, 자선단체, 국경 없는 의사회, 마약퇴치 운동 등 국가와 개인 사이에서 활동하는 제3 섹터로서 공익을 위한 자발적 연합을 중시했다. 그러나 알려진 특수한 목적을 위하여 조직한 그 같은 소규모 그룹에 적합한 유대감을 임의로 확대하기는 곤란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니까 자유주의는 유대감을 법으로 정하는 것을 반대하고 그런 이타심의 범위를 자유에 맡긴다. 그러나 사회주의는 이웃에서부터 전체 사회에 이르기까지 유대감을 구성원들에게 강제로 확대한다. 그 정치적 결과는 지난 문재인 좌익정권 시기에 뚜렷하게 경험했듯이 적과 동지의 구분, 편 가르기 등 진영논리, 간단히 말해서 부족주의의 지배다. 시장의 자생적 질서(spontaneous order)를, 진영논리를 위한 조직(organization)으로 만들고 그래서 시민들을 국가의 노예로 전락시킨다. 그렇다고 자생적 질서를 지향하는 자유주의는 별도의 도덕이 없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 도덕은 인격·재산의 존중, 직업윤리, 예의범절, 관용, 정직성, 자기 책임, 법 앞의 평등, 진리추구 등 수없이 많다. 그런 “도덕적 자본”이 자생적 질서의 바탕에 두텁게 깔려 있다. 이 같은 도덕을 준수해왔기 때문에 우리에게 풍요로운 물질문명을 안겨준 거대한 열린사회가 가능한 것이다. 정치적 부족주의는 인격적 유대감, 배려 등 소규모 사회에서 소중한 역할을 하는 도덕뿐만 아니라 열린 시장사회의 도덕까지도 파괴한다는 것을 직시해야 한다.  


민경국 논설고문/강원대 명예교수·경제철학

서울대학교 문리대를 졸업하고 독일 프라이부르크대학교 경제학 석사·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강원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를 거쳐 현재 같은 대학 경제학과 명예교수이다. 하이에크소사이어티 회장과 제도경제학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사)한국자유주의연구회 회장을 맡고 있다. 주요저서로는 『하이에크, 자유의 길』, 『국가란 무엇인가: 자유주의 국가철학』, 『자유주의의 도덕관과 법사상』, 『자유민주주의란 무엇인가』, 『시장경제의 법과 질서』, 『하이에크 자유주의 사상 연구』, 『경제사상사 여행』 등 다수의 저서와 역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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