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만의 『아르키메데스와 우리』와 만나는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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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만의 『아르키메데스와 우리』와 만나는 우리
  • 김건우 빌레펠트대학 박사과정·사회학
  • 승인 2022.12.24 2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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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말하다_ 『아르키메데스와 우리: 니클라스 루만 대담집』 (니클라스 루만 지음, 김건우 옮김, 읻다, 304쪽, 2022.11)

 

사회학자 니클라스 루만의 대담집 『아르키메데스와 우리』가 출간되었다. 이 책이 출간된 1987년은 기능적 분화, 정치, 교육, 종교에 대한 루만의 이론을 일괄할 수 있는 『사회학적 계몽』 4권이 출간된 해이면서, 루만의 60세 기념 논문집 『열정으로서 이론』이 루만에게 헌정된 해이다. 사회학자로서 루만의 삶과 이력을 ‘열정으로서 이론’으로 정리할 수 있던 이 해에 이론적인 저작이 아닌 대담집이 출간된 것은 사회학자의 ‘열정으로서 이론’의 이면에 그리고 그 환경에 놓인 인간 루만의 다층적인 모습을 직접 듣고, 관찰할 수 있는 이례적인 기회를 제공한다. 이런 점에서 이 대담집은 출간 시점을 함께 고려할 때, 더욱 각별한 사회학적인 증언으로 다가온다. 

서로 다른 대담자와 그에 따라 서로 다른 주제를 다루고 있는 10개의 장으로 구성된 이 대담집을 통해 우리는 체계이론의 비인격적인 추상성과 체계이론가 루만의 인격적인 구체성을 동시에 만날 수 있다. 기능적으로 분화된 다중심의 근대사회라는 지평 속에서 정치, 지식인, 학문, 예술, 사랑, 위험, 생태학적 문제, 근대성, 사회학 이론, 인간과 사회, 매체와 형식, 커뮤니케이션, 루만 자신의 삶과 전기적인 이력 등에 대한 루만의 답변은 각각의 사회학적인 세계가 되어 펼쳐진다. 대담이라는 형식이 강제하는 우연한 질문에 대한 우연한 대답은 에피스테메와 독사의 비대칭성이 전도되면서 매순간 새로운 사회학적인 사건이 다음 순간에는 질료가 되는 반복적인 과정을 따른다. 대담집은 이를 ‘조형적인 비대칭’이라고 정식화하는데, 새로운 형식과 조형적 질료 간의 이런 전도와 자기구속 속에서 세계에 대한 인식은 잘못되더라도 ‘적어도 올바르게 잘못’될 수 있으며, 사회학 이론은 “자신 안에 자신의 비자의성을 구성”한다. 다양한 주제에 대해서 추상과 구체를 오르고 내려가는 답변 속에서 루만이 간결하면서도 투명하고 깊은 대답을 할 수 있는 것은 이런 구성력 때문이다.

                 Luhmann-1988, Oerlinhausen

변호사 자격증보다는 로마법에 관심을 갖는 법학도였던 루만은 사례를 통해 사고하고, 특정한 질서를 구축해보는 것, 다양한 관계를 법적으로 비교하는 작업이 갖는 사회학적인 성격에 관심을 가졌다. 법학을 공부할 때에도 이미 그의 시선의 지평은 법학 안에 있으면서도 동시에 법학을 넘어서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관찰의 지평은 이후 그의 사회학적 사유에 기본적인 구조가 된다. 고등 행정법원에서 행정 공무원으로 근무하면서, 또 나치의 보상 문제를 정치적으로 처리하는 고등 사무관을 역임하면서 루만은 역사적인 현실을 행정, 헌법, 정치 분야에서 다루는 실무를 직업적으로 경험한다. 이때, 기대 가능한 논리와 근거를 검토하고, 그에 따른 대안들을 도출하며 또 다른 대안들과 비교하는 실무를 수행했다면, 퇴근 후에는 데카르트와 후설을 중심으로 한 철학, 인류학, 파슨스 그리고 조직이라는 근대적인 현상을 가장 근대적으로 설명할 사회학, 독일 낭만주의를 포함한 문학과 관련된 풍부한 텍스트들에 대한 메모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비록 비공식적인 활동이었지만, 그의 본질적인 관심사였던 메모작성을 통해 그는 삶과 이론이 서로의 조건이 되는 순환적인 자기준거의 구조를 내적으로 구축해간다. 루만의 저작에서 볼 수 있는 철저함과 견고함은 이렇게 25세 즈음부터 시작되어 45년 넘게 지속된 메모상자 작업에 기반한다. 그리고 이 작업은 단순히 서지사항을 기록하고, 인용하고 발췌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해당 텍스트에 대해 루만이 자신의 언어로 간명하게 그리고 가능한 정확하게 재기술하는 변형적인 작업이었다. 루만의 말을 빌리면, 메모 작업을 통해서 “가능한 한 명료하게 방법과 개념을 설명하는 것을 추구했으며, 이를 통해서 부족한 것과 완성되지 않은 것이 명확해졌다.” 사회학의 도제시절에 시작되어 우리 세기의 헤겔이라고 불릴 정도로 사회학 이론의 가장 높은 위치에 오른 뒤에도 지속된 이 작업은 부족한 것과 완성되지 않은 것을 지속적으로 새롭게 발견하는 작업이었다. 자신에게서 사회학 이론이 종결되었다고 말하는 대신, 자신의 이론 안에는 이론의 완성을 지연시키고, 또 그것을 불가능하게 하는 것을 자기의 요소로서 포함하면서 자기생산한다고 이론적인 일반성을 구축하는 루만 특유의 체계이론적인 관점, 체계이론 고유의 이론적인 윤리는 이렇게 메모카드 작업을 통해서 체득된 것이었다.

그렇게 메모의 사회학적 고고학이 펼쳐진다. 계보학이라는 말을 쓰지 않아도 메모가 내적으로 갖는 이질적인 것들의 연결과 분리의 재조합 속에서 완전히 새로운 구조가, 새로운 언어가 독창적으로 출현한다. 이렇게 보면, 메모카드 작업과 그에 기반한 루만의 체계이론은 기존에 있던 것들과 결합하면서 새로운 것을 생산한다. 달리 말하면, 체계이론은 새로운 불완전성을 산출하고, 또 불투명성을 생산적인 것으로 전환하면서 그렇게 유한한 것에서 무한성을 산출하면서 자기생산하는 체계를 이론화한다. 이런 점에서 체계이론은 ‘절대성’의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이때 덧붙여야 할 것은 이는 이론적인 추상성 때문이 아니라, 근대사회 안에서 가능한 사회적 행위와 체험의 지속적인 구조가 강제하는 ‘필연적인 우연성’에 따른다는 점이다. 메모카드에서 시작된 유한성에 기반한 절대성의 작업은 체계이론을 거쳐 근대사회에 대한 사회학적인 이론으로 변형하면서 일반화된다. 유한성이 무한성으로 전환되지만, 전환된 무한성은 다시 새로운 유한성의 조건이 되는 순환성의 구조를 갖는다. 근대사회의 근대적인 작동이 이런 구조를 갖기 때문에 거꾸로 근대사회에 대한 이론을 구축하기 위한 메모 역시 사회의 자기포함적인 구조를 따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번 대담집으로 이러한 사회학적인 사건을 매 질문에 따른 답변에서 다양한 층위와 수준에서 확인하게 된다. 더구나, 이는 대담집에서 루만이 자신의 방식이라고 설명하는 릴케의 방식, 즉 너무나 평범한 단어들을 너무나 평범한 방식으로 사용하면서 정확하게 언어를 선택하고 정확하게 개념을 구축하는 방식을 따른다. 루만이 삶의 모토로 말한 ‘건조한 정신’이다. “좋은 정신은 건조합니다.” 이런 건조한 정신에 따라 평범한 단어들을 새롭게 조합하면서 구축된 근대사회에 대한 새로운 개념들은 마치 얇은 대지의 표면 아래 언제든지 지표면을 뚫고 분출될 수 있는 거대한 에너지의 용암을 포함하고 있는 것처럼 가볍지만 무거우며, 평온해 보이지만 역동적이다. 루만이 “개념을 통한 이질성의 통제”를 자신에게 가장 결정적인 것이라고 한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체계이론은 기술공학적인 이론이 아니라, 역동적인 질서의 안정화를 이론화하는 이론이며, 행위자를 부정하는 이론이 아니라, 행위가 사건이 될 수 있는 잠재성을 ‘사회학적 계몽’을 통해 사회적 체계의 작동으로 보존하고 구조화하려는 이론이다.

마지막으로, 대담집이 직접적인 상호작용에 대한 상징일지라도, 동시에 그 상징은 문자화된 상징이기 때문에 우리는 루만의 말을 문자로, 현전을 시차를 갖고 간접적으로 체험한다. 루만에 따르면, “읽을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되면, 그와 함께 언제나 불확실하게 될 능력을 갖게 된다.” 문자는 의도된 의미의 이해와 관련해 불확실성을 증가시키기 때문에 이 ‘책’이라는 문자로 루만의 ‘말’을 읽는 우리는 이전보다 더 잘 이해할 수도 있지만, 루만의 사회학 그리고 근대사회의 작동에 대해 불확실성을 체험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불확실하게 될 능력’이다. 루만은 우리가 자신의 육성을 문자로 읽었을 때, 모두가 ‘불확실하게 될 능력’을 강화하기를 바랬을 것이다. 커뮤니케이션의 목적은 합의를 실현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목적이라는 용어를 고수한다면, 매번 새로운 목적을 설정하는 데 있다. 커뮤니케이션은 선택에 대한 선택적인 과정으로서 선택성을 강화하는 과정이다. 이렇게 보면, ‘불확실하게 될 능력’은 커뮤니케이션 능력에 다름 아니며, 커뮤니케이션의 자기포함적인 구조에 따라 ‘자신 안에 자신의 비자의성을 구성’하는 능력이다. 

체계이론은 “타인은 영원한 수수께끼여서 매력적이다. 단지 그 이유 때문에 다른 인간과 함께 하는 경험이 자연에서의 다른 모든 경험보다 더 풍요롭다.”고 말한다. 이번 대담집은 루만에게서 배우기 위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은 가르치기 위해서가 아니라 관찰되기 위해서 출판한다”고 말한 루만과 만나기 위한 것이며, 그렇게 루만을 관찰하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그 만남을 통해서 우리는 자연에서의 다른 모든 경험보다 더 풍요로운 사회학적인 만남을 기대한다. 해소될 수 없는 수수께끼 같은 만남을 통해서 우리는 근대사회를 관찰하는 루만을 관찰하면서 동시에 자신의 고유한 관찰을 관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루만 그리고 체계이론과의 만남을 통해서 우리 스스로 자유롭게 자기 말을 찾고 자기 말을 하면서, 불확실한 세계 그리고 불확실한 우리 자신과 더 깊게 만날 수 있다. 이처럼 만남의 대칭성을 비대칭성으로, 반대로 비대칭성을 대칭성으로 전도할 수 있는 그 변형적인 능력은 만남을 새로운 의미로 자기구성한다. 이런 자기구성 능력이 ‘아르키메데스의 점’이며, 이 점에 따라 선택을 다르게 조건화하면서, ‘나’이기도 한 ‘우리’와 깊은 만남을 새롭게 할 수 있다. 세계의 복잡성을 자기기술하고 그렇게 의미화 할 수 있는 점이 ‘아르키메데스의 점’이다. 이 사회학 저서의 제목이 『아르키메데스와 우리』인 이유일 것이다.


김건우 빌레펠트대학 박사과정·사회학

빌레펠트 대학 사회학과에서 독일의 국가사회학과 루만의 사회학 이론을 연구하면서 그와 관련된 박사학위논문을 작성하고 있다. 〈교수신문〉과 〈대학지성 In&Out〉의 독일통신원으로 있었다. 퇴니스의 논문 ‘법치국가와 복지국가’, 루만의 논문 ‘야만을 넘어서’ 및 루만의 『근대의 관찰들』, 『아르키메데스와 우리』를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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