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역이 인간사회의 패러다임이자 근원적 메커니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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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역이 인간사회의 패러다임이자 근원적 메커니즘
  • 이명아 기자
  • 승인 2022.12.21 0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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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무니타스: 생명의 보호와 부정 | 로베르토 에스포지토 지음 | 윤병언 옮김 | 크리티카 | 360쪽

 

에스포지토는 공동체(코무니타스)가 타자를 위한 배려와 선사의 의무를 공유하는 공간인 반면 이 공간을 전제로만 주어지는 면역성(임무니타스)은 개인을 울타리 안에 가두고 외부로부터 보호하는 기능이며, 따라서 이율배반적일 수밖에 없는 코무니타스와 임무니타스의 상관관계 혹은 메커니즘이 개인의 신체뿐만 아니라 우선적으로는 사회공동체의 몸에 적용된다고 말한다. 

저자는 사회의 몸과 인간의 몸이 지극히 유사할 뿐 아니라 인간의 사고방식 혹은 사회의 메커니즘이 인간의 신체적인 한계를 사실상 넘어설 수 없거나 이 한계에 얽매이지 않을 수 없다는 점을 암묵적인 전제로 제시한다. 그리고 인간사회의 거의 모든 영역에서 - 고유화의 법적 과정과 정치신학, 인류학, 생명정치, 생물학을 중심으로 - 면역의 메커니즘을 발견하고 분석하며 근현대 사회의 가장 심층적인 패러다임이 면역임을 증명해낸다.

에스포지토가 생물학적 면역화와 법적 면역화의 유사성과 중첩 현상을 강조하며 푸코처럼 이를 근대의 한 특징으로 간주하는 이유는 이것이 근대만의 특징이라기보다는 어떤 근원적인 메커니즘이며 이 메커니즘이 극단적으로 활성화되는 시기가 다름 아닌 근대와 현대라고 보기 때문이다. 저자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는 듯이 보인다. 면역이 인간사회의 패러다임이자 근원적 메커니즘이라면, 극단적인 면역화의 이면에 있는 벌거벗은 생명만 근본적인 한계 개념으로 간주할 것이 아니라 극단적인 공통성의 이면에 있는 고귀한 생명 역시 한계 개념으로 간주해야 하지 않을까?

결과적으로 인간의 삶과 사회를 지배하는 가장 심층적인 패러다임은 임무니타스, 즉 면역화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저자는 인간사회의 거의 모든 측면에 면역의 메커니즘이 근원적이거나 구조적인 기능으로 실재할 뿐 아니라 핵심 동력으로 기능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는 인간 사회가 - 따라서 인간의 정신, 이념, 가치가 - 인간의 몸과 다를 바 없는 신체를 지녔고 그것의 근본 구조는 면역학적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면역성(임무니타스)과 정확하게 반대되는 공동체(코무니타스)의 개념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전자의 해석적 틀인 동시에 열쇠가 되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저자에 따르면 구성원들 간에 공통점이 조금도 없을 때에만 성립되는 것이 공동체다.

정확하게는 모든 구성원의 동일한 차이점을 기반으로 구축되는 것이 공동체다. 동일한 의무사항, 동일한 한계, 동일한 모순, 동일한 병을 - 이에서 벗어나기 위해, 혹은 이에 대한 ‘면역화’를 꾀하면서 - 구심점으로 모이는 것이 공동체다. 이는 사회가 지닌 터무니없이 신체적인 한계, 즉 면역화를 끊임없이 시도해야만 살아남는 ‘몸’의 변증적 모순이 거꾸로 투영된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모순들이 사실상 포화상태에 이르는 과정은 푸코가 말하는 ‘생명정치’가 완성되어가는 과정과도 일치한다. 이는 에스포지토의 주장대로 ‘생명’과 ‘정치’의 조합이 실행되는 일반적인 범주가 다름 아닌 ‘면역화’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에스포지토는 푸코의 기획을 어떤 식으로든 완성 단계로 이끈 철학자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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