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종의 리더십, 개혁과 통합의 딜레마를 극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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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종의 리더십, 개혁과 통합의 딜레마를 극복하다
  • 이현건 기자
  • 승인 2022.12.21 00: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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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종, 군주의 자격을 묻다 | 방상근 지음 | 푸른역사 | 416쪽

 

이 책은 조선왕조의 9번째 임금인 성종의 일생을 정치에 초점을 맞춰 살핀 책이다. ‘효치와 교화’란 통치이념을 구현하는 승출의 법 등 구체적 사실을 살피면서도 개혁과 통합의 딜레마에 초점을 맞추어서 성종의 리더십을 평가하는 이 책은 사학과 정치사상의 만남이라 할 수 있다. 

성종 대는 너무나 태평한 시대여서 종종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평가된다. 그렇지 않다. 우선 성종 자신이 후계 순위 3순위에서 “운좋게” 왕위에 오른 불안한 처지였다. 게다가 그가 풀어야 했던 정치적 과제도 만만치 않았다. 세조 대의 정변과 권력 찬탈, 사육신 사건과 단종의 폐위와 사사, 서정西征과 북정北征, 그리고 내란(이시애의 난)이라는 격변과 혼란으로 무너져 내린 선비와 백성들의 풍속을 바로잡아야 할 책무가 그 앞에 놓여 있었다. 그럼에도 사후에 묘호로 인종仁宗이 거론될 정도로, 그는 ‘교화의 시대’를 이끌었다. 성종의 구체적 시책도 볼 만하지만 부패한 정치를 개혁하면서도 기득권과 신진세력 간의 사생결단을 피하고 정치적 통합을 유지해 ‘교화의 정치’를 이뤄냈다는 점에서 그의 통치술은 눈여겨볼 만하다.

이 책은 성종시대와 15세기를 설명하는 연구들이 간과했던 측면을 부각시키고 있다. 즉 왕조 초기의 권력투쟁과 제도화의 문제가 일단락되면서, 주자학 정치론의 핵심인 ‘교화의 정치’가 새롭게 등장했다는 관점에서 성종시대를 해석하고 있다. 이는 정치투쟁의 초점이 창업 이래 지속되어 온 권력투쟁과 제도화의 문제를 넘어서 정치가의 내면과 심성으로 이동함으로 의미하는 것이다. 조선왕조는 태종과 세종을 거치면서 제도화의 성과가 나타났고 성종 즉위년에 『경국대전』(기축대전)이 완성되었다. 그 이후에 세조시대에 무너진 기강을 다시 세우고 풍속을 교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강력한 힘을 얻었고 군자와 소인을 구별하자는 논의가 최우선적인 정치과제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성종은 풍속의 교화를 자신의 사명으로 자각하고 그 과업을 끝까지 관철하고자 노력한 군주였다.

본래 주자학에서는 백성을 다스리는 치인治人의 두 가지 방법으로 정政과 교敎를 강조한다. 전자는 법도와 금령으로 외물을 제어하는 것이고, 후자는 도덕과 제례로 마음(내면)을 가지런히 하는 것을 말한다. 주자학은 제도나 법령을 통해서 질서를 바로세우는 것에 그치지 않고 정치공동체에 속한 모든 사람이 내면의 변화를 통해 성인聖人이 되는 것을 지향한다. 이를 위해서 위정자가 먼저 자신을 수양하여 모범을 보일 것을 요구한다. 이 책에서 저자는 세종시대가 국가운영의 틀이 제도화해가는 수성守成의 시기였다면, 성종시대는 제도화 단계를 넘어서 교화의 정치로 이행했던 시기라고 주장한다.

그 근거는 세조시대에 국정을 전횡했던 훈구대신들의 부패와 비리에 대한 반성으로 성종시대에 군자와 소인에 관한 논쟁이 본격적으로 제기되었다는 사실이다. 성종의 친정親政 초기였던 성종 9년(1478)에 있었던 ‘무술년의 옥사獄事’를 계기로 사적으로 붕당을 결성하여 정치를 해치는 소인을 어떻게 분별하여 물리칠 것인가에 관한 논의가 활발하게 전개되었고, 인사시스템의 개혁뿐만이 아니라 심술(마음가짐)의 선악을 근거로 출척黜斥을 행하는 교화의 정치가 시작되고 있음을 주장한다.

그런데 이처럼 정치가의 내면과 심성의 선악에 초점을 맞춘 교화논쟁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다는 것은 갈등의 근원적 해결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정치의 발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위험성을 내포하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인간의 내면은 알기가 어려운 것인데, 단지 마음가짐이 바르지 못하다는 이유로 교화라는 명분을 내세우면서 공직에서 내친다면 누구도 그러한 심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교화의 정치는 끊임없는 정치적 분쟁과 혼란을 야기할 수 있는 것이었다. 따라서 교화가 추구하는 ‘내면성의 정치’는 피할 수 없지만, 그로 인한 갈등을 어떻게 잘 조정하여 정치적 파국을 막을 수 있는가가 정치리더십에서 중요한 과제가 되었다.

이 책은 이러한 개혁과 통합의 딜레마에 초점을 맞추어서 성종의 리더십을 평가한다. 성종은 부패한 정치를 개혁하면서도 대신을 존중하고 대간을 우대하며 인사권과 형벌권을 신중히 사용함으로써 정치적 안정과 통합을 이루어낸 반면에, 연산군과 중종은 그런 역량이 부족했기에 ‘사화’라는 비극과 파국이 초래되었음을 지적하고 있다. 이러한 경험과 사례는 주자학이 현실정치와 유리되어 과거시험의 수단으로 전락했던 명나라와 구별되는 조선만의 독자성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제까지 사학계나 철학계의 연구가 짚어내지 못한 이 책만의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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