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투표 부의권 입법부와 국민에게 개방할 필요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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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투표 부의권 입법부와 국민에게 개방할 필요 있어
  • 고현석 기자
  • 승인 2022.12.19 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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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보고서] NARS, 주요국 국민투표제 비교와 우리나라 국민투표제 개선과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블로그

국민투표의 성격과 방식은 국가마다 상이하며 전 세계적으로 다양한 방식의 국민투표가 시행되고 있다. 1990년대 이후 전 세계적으로 국민투표의 빈도가 급증했으나 국민투표가 권위주의 통치를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이용된 사례가 증가했다.

결국 민주주의 국가에서도 국민투표의 한계와 위험성이 존재한다. 국민투표제에서 누가 국민투표를 부의할 수 있으며, 누가 국민투표 의제를 결정할 수 있는지가 핵심 관건이다. 

이에 국회입법조사처는 12월 8일(목), 「주요국 국민투표제도 비교와 시사점」이라는 제목의 『NARS 입법·정책』보고서(저자: 오창룡 입법조사관)를 발간했다. 보고서는 프랑스, 스위스, 캐나다, 영국의 국민투표제를 비교하고, 현행 한국 국민투표제의 개선 필요성을 제기했다.

보고서에 의하면, 한국은 대통령이 국민투표 부의권을 가지며, 모든 국정 사안을 국민투표에 부칠 수 있다. 다른 국가와 비교할 때 한국의 국민투표제는 매우 특수하며 신임투표로 이용될 위험성이 존재한다. 따라서 국민투표의 직접민주주의적인 성격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현행 국민투표제의 원칙과 방식을 수정할 필요가 있다. 이에 이번 보고서는 △헌법개정을 위한 필수적 국민투표 시행과 △대통령의 국민투표 부의권 독점이라는 두 쟁점을 중심으로 해외 국민투표제 사례를 검토한다.

상당수의 민주주의 국가들은 헌법개정에 관한 국민투표를 의무조항으로 두지 않으며, 입법부와 국민이 국민투표 부의권을 공유하고 있다. 해외 주요국은 한국 국민투표제와 일부 공통적인 특성이 있으나 각기 다른 제도를 발전시켰다.

스위스와 프랑스는 한국과 마찬가지로 헌법개정안에 대해 필수적 국민투표를 시행하지만 다른 보완 절차를 통해 헌법개정의 경직성을 완화하고 있다.

프랑스는 2008년 ‘공동발의 국민투표’ 제도를 신설하여 의회와 국민이 공동으로 국민투표를 부의할 수 있도록 했다.

캐나다는 행정부 수장인 총독이 국민투표 부의권을 보유하고 있으나 안건의 내용은 하원과 상원의 표결을 통해 확정된다.

캐나다와 영국은 사회갈등과 관련된 쟁점을 국민투표에 부치는 경향이 있으며 정파적 경합을 관리할 수 있는 법을 갱신해왔다.

보고서는 해외사례를 참고하여 헌법 제72조에서 명시한 국민투표 부의권을 입법부와 국민에게 개방할 필요가 있다는 제안을 내놓았다.

 

◇ 보고서의 일부 내용을 아래에 발췌했다.


■ 한국 국민투표제와의 비교 및 시사점

▶ 주요국 국민투표 기본특징 비교

국민투표 부의권자와 국민투표 대상안건을 기준으로 한국과 프랑스·캐나다·스위스·영국 사례의 차이를 종합적으로 비교하면 [표13]과 같다. 프랑스는 한국과 유사하게 대통령이 국민투표 부의권을 가지고 있으나 독점하지 않는다. 대통령이 국민투표에 부의하는 안건은 정부 및 양원이 제안하는 내용이어야 하며, 의회와 국민이 합동으로 국민투표를 추진하는 별도의 절차도 존재한다. 캐나다는 행정부를 대표하는 총독이 국민투표 부의권을 보유하고 있으나 의회에서 국민투표 문안을 심의하고 결정한다. 영국의 경우 의회가 모든 국정 문제를 국민투표에 부칠 수 있는 권한을 독점하는 반면, 스위스는 정부가 아닌 국민과 지방자치단체가 상향식으로 국민투표를 추진할 수 있다.

프랑스와 스위스는 한국과 마찬가지로 헌법개정안에 대해 필수적 국민투표를 시행한다. 그러나 두 국가 모두 다른 절차를 추가하고 있다. 프랑스의 경우 의원 발의 헌법개정안은 반드시 국민투표를 거쳐야 하지만, 정부제출 헌법개정안은 양원합동회의에서 의원 5분의 3의 지지를 얻으면 승인된다. 스위스는 헌법개정뿐만 아니라 유권자 10만 명 이상의 동의를 얻은 안건에 대해서도 필수적 국민 투표를 시행하고 있다.

프랑스, 캐나다, 스위스, 영국은 한국과 유사하게 선택적 국민투표의 범위를 지정하고 있으나 그 대상이 모두 상이하다. 프랑스는 국제조약, 정부 조직, 경제·사회·환경 정책, 공공서비스 개혁안 등을 국민투표에 부칠 수 있으며, 스위스는 헌법이 아닌 법률에 관한 사항은 선택적으로 국민투표에 부칠 수 있다. 캐나다와 영국은 필수적 국민투표의 대상을 규정하지 않으며 입법에 관련된 모든 안건을 국민투표에 부칠 수 있는 요건을 갖추고 있다. 국민투표를 빈번하게 시행하는 스위스에서 국민투표에 부칠 수 없는 안건의 범위를 법률로 정하고 있다는 점도 특기할만하다.

▶ 대통령 특권으로서의 국민투표 부의권

개헌 절차에 포함된 필수적 국민투표와 달리 선택적 국민투표는 통치자의 재량에 따라 국민투표를 시행할 수 있다. 따라서 국민투표를 선택적으로 추진하는 권한이 남용될 경우 문제가 된다. 행정부 수반이 입법 절차와 의회 권한을 우회하여 국민투표로 법을 개정할 수 있고, 대통령이 국민투표 안건을 자기 신임과 결부시켜 신임투표로 활용할 여지도 존재한다.

대한민국 헌법 제72조는 ‘외교·국방·통일 기타 국가 안위에 관한 중요정책’을 국민투표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다. 사실상 국가의 모든 주요 정책이 “기타 국가 안위”와 관련될 수 있다는 측면에서 해당 조항의 확대 해석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지적이 있다. 예컨대, 2004년 헌법재판소 결정에 따라 대통령의 신임 여부를 국민투표에 부치는 것은 금지되었다. 그러나 현행 헌법은 대통령만이 국민투표 시행 여부를 결정할 수 있도록 하며, 국민투표에 부칠 수 있는 안건의 범위에도 사실상 제한을 두고 있지 않으므로, 대통령이 광범위한 국민투표 부의권을 활용하여 자신에 대한 신임을 특정 정책에 결부시키는 것이 가능하며 신임투표가 등장할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있다.

따라서 해외사례를 참고하여 헌법 제72조에서 명시한 선택적 국민투표 부의권을 입법부와 국민에게 개방할 필요가 있다. 앞서 살펴본 국가들은 행정부 수반의 국민투표회부권을 완충할 수 있는 다양한 장치를 마련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입법부와 일반 유권자가 국민투표 절차에 개입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추가할 필요가 있다. 한편, 국민투표에 부칠 수 있는 안건의 범위를 법규로 명시하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다. 국민투표 대상 분야를 제한하는 것은 국민투표의 오용・남용 가능성을 축소하는 조치로 이해할 수 있다.

▶ 경성헌법과 국민투표제

경성헌법은 헌법의 지속성과 안정성을 중요하게 간주하고 헌법개정 절차를 엄격하게 통제한다. 헌법은 다른 법령의 근간이 되므로 일반법률보다 어려운 개정 절차를 거쳐야 한다는 입장이다. 현행 한국 헌법은 △대통령 혹은 국회의원 재적 과반수가 헌법개정안을 발의하고,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으로 의결하며, △국민투표에서 선거권자 과반수의 투표와 투표자 과반수의 찬성을 얻어 개정할 수 있으므로 경성헌법으로 분류된다. 이에 현행 헌법개정 절차의 경직성을 완화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왔다. 사회변화에 따라 헌법을 적기에 개정하지 못한다면 갈등과 불만이 증폭될 수 있으므로 헌법을 항시적으로 정비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개헌을 위한 국민투표는 헌법개정에 대해 국민이 직접 찬반의사를 표출한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그러나 헌법개정 국민투표 역시 신임투표로 기능할 가능성이 존재한다. 한국 헌정사에서 헌법개정 국민투표가 대체로 압도적인 찬성으로 가결됐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국민투표제가 경성헌법을 위해 반드시 시행되어야 하는지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국민투표가 기성 권력을 강화하고 민주주의를 침해하는 역설적 결과를 가져올 수 있으므로 시행 여부를 신중하게 판단할 필요가 있다.

 

2016년 6월 23일 영국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이탈) 국민투표가 영국 전역에서 실시됐다. 출처=TV조선 캡처

■ 시사점

국민투표의 제도화와 시행 횟수가 민주주의의 발전 수준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권위주의 국가에서는 통치자가 의회 권한을 우회해서 정책을 추진하고 권력을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국민투표가 사용되기도 하고, 미국과 독일처럼 전국 수준에서 국민투표를 실시하지 않은 국가도 존재한다. 따라서 국민투표를 헌법 개정의 정당성을 확인하는 마지막 절차로 시행되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충분히 반론의 여지가 있다. 대통령이 중요정책을 국민투표에 부칠 수 있는 권한을 독점하는 법령도 충분한 논의를 거쳐 수정할 필요가 있다.

이상적인 하나의 국민투표제도가 존재한다고 할 수 없다. 세계 국가들은 서로 다른 국민투표제를 채택하고 있다. 국민투표를 다루는 법령 체계가 서로 상이하며, 국민투표의 부의 주체, 대상 범위, 절차와 영향이 모두 다르다. 프랑스, 캐나다, 스위스, 영국 역시 각각 다른 제도를 발전시켜왔다. 다만 이들 국가가 공유하는 한 가지 특징은 국민투표제의 문제점을 보완하는 개혁을 지속해서 추진하고, 관련 법제를 끊임없이 수정해왔다는 점이다. 이를 참고하여 한국 국민투표제의 직접민주주의적인 성격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지속적인 개혁을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한국 헌법에서 규정하는 국민투표제는 직접민주주의의 성격이 매우 약하므로 직접민주주의 전통을 오랜 기간 발전시켜온 스위스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물론 스위스 국민투표 모델을 한국에 도입하기 힘든 측면이 분명히 존재한다. 하지만 필수적·선택적 국민투표, 국민발안 국민투표를 구분한 맥락은 유용한 비교 대상이 된다. 국민투표 대상 안건과 부의권자에 따라 각기 다른 절차와 견제 수단을 제도화한다면 국민투표 오용 가능성을 통제하는 동시에 직접 민주제적인 참여를 확대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현행 국민투표제 개혁을 위해 국민투표 부의권과 대상 범위를 복합적으로 설정한 프랑스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드골 대통령 시기 국민투표가 신임투표로 남용된 전례가 있는 프랑스는 다층적인 방식의 국민투표를 도입하고 있다. 프랑스는 한국처럼 대통령이 국민투표 부의권을 보유하고, 헌법 개정에 대한 필수적 국민투표를 시행하고 있다. 그러나 국민투표 절차에 입법부가 개입할 여지가 존재하며, 의회와 국민이 국민투표를 공동으로 부의할 수 있는 절차를 새롭게 도입했다. 프랑스 국민투표제의 개혁 논쟁과 변화 과정을 살펴보는 것은 향후 한국 국민투표제 개혁을 추진하는 데에 있어 중요한 정보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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