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유해, 고고학자의 입을 빌어 생애와 사회를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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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유해, 고고학자의 입을 빌어 생애와 사회를 말하다
  • 김범철 충북대·고고학
  • 승인 2022.12.18 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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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옮긴이에게 듣는다_ 『생물고고학: 인간유해 연구에 대한 통합적 접근』 (데브라 마틴·라이언 해로드·벤투라 페레즈 지음, 김범철 옮김, 사회평론아카데미, 383쪽, 2022.11)

 

출간 소식을 접한 한 고대사 교수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인접한 분야의 전공자로 학문적 담론을 주고받는 사이이지만, 오랜 친구라 그런 대화조차 우스갯소리로 이어가기 일쑤다. “책 냈데?”, “동물이랑 식물 합쳐서 생물이가?” 평소와 달리, 맞받아치지 못했다. 당황해서라기보다는 시쳇말로 ‘신박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따로는 초등학생도 알 만한 ‘생물’과 ‘고고학’을 합쳐놓으니, 웬만한 전문가도 익숙하지 않은 용어가 되어버렸다. 책의 제목이기도 한 ‘생물고고학(bioarchaeology)’부터 알리는 것이 급선무임을 일깨워준 셈이다.


인간유해도 문화유물

‘생물고고학’이라는 용어 자체는 1972년 영국 고고학자 클라크(Grahame Clark)의 글에서 비롯되었다. 고고유적에서 출토된 동물과 사람 뼈에 대한 분석이 당시 환경·생계를 파악하기에 중요함을 강조하려던 것이다. 어쨌든 ‘동물’이 포함되었으니, 그 친구의 추정이 터무니없지는 않다. 그러나 현재 생물고고학은 미국에서 가장 번창해 있고, 인간유해만을 대상으로 한다. 동물고고학(zooarchaeology)은 별개 분야로 자리를 굳건히 하고 있다.

다양한 자연과학 분석으로 얻어진 인간유해 정보를 문화적 맥락을 따라 해석하는 것이 현대 생물고고학의 작업이다(이 책의 1장). 그런 작업을 위해서 인간유해는 더 이상 생태물(ecofact, 동·식물유체 등 자연물) 정도로 자리매김할 수는 없게 되었다. 『순수와 위험(Purity and Danger)』(현대미학사, 1997)으로 국내에도 널리 알려진 영국 인류학자 더글러스(Mary Douglas)가 표방했던, 인간의 신체 또는 시신도 ‘사회적 맥락에 따라 형성·인지되는 문화적 유물’이라는 인식이 생물고고학의 기저를 이룬다(이 책의 10장). 


과거는 누구의 것이며, 궁극의 승자는 누구인가?

그렇다고 인간유해를 여타 고고유물처럼 분석 대상으로 삼기가 녹록하지는 않다. 분석이 목적이라지만 조상의 시신이나 유해를 자르고 부수는 것을 흔쾌히 허락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 비단 유교적 전통을 가진 우리만의 문제는 아니다. 미국의 경우, 1990년부터 「(미주) 원주민분묘 보존 및 반환 법령(NAGPRA)」이 시행되면서, 원주민의 유해는 후손집단의 허가와 동참 없이는 아무런 분석을 할 수 없게 되었다. 분석을 마친 후에는 재매장해야 한다. 케네윅인(Kennewick Man)은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서기전 6,500년 무렵 폭력으로 사망한 듯한 이 사람은 1996년 현재의 워싱턴 주 컬럼비아 강변에서 백골로 발견되었다. 9년간의 지루한 쟁송 끝에, 원주민의 뜻에 따라 재매장되었다. 종지부를 찍게 된 데에는 막 상용화되기 시작한 DNA분석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이 책의 2장). 그렇다면 궁극의 승자는 첨단 자연과학 분석기법인가?

적어도 생물고고학이 최근의 비약적 발전을 이루는 데서는 그러하다. 인간유해를 다루는 대표적인 학문분야로 생물인류학(biological anthropology)을 꼽을 수 있는데, 일반에도 제법 알려진 체질인류학(physical anthropology)이 변모한 것이다. 전통적으로 의존해왔던 뼈대분석을 넘어, 분자생물학, 유전학 등의 분석기법을 적극적으로 도입하면서 영역이 확장되고 이름도 바뀌게 되었다. 적어도 미국에서 생물고고학은 그 하위분야로 인식된다. 곧, 유적의 발굴에서 얻어진 과거 인간유해를 첨단기법으로 분석하여, 고고학의 전통적인 질문에 답하는 분야로 자리하고 있다. 유물 양식의 비교를 통해 접근하였던 계통 찾기는 DNA분석, 동위원소분석 등의 결과에 더 크게 의존하게 되었다(이 책의 8장).

그렇다고 전통적인 고고학 연구가 필요 없어진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인간유해의 다양한 출토맥락을 파악하는 것이, 분석을 통해 얻어지는 생물학적 정보를 온전하게 이해하는 근간이라는 점(이 책의 4장과 5장)이 생물고고학이 ‘고고학’을 접미어로 갖게 되는 이유이다. 사실, 맥락에 관한 정보가 오히려 유물 자체보다 더 중요한바, 발굴에서부터 그 파악을 강조하는 것이 고고학의 상식이다. 고고학자를 보물 사냥꾼과 구별하는 요체가 바로 그것이다. 그래서 힘들고 지루하지만, 체계적인 발굴과정을 거치는 것이라 배우고 또 가르친다.


개인의 생애에서 사회문제로…

비단 조사과정에서 획득해야 하는 정보만으로 ‘고고학’의 이름이 부여되지는 않았다. 조사의 목적, 곧 답하고자 하는 질문이 고고학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생물고고학은 일차적으로 유해로 남은 개인이 무엇을 먹고 살았으며, 영양과 보건 상태는 어떠했으며, 어떤 병리학적 이력을 가지고 있으며, 어떤 원인에 의해 사망했는지 등을 밝히고자 한다. 다음으로 그런 측면들에서 나타나는 편차가 집단 수준에서, 어떻게 종횡의 사회적 분절(젠더, 신분, 직업 등)이나 사회경제적 변화(농경의 도입, 계층화, 도시의 등장 등)와 연결되는지를 살핀다(이 책의 6장과 7장). 영양, 보건 등의 불평등한 분포가 문제됨으로써, 결국 개인의 생물학적 생애나 정체성으로부터 사회문제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이는 줄곧 고고학의 관심사였다.


현실참여의 학문적 실천

이외에도 생물고고학이 많은 관심을 가져왔을 뿐만 아니라 그 규명에 강점을 가지는 문제는, 병리학적 이력이나 사망 원인에 관련된 사적·구조적 폭력 문제이다. 현재에도 그러하거니와, 폭력은 가정폭력에서부터 국가에 의해 자행되는 구조적 폭력까지 그 차원과 범위가 매우 포괄적이었다. 또한 문화적 기제로 내재하기도 한다. 학문의 실천 과정에서 비일비재하게 이를 목도하는 생물고고학자는 현실참여(engagement)를 요구받기도 하지만, 스스로도 적극적이다. 원저자 세 사람은 다른 글들에서도 이런 문제를 적극적으로 다루어왔다. 특히, 페레즈(Ventura Perez)는 실제로 국가폭력을 경험한 멕시코 이민자 2세대로서 해당 문제에 직접 관여하기도 하는 실천적인 학자이다. 

비단 폭력은 살아있는 사람에게만 자행되는 것은 아니다. 유해를 훼손하고, 전리품 삼아 전시하고, 수집하는 행위 또한 그러하다. 정당한 절차나 허락 없이 유해를 가져와 분석·소장하는 행위 역시 폭력이다(이 책의 9장). 유해 송환은 과거 자행된 그런 행위에 대한 반성이기도 하다(이 책의 2장). 해외에서 전사한 군인 등 자국민의 유해 송환에 열성적인 만큼, 타국의 유해도 돌려주는 것이 나름의 공평한 인도주의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개설서인 만큼 이 책의 10개 장은 앞서 살펴본 대로, 생물고고학의 대상, 주요 과제와 성과, 연구자가 견지해야 할 기풍 등에 관한 내용을 포괄적으로 담고 있다. 다만, 매뉴얼이 아닌 만큼 분석기법에 대한 복잡한 설명에 치중하기보다는 그 효용과 성과를 설명하여 관심을 유발하고 있다. 이 점이 오히려 비전공자나 일반 독자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게 하는 이 책의 장점이 될 듯하다.


김범철 충북대·고고학

충북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 교수. 서울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에서 학부와 석사과정을 마치고 미국 피츠버그대학교(University of Pittsburgh)에서 고고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고고 자료에 대한 공간 및 계량 분석, 취락 및 가구고고학, 한국 선사시대의 사회·경제적 진화에 대한 연구 등에 집중해왔으나 최근 기후변동, 문화유산 정책, 생물고고학 등으로 관심 분야를 넓히고 있다. 『쌀의 고고학』, 『가옥, 가족, 가구』, Rice and Socioeconomic Development in the Bronze Age, 『고고학을 위한 통계학』 등의 저서와 역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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