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지방대학 인문학 교육 및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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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지방대학 인문학 교육 및 연구’
  • 고현석 기자
  • 승인 2022.12.18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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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RF 이슈 리포트] 지방대학의 인문학 위기에 대한 고찰

 

우리나라 대학 위기의 가장 심각한 요인은 학령인구 감소로 인한 입학정원 미달이다. 따라서 외국인 유학생 유치에 대학의 사활을 건지는 이미 오래됐고, 이른바 돈이 안 되는 학과들은 통폐합 또는 폐과 절차를 밟고 있다. 이러한 위기 상황은 서울・수도권의 대학보다는 지방대학에서 두드러지고 있으며, 학문 분야 가운데는 취업에 취약한 인문학 분야가 가장 큰 타격을 입고 있다.

이에 한국연구재단은 지방대학이 맞닥뜨린 인문학 교육 및 연구의 위기를 구체적으로 진단하는 NRF 이슈 리포트 <지방대학의 인문학 위기에 대한 고찰 – 대구·경북과 광주·전남 지역 대학의 현황 및 일본의 사례를 통해 본 시사점>를 지난 15일 발간했다. 이 보고서는 두 개의 대상 지역을 선정하여 해당 지역 소재 4년제 대학교의 인문대학 운영현황과 교육 과정을 살펴봤다. 

보고서에서 지칭하는 지방대학이란 서울 및 경기지역 외의 비수도권에 소재하는 대학을 의미하는데, 지방대학이라고 해도 권역별 특성이 다르고 또 국립대학과 사립대학이 지니는 문제점도 다르다. 보고서에서는 예시로서 두 지역의 국립대와 사립대의 인문대학의 상황을 비교하여 문제에 접근한다. 우선 경상권에서 대구·경북 지역, 전라권에서 광주·전남 지역을 대상으로 지방대학의 인문학 교육 및 연구 상황이 얼마나 열악하고 또 위기를 겪고 있는지 고찰한다.

보고서는 우선 해당 지역 소재 대학들의 인문대학 운영 및 교육 현황을 살펴보고, 현재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 등에서 실시되는 인문학 지원사업의 실효성 및 문제점에 주목한다. 다음으로 우리와 비교적 유사한 교육 체계와 규모를 지닌 일본의 지방 인구소멸 및 대학의 위기, 특히 인문학 분야의 위기 상황을 살펴보고, 지자체와 대학의 대처 방안에 대한 검토를 통해 시사점을 도출하고 있다.

 

◇ 보고서가 도출한 결론은 다음과 같다.

첫째, 지방대학 인문학의 위기는 교육과 연구 모두에서 전방위적으로 나타나고 있음 

현재 지방의 많은 대학에서 인문대학은 단과대학으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하지 못하고, 학문 후속세대 양성은 물론, 학부의 전공 및 교양 교육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서울 및 수도권에서도 인문학 관련 유사한 현상이 나타나지만, 지방대의 경우는 학문의 존립 자체가 위협받고 있다. 

이러한 현실에서 수도권과 지방, 국립대와 사립대의 서열화는 점점 더 심각해지고 있다. 지방대학 중 거점 국립대 정도에서만 인문학 학과들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으며, 사립대는 나름의 전통과 규모를 갖춘 대학조차도 다른 단과대학과 통합되거나 폐지되고 있다. 교육도 연구도 불가능한 상황에서 지방대학에서 인문학 전공과 학문 후속세대의 소멸은 먼 미래의 일이 아니다.

둘째, 지방대학들이 시도하는 자구책은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음

이런 상황에서 살아남은 인문학 관련 학과들의 출구전략은 실무나 취업 중심의 학과로의 변화를 모색하거나, 타 전공과의 융합으로 나타나는데, 여기서도 다양한 문제가 발생한다. 취업에 적합한 학과명으로 바꾸거나 융합으로 교육 과정을 개편한다고 해서 취업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새로운 전공에 적합한 교원의 부재, 급조된 커리큘럼, 학과 정체성의 모호함으로 인해 제대로 된 교육이 어려우며, 결과적으로 단일 전공보다 취업은 더욱 힘들어진다. 학생 유치가 오히려 더욱 어려워지고, 결과적으로 입학 성적과 취업률이 낮아져서 다시 구조조정의 대상이 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현재 이뤄지고 있는 다양한 자구책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를 우선 점검해보아야 할 것이다.

셋째, 현재의 인문학 지원책으로는 이러한 복합적인 위기 상황을 극복하기 어려움 

인문학 연구와 교육의 위기 상황에 대해 교육부와 대학 등 여러 주체가 공감대를 형성하면서다양한 지원사업이 시도되었다. 대표적으로 세계적 연구소를 육성하여 인문학 전공자들에게 안정된 연구환경을 보장하고자 했던 인문한국지원사업(HK), 인문대 학부생의 역량강화사업(CORE) 등이 그것이다. 

이 사업들은 실행과정에서 현실적인 문제에 직면했음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 하지만 인문한국사업의 경우 최근 2년간 신규과제를 선정하지 않고 있으며, CORE 사업도 3년의 지원으로 끝이 나고, 대학혁신지원사업 등에서 약간의 후속 지원만이 이뤄지고 있다. 

현행 R&D 지원사업과 인문학 지원은 그 방향을 달리해야만 한다. 인문학 지원은 그야말로 현재 고사 위기에 직면한 학문의 불씨를 어떻게 보존하고 살려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부터 시작하여, 본질적인 문제 해결을 위한 새로운 차원의 접근이 필요하다.

넷째, 우리보다 먼저 유사한 위기에 직면했던 일본의 노력이 보여주는 시사점

일본은 인문사회계열의 조직 개편과 구조조정 움직임이 일찍부터 지역대학을 중심으로 이루어졌으며 2015년에는 정부의 시책으로 인문사회과학계열 학과를 폐지 또는 전환하고자 하는 인문학 교육의 위기를 맞았다. 일본의 지역대학 대다수가 교육과정개편에 나름의 방식으로 동참하면서 위기를 타개하고자 하는 의미 있는 시도들도 보였다. 

그 시도 중에는 선명한 목적성을 가지고 추진하는 지역대학의 글로벌화 전략이 성공을 거둔 사례나 지역사회와의 연계를 통해 지역대학의 지역 공헌과 인문사회계열의 성장, 지역의 활성화를 동시에 추진하여 성과를 보여준 사례들이 있다. 나아가 학내의 다른 분야 연구자와의 협업을 통한 융복합연구를 지향하고 또 대학 차원에서 그러한 연구를 지원해 주는 모델은 아젠다를 중심으로 수직 구조화되어 있는 우리나라의 연구지원사업에도 하나의 시사점을 제공해 줄 수 있다. 

인문학 교육 및 연구의 위기는 비단 우리나라나 일본에 국한된 문제는 아니다. 미국이나 유럽의 각국에서도 지역사회와 지역대학을 연계하여 대학과 학문의 위기에 대처하고자 하는 움직임을 보인다. 일본뿐만 아니라 다양한 해외의 사례를 분석하여 우리 지역대학의 활로를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할 것이다.

다섯째, 지방대학 인문학 분야 위기 극복을 위한 전방위적인 노력이 필요한 이유

지방대학의 인문학 위기는 지방만의 문제나 해당 학문 분야만의 위기가 아니다. 지방대학의 위기는 해당 지역사회의 침체를 불러와서 지역의 소멸을 가속하고, 결국 국가의 균형 잡힌 발전을 저해하는 위험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 

지방대학 인문학의 위기는 현재 징후가 아니라 과정이자 현상으로, 적극적인 개입을 통한 교육 및 연구 인력의 지원과 보존이 시급하다. 그렇지 않다면 국가발전의 정신적 토대가 되는 중요한 기초학문인 인문학의 위기가 우리의 미래 사회 발전에 심각한 위험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지금 국가와 지자체, 대학이 지방대학의 인문학 위기를 심각하고 진지하게 살펴보고, 이를 살리기 위한 전방위적인 노력이 필요한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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