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수학의 기초를 세운 추상적 건축물…엄밀한 체계와 단순한 증명 방식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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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수학의 기초를 세운 추상적 건축물…엄밀한 체계와 단순한 증명 방식의 미학
  • 이명아 기자
  • 승인 2022.12.12 01: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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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클리드 원론 1&2 | 유클리드 원저 | 박병하 옮김 | 아카넷 | 각 420쪽, 412쪽

 

‘유클리드 원론’은 기원전 300년경에 고대 그리스에서 탄생한 수학 고전이다. 그 탄생 이전까지 나온 기하학, 수론, 대수, 해석학의 기초 문제들을 하나의 체계 안에 담아내어 고대 수학의 최고봉으로 일컬어진다. 고대 바빌로니아, 이집트, 그리스 등 그 이전의 수학을 통합한 이 저술은 탄생 이래 20세기까지 2,300년 동안 인류의 지성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인류 역사상 성서를 제외하고 가장 이른 시기에 인쇄되고 어떤 세속의 저서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판본이 있다는 사실이 그것을 반증한다. 

이 책은 국내 최초로 희랍어 원전을 완역한 것이다. 『원론』은 모든 의심을 제거하고 사실을 종합하여 체계화하는 단순하고 엄밀한 사유의 방식이 제시되어 오랜 세월 기초 수학 교재이자 인류 지성의 동반자로서 함께했다. 따라서 수학이 탄생한 시점에서의 언어로 수학 현상을 정의하고 설명하려는 의도로 가급적 원문에 가깝게 번역되었다. 이는 현대의 시각으로 고전을 보는 게 아니라 고전의 시각으로 현대를 보기 위한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원론』은 도형 및 수와 관련된 보편적이고 추상적인 개념을 창의적으로 제시하는 단계, 현상을 추상하여 명료하게 문제로 설정하는 단계, 설정된 문제를 증명하는 단계, 즉 가능한 모든 의심을 제거하는 과정, 그리고 그 사실들을 종합하여 하나의 이론으로 체계를 잡는 과정이 명징하게 제시되어 있다. 이 모든 것이 어떠한 선행 지식 없이 전개된다는 사실도 중요하다. 따라서 『원론』은 기초 수학 교재이기만 한 게 아니라 발견과 논증과 종합이라는 사유의 틀을 배우는 교재였다. 플라톤의 아카데미아(학당)의 입구에 쓰였다는 “기하학을 모르는 자는 들어오지 말라”라는 문구는 그런 의미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리하여 『원론』은 오랜 세월 인류의 위대한 지성과 함께했다. 그래서 중세 이슬람, 근세 유럽을 거치며 문명의 중심이 바뀔 때마다 가장 먼저 번역되고 또다시 번역되어 주석이 붙고 새롭게 해석되면서 인류의 이성을 개발하는 밑거름이었으며 이것은 뉴턴의 『프린키피아』, 스피노자의 『에티카』 등을 포함한 과학·철학의 고전, 미국의 독립 선언문과 헌법 체계에도 그 흔적이 남아 있다.

『원론』은 일체의 사족 없이 정의, 명제, 증명이라는 엄격한 형식을 유지하며 주제별로 13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다루는 주제는 기초 평면 도형, 입체 도형의 존재성과 상호 관계, 비례와 닮음의 이론적 기초와 적용, 자연수 세계의 구성, 공약 불가능한 크기들의 분류와 상호 관계, 구 안에 내접한 정다면체의 성격이다. 이 모든 내용은 ‘점은 부분을 갖지 않는 것이다’라는 정의에서 시작해서 ‘정다면체는 다섯 개뿐이다’라는 따름 명제로 끝나는데, 그 과정에서 약 500여 개의 명제, 보조 명제, 따름 명제들로 명료하게 문제가 설정되고 그 각각은 엄격하게 증명된다. 각 권의 명제는 적게는 14개, 많게는 115개로 이루어져 있고 새로운 주제가 시작되면 그 주제를 발전시키기 위한 정의가 등장하고 이어서 그 정의와 연관된 명제들이 잇따르는 식이다. 고대 수학의 기초를 하나의 아름다운 추상적 건축물로 세운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추상 체계의 아름다움 외에 『원론』의 또 다른 아름다움은 증명 방식에 있다. 그 모든 명제들이 고작 다섯 개의 공리에 기대서 논리적으로만 증명된다는 사실이 그것이다. 가장 단순한 사실 몇 개로부터 누구도 의심하지 않을 것 같은 기초적인 수학적 현상을 ‘증명’하고 그렇게 증명된 수학적 사실들이 서로 얼개를 만들면서 더 고차원의 현상을 설명하는 도구가 된다. 이 과정에서 정의와 공준의 합의를 제외한 어떠한 관찰과 경험과 권위와 타협은 끼어들지 않는다. 즉 『원론』은 방대한 연역 체계이다. 따라서 올바로 사유를 전개하는 하나의 모범이기도 하다.

“아주 어려운 것을 증명하기 위해 기하학자가 흔히 사용하는 아주 단순하고 쉬운 근거들의 긴 연쇄는 나에게 다음과 같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즉, 인간이 인식할 수 있는 모든 것은 그와 같은 방식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고, 참이 아닌 어떤 것도 참으로 간주하지 말며, 어떤 것을 다른 것에서 연역할 때 항상 필요한 순서를 지키기만 하면,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결국 도달할 수 있고 또 아무리 숨겨져 있어도 결국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 르네 데카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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