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테 시선》 번역을 마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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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테 시선》 번역을 마치며
  • 임우영 한국외국어대학교·독문학
  • 승인 2022.12.11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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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자 에필로그_ 『괴테 시선 I~VIII』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임우영 옮김, 지식을만드는지식, 948쪽, 2022.11)

 

괴테가 일곱 살 때 새해를 맞아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를 위해 쓴 <1757년이 즐겁게 밝아 올 때…>부터 1832년 3월 죽기 얼마 전에 쓴 <시민의 의무>에 이르기까지 우리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괴테의 모든 시들을 《괴테 시선 1∽8》에 소개했다. 이미 《괴테 시선 1》의 해설에서 언급했다시피 괴테의 시는 시인 자신이 체험한 현실과 생각을 가슴 속 깊이 녹여서 일기나 자서전을 쓰듯 표현한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생각하는 술술 외워지는 주옥과 같은 시들은 드물다. 그러나 《괴테 시선》은 괴테의 삶을 따라가면서 젊은 시절의 열정이 폭발했던 ‘질풍노도 시대’의 시들(《괴테 시선 1》), 바이마르로 가서 슈타인 부인과 교류하면서 한층 성숙해진 시인의 모습(《괴테 시선 2》), 이탈리아 여행에서 느낀 감격과 도취를 에로틱하게 그려낸 《로마 비가》와 두 번째 이탈리아 여행에서 느낀 바를 고대의 에피그람 형식으로 쓴 《베니스의 에피그람》(《괴테 시선 3》), 자신과 자신의 작품에 대해 비난하는 주변 사람들에게 실러와 함께 퍼붓는 가시 돋친 이행시 모음집 《크세니엔》(《괴테 시선 4》), 시인으로서 완숙기에 접어들어 독일 고전주의를 화려하게 장식했던 시기에 쓴 시들(《괴테 시선 5》), 나폴레옹 전쟁 시기라는 고난의 시대에 정신적으로 저 멀리 14세기의 페르시아 시인 하피즈가 살던 페르시아로 달아나 서방의 시인이 쓰는 동방의 시들을 모은 《서동 시집》(《괴테 시선 6》), 그러고 나서 마지막 순간까지 후세들에게 유언처럼 남겼던 인생의 깊은 의미를 담은 시들(《괴테 시선 7》), 마지막으로 괴테가 죽은 후에야 정리되었던 격언 모음집인 《온순한 크세니엔》(《괴테 시선 8》)에 이르기까지 괴테가 쓴 시들 가운데 괴테의 삶과 사상이 담겨 있는 의미 있는 시들을 모두 소개하고 있다.

 

                  Goethe (1749~1832) in der Campagna von Johann Heinrich Wilhelm Tischbein (1787)
                  Goethe (1749~1832) in der Campagna von Johann Heinrich Wilhelm Tischbein (1787)

괴테의 시를 읽으면 이것이 시인지, 아니면 운문으로 쓴 고백록이나 일기인지 구분할 수 없을 때가 종종 있다. 이런 현상은 괴테가 시인으로서 그 소재를 인간과 자연, 신과 세계, 예술과 자연을 소재로 하여 자신이 그 순간순간 느끼는 감정을 시의 운율로 녹여냈기 때문에 나타난다. 이때 괴테는 시에 비유와 은유 및 상징을 구사하는데, 괴테가 그 시를 쓰던 시대적 배경뿐만 아니라 괴테의 그 당시 상황과 심정 및 생각에 대한 배경을 모르면 그 시의 의미를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따른다. 그래서 《괴테 시선》에서는 각 시에 대한 이런 정보들을 많이 제공해서 독자들이 괴테의 시를 읽은 데 도움을 주려고 했다. 물론 이런 정보 없이도 독자들은 시를 읽고 자기 나름대로 의미를 도출해낼 수 있다. 그러나 괴테 자신도 자신의 시를 독자들에게 더 잘 이해시키기 위한 해설을 쓸 정도로 시인의 의도를 독자들에게 제대로 이해시키고 싶어 했다. 그래서 《괴테 시선 1》에서도 미리 강조했다시피 괴테의 시는 한 번 읽어서는 그 의미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이때 해설을 읽어 보고 다시 그 시를 읽으면 시인의 의도를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괴테도 독자들에게 자신의 작품을 한 번만 읽고 평가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었다. 이런 이유에서 《괴테 시선》에서는 각각의 시기마다 괴테의 삶과 문학적 특징을 미리 소개했고, 필요한 경우 각 시에 간단한 주석과 해설을 달아두었으며, 마지막에는 그 책에 수록된 시들 전체에 대한 해설도 덧붙였다.

《괴테 시선》에는 많은 시가 수록되어 있지만, 괴테가 쓴 모든 시는 아니다. 괴테가 쓴 모든 시를 시대별 또는 시의 형태별로 모은 전집을 원전으로 삼아 번역하기는 했으나, 괴테가 자신의 전집이 나올 때마다 기존의 시를 수정한 것이 많아서, 같은 시에 단어 한두 개 수정한 것을 다시 번역할 필요는 없어 해설이나 주석에 그 사실을 간단하게 설명했다. 또한 괴테는 많은 사람에게 시를 써주었는데, 그런 시들 가운데 그래도 의미가 있는 시만 “인물시” 편에 소개했다. 그래도 《괴테 시선》에서 《베니스 에피그람》과 에피그람 유고들 및 기타 에피그람, 《크세니엔》이나 《온순한 크세니엔》은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완전한 형태로 소개되었다. 따라서 《괴테 시선》은 괴테가 쓴 모든 시를 담은 ‘괴테 시 전집’은 아니지만, 괴테가 쓴 시의 70∽80퍼센트는 수록되어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괴테 시선》을 작업하면서 개인적으로 마음에 깊이 새겨지는 시들도 많았다. 여기서 일일이 그 시들을 언급하지는 못하지만, 젊은 학생들과 수업 시간에 읽으면서 가장 여운이 남았던 시가 《괴테 시선 2》에 들어 있는 <신적인 것(das Göttliche)>이라는 시다. 괴테가 34살 때인 1783년에 쓴 시인데, “고귀해져라 인간이여,/ 도움 많이 베풀고 선하게 살아라!/ 그것만이/ 인간을 우리가 알고 있는/ 다른 모든 존재들과/ 구분해주기 때문에”라는 말로 시작해서 “고귀한 인간이여/ 도움 많이 베풀고 선하게 살아라!/ 지지치 않고 수행해라/ 유용한 일, 옳은 일을,/ 그래서 예감했던 저 존재들의/ 모범을 우리에게 보여주어라!”하며 끝난다. 괴테가 말하는 “신적인 것”이란 ‘신’이라는 ‘형이상학적 존재’를 인간의 인식력으로는 완전히 알 수 없지만, 오로지 선한 행동을 통해서 보다 숭고한 존재인 ‘신’을 “예감”할 수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런 생각은 괴테 만년의 작품이나 사상에까지 이어져, 그 엄청나고 거대한 괴테 문학을 관통하고 있다. 이런 메시지를 독자에게 전달하려는 것이 괴테 시의 본질이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괴테의 시는 읽고 또 읽으면서 의미를 여러 번 되새겨봐야 독자 스스로 그 시의 의미를 도출해내게 된다. 출구가 보이지 않는 답답한 현실을 살아가야 하는 현대인도 한 번쯤 자신의 삶을 괴테의 이런 시구로 되돌아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괴테 시선》을 작업하면서 느낄 수 있었던 것은 괴테가 끊임없이 우리의 시야를 열라고 요구한다는 사실이다. 괴테 자신도 외국 문화에 대해 개방적이었고 이해하려는 자세를 취했다. 그래서 괴테는 “세계 시민” 의식, “세계 문학”에 대한 이해, 이를 위한 “교양”을 강조했다. 괴테 자신도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문학뿐만 아니라, 페르시아나 인도 및 중국의 문학까지도 공부해서 자신의 문학에 녹여 시를 썼다. 그리고 이런 요구는 모두 미래의 세대를 위한 것이기도 했다. 미래 세대는 문화의 장벽을 넘어 서로 교류하고 이해함으로써 형제처럼 평화롭게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괴테는 《온순한 크세니엔》에서 미래 세대에 대해 많이 말한다. 즉, 과거(“어제”)와 현재(“오늘”) 그리고 미래(“내일”)는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연결되어 있고, 그래서 역사는 과거에 한번 ‘일어났던 일’이 아니라, 똑같은 일이 현재도 ‘일어나고 있으며’ 미래에 ‘일어날’ 일이라고 이해했다. 그래서 괴테가 자신의 작품, 특히 시에서 후세에 남기려는 메시지는 ‘미래를 위한 희망을 가지고, 과거의 일을 거울삼아, 현재를 열심히 살아가라’라고 요약할 수 있다. 《온순한 크세니엔》에서는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대에게 어제가 분명하고 또 열려 있다면/ 그대는 오늘도 힘차고 자유롭게 활동하리라./ 그래서 내일을 기대할 수도 있으리라./ 똑같이 행복한 내일이 될 것이라고.”(1179∽1182행)

《괴테 시선》을 번역하면서 원문 시 텍스트의 운율을 살려낼 수는 없어, 우리말 운율이라도 살리기 위해 글자 수를 맞춰보려고 했지만, 우리말과 독일어의 차이 때문에 쉽지는 않았다. 그러나 가장 주의를 기울였던 점은 원문 텍스트가 담고 있는 의미를 우리말로 정확하게 밝히는 것이었다. 그래서 의역보다는 차라리 직역에 가깝게 번역했다. 그래야 괴테가 하고자 하는 뜻을 제대로 전달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많은 부분에서 잘못 이해한 부분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이런 부분은 앞으로 수정해 나갈 것이며, 더 훌륭한 번역자가 새롭게 괴테의 시를 번역하면서 이런 오류들을 바로잡아 주게 되길 바란다. 그래도 졸역 《괴테 시선 1∽8》이 우리나라에서 괴테와 괴테 문학을 이해하는 데 조그마한 보탬이 되었으면 한다.

 

임우영 한국외국어대학교·독문학

한국외국어대학교 독일어과를 졸업하고 독일 뮌스터대학에서 독문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 독일어과 교수로 있으며, 한국괴테학회 회장을 지냈다.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기획조정처장과 사이버한국외국어대학교 학장을 역임했다. 저서로 ≪대학생을 위한 독일어 1, 2≫(공저), ≪서양문학의 이해≫(공저), ≪세계문학의 기원≫(공저) 등이 있으며, 역서로는 ≪크세니엔≫, ≪빌헬름 마이스터의 연극적 사명≫, ≪괴테 시선 1∼8≫ 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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