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금…성공한 근대화, 실패한 근대화
상태바
해금…성공한 근대화, 실패한 근대화
  • 김석균 한서대학교·국제해양법
  • 승인 2022.12.11 14:40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저자에게 듣는다_ 『해금: 성공한 근대화, 실패한 근대화』 (김석균 지음, 예미, 308쪽, 2022.11)

 

역사를 바라보고 해석하는 관점은 각자의 연구 분야와 시대적 배경에 따라 다를 것이다. 나는 국제해양법을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근대 해양의 역사를 통해 서양 주도의 근대 역사와 오늘날도 계속되고 있는 서양 우위의 시대에 대한 역사적 기원을 찾고자 하였다. 
  
오늘날 G2로 부상한 중국과 일본,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이 국제사회의 중심축의 하나를 이루고 있지만, 우리는 서양에서 태동하거나 발전한 제도와 규범, 과학, 기술, 학문, 언어가 표준이고 노멀인 시대에 살고 있다.  

중세를 거치면서 과학, 기술, 문명, 부에서 뒤져 있던 서양이 근대에 들어와 동양에 역전하고 이후 세계사를 주도할 수 있던 역사적 기원을 나는 대항해시대 이후 서양의 대양진출에서 찾고 있다. 세계사적으로 서양의 대양진출은 유럽이 중세의 어둠에서 벗어나 근세로 나아가게 한 시작이었고, 서양이 근대 세계사를 주도하는 출발점이었다. 

대대적인 해양진출은 유럽의 과학·기술·경제의 폭발적 성장을 이끌었고 자본주의의 발전과 산업혁명을 낳았다. 이들이 전파한 기술 문명과 법·제도·문화·사상·언어·의복·음식은 전 세계로 퍼져 나가며 근대 세계의 표준이 되었다. 세계인들은 오늘날 많은 부분 대항해시대 이래 유럽인들이 남긴 사회, 경제적, 문화적 유산 속에서 살고 있다.  
   
근세 유럽이 전 세계 대양을 누비고 새로운 대륙을 개척하고 있는 동안 중화질서의 동양은 해금령(海禁令)으로 굳게 바다에 빗장을 치고 있었다. 해금은 ‘下海通番之禁’(하해통번지금), 즉 ‘바다로 나가 오랑캐와 교통하는 것을 금지한다’는 말에서 유래했다. 말 그대로 바다로 진출하는 것을 금지하는 것이다. 

해금은 명·청 시대에 해외에 나가 무역을 하는 것을 금지하고, 외국 상선의 입출항을 제한하는 반무역정책이자 해양진출을 억제하는 해양통제정책이었다. 또한 외국에 문호를 닫고 자국민에게는 해외진출을 금지하는 쇄국정책이었다. 중화체제 속에서 ‘소중화’로 자처했던 조선과 일본은 해금령의 강력한 실행자였다. 

해금이 중국과 조선, 일본 등 동아시아 국가의 근세 역사에 끼친 영향과 내포하는 의미는 해상무역을 넘어 정치, 안보, 사회, 문화, 과학기술 등 사회의 모든 영역에 걸친 전방위적인 것이었다. 근대 유럽인들은 ‘해양은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는 ‘자유해’와 ‘바다를 개척’하는 ‘개해’(開海) 사상을 바탕으로 대양 개척에 나섰다. 이들이 범선과 대포, 총기를 앞세우고 전 세계 해양을 누비며 무역항로를 개척하고 식민지를 정복하면서 단절되어 있던 대륙들은 해양을 통해 하나로 연결되고 있었다. 

이에 비해 아시아는 활발했던 해상활동을 뒤로하고 바다에 빗장을 치며 해양으로부터 멀어지고 있었다. 근대 서양은 ‘개해’의 역사였고, 동양은 ‘해금’의 역사였다. 그 결과 고대의 찬란한 해양문화를 가진 중국은 폐쇄적 대륙국가로 전락했다. 세계의 중심을 자처했던 중국의 앞선 과학, 기술, 문명은 쇠퇴하고, 성리학적 명분론과 중화주의의 자만에 갇힌 폐쇄적 사회로 전락했다. 

1400년부터 1800년까지 전 세계 경제 생산의 80퍼센트를 차지했고, 18세기만 해도 전 세계 부의 절반을 차지하던 동양은 가난한 나라로 전락하고 그 자리를 서양에 내어주는 ‘부의 대역전’이 일어났다. 

이후 서양의 위력 앞에서 동양 삼국은 문호를 개방하고 근대화를 추진했지만 일본은 근대화에 성공하여 동양의 패자가 되었고, 청과 조선은 실패하여 반식민지나 식민지의 역사를 겪게 되었다. 일본은 산업혁명, 자본주의, 민주적 정치체제라는 세계사의 큰 흐름을 정확히 인식하고 실용의 바탕 위에서 과감한 변혁에 나섰기 때문이었다. 일본의 근대화 성공의 여러 요인 중에서 서구의 변화를 정확히 인식한 ‘지사’라 불렸던 개혁 사무라이 집단, 더 나아가 메이지 유신의 주역들의 냉철한 현실 인식과 과감한 변혁의 추진이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꼽을 수 있다.

오늘날 중국이 공세적인 해양진출을 꾀하고 해양력을 증강하는 것은 세계의 중심이라 자처했던 중국이 아편전쟁이후 공산 중국이 수립될 때까지 서양의 함대와 총포에 굴복하고 침탈을 당했던 ‘치욕의 한 세기’(the Century of Humiliation)에 대한 역사적 교훈에서 비롯된다. 중국 지도부는 치욕의 근대사를 반복하지 않고, 글로벌 파워로서 미국과 경쟁하기 위해서는 해양력이 필수적이라는 점을 인식하고 대대적으로 해양력을 증강해오고 있다. 

오늘날 해양의 중요성과 해양진출은 해양의 물리적 이용을 넘어선 의미를 가지고 있다. 나는 4차 산업혁명의 메가트렌드 속에서 미래를 선도하는 과감한 도전과 혁신, 개방적이고 창의적인 자세가 해양진출의 현대사적 의미라 생각한다. 

우리는 쓰라린 근대의 역사를 극복하고 선진국에 진입했지만, 오늘날 우리가 직면해 있는 세계사적 환경은 근대화의 물결이 밀려오던 그 시대 만큼이나 많은 도전과 위험에 직면해 있다. 우리가 이룬 성취에 자만하거나 세계사의 큰 흐름을 외면하고 뒤처지면 우리가 지금껏 쌓아 올린 성취도 무너질 수 있다. 

세계사의 큰 흐름을 선도하려는 노력은 뒷전인 채, 고루한 가치와 편협한 이익, 진영에 얽매여 극심한 대립과 갈등을 겪고 있는 우리 사회를 ‘해금’과 ‘개해’라는 역사적 거울 통해 비쳐 봐야 할 때다. 


김석균 한서대학교·국제해양법

한서대학교 해양경찰학과 교수. 동아시아 해양문제 전문가로 국제해양법학자이다. 행정고시로 공직에 입문한 후 법제처를 거쳐 해양경찰청장을 역임했다. 퇴임 이후 동아시아 해양문제에 대한 연구 활동을 계속하며, 저명 국제학술지에 다수의 논문을 발표하고, 연구서를 출간했다. 대표적 저서로 ‘Coast Guards and International Maritime Law Enforcement’(2020, Cambridge Scholars Publishing), ‘Global Maritime Safety & Security Issues and East Asia’(2018, Brill) 등이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김춘대 2022-12-12 14:27:49
동서양의 문명 등 흥망성쇠를 이야기할 때
각자의 편린으로 끝을 못맺을 때가 있다.

해양전문가의 해박함이 응축된 도서 '해금'은
해양사의 난해한 퍼즐을 간명하게 맞출 '해법서'다.

또한
미래의 발전을 꿈꾸는 많은 사람들에게는
세계 흐름에 대한 생각과 길을 알려 줄 '지침서'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