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미디어가 될 수 있고 저널리즘이 신뢰받지 못하는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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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미디어가 될 수 있고 저널리즘이 신뢰받지 못하는 시대
  • 이명아 기자
  • 승인 2022.12.05 11: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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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디어의 역사: 연기 신호에서 SNS까지, 오늘까지의 매체와 그 미래 | 자크 아탈리 지음 | 전경훈 옮김 | 책과함께 | 500쪽

 

20세기 후반에 등장한 인터넷은 미디어 환경을 완전히 바꾸어놓았다. 다양한 웹사이트와 소셜네트워크가 등장하면서 이제는 각 개인이 스스로 미디어가 되는 시대가 열렸다. 정보는 넘쳐나고 생활은 편리해졌지만, 그와 함께 가짜뉴스와 루머가 쏟아지고, 대중은 스스로 만든 미디어 안에 잠식되기 십상이다. 

이 책은 전방위 지식인 자크 아탈리가 진단하는 미디어의 현재와 미래를 담았다. 정치·경제·문화·역사를 아우르며 독창적으로 역사를 해석하고 미래 비전을 제시해온 아탈리가 이번에는 난맥상인 오늘날의 미디어 환경을 진단하고 돌파구를 찾기 위해 길고도 넓은 미디어의 역사를 훑는다. 이 책은 ‘미디어의 역사’라는 제목이 붙어 있지만 아탈리의 작업이 늘 그러했듯이 단지 과거를 규명하거나 재현하는 데 머무르지 않는다. 오히려 과거를 통해 현재를 분석하고 미래를 예견하면서 올바른 미디어 환경 구축을 위한 실천적 지침들을 제시하는 데까지 나아간다.

태초에 인간은 무엇이 자신을 위협하는지 알 필요가 있었다. 또한 무엇이 다른 이들에게 해가 되는지, 혹은 득이 되는지를 알아야 했다. 정보의 전달과 소통은 인간의 기본 욕망이자 실존 조건이었다. 이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기술이 필요했다. 인류는 선사시대부터 그림을 그리고, 조각을 새기고, 말을 하고, 마침내 문자를 개발했다. 이를 바탕으로 문명을 이루고 국가를 조직했다. 문자를 이용한 정보의 생산과 전달은 오랜 시간 권력자들의 지배와 통제 수단이었다. 또한 빠르고 정확한 정보 습득은 이윤 확보에 필수 조건이었으므로 상인들은 스스로 통신망을 형성하고 정보를 유통시켰다. 근대 초기에 활판인쇄술이 등장하면서 정보의 대량 유통이 가능해지자, 상인들은 정기적인 소식지를 만들어 판매하기 시작했다. 정보 자체가 상품이 되어 거래되는 시장이 형성되자, 이를 바탕으로 진정한 의미의 신문이 탄생했다.

국민국가가 태동하면서 국가는 언론을 통제하고 정부의 선전기관으로 활용했으며, 자본은 언론을 경영하면서 수익을 얻었고, 정보의 수동적 수용자에 머물던 대중은 언론이 제공하는 정보의 소비자이자 언론을 통한 여론 형성의 주체자로 등장한다. 이러한 역동적 변화 속에서 절대왕정이 무너지고 시민혁명을 거쳐 근대 민주정이 탄생했고, 사회주의 혁명이 발발하기까지 언론의 정치적·사회적 영향력은 더욱 증대되었다.

아탈리는 기원전 3만 년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미디어의 긴 역사를 구체적인 데이터를 가지고 폭넓게 살펴본다. 말과 노래의 등장으로 시작된 미디어의 역사는 소문과 연기,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과 소식을 외치는 사람, 시인과 서기, 행상과 우편, 발로 걸어다니던 사람과 말을 타고 다니는 사람, 유럽의 소식지, 벽보, 뉴스, 신문, 통신사, 잡지, 광고, 사진, 전화, 라디오, 영화, 만화, 텔레비전, 인터넷, 소셜네트워크, 온라인 마켓, 소셜 그래프 등의 등장으로 이어졌다. 오늘날 가장 중요한 매체가 된 인터넷 또한 언젠가 다른 기술과 다른 형태의 미디어에 추월당할 것이다. 과연 미래의 미디어는 어떠할 것인가?

20세기 후반에 등장한 인터넷은 미디어 환경을 완전히 바꾸어놓았다. 인터넷을 기반으로 정보의 플랫폼 역할을 하는 다양한 웹사이트와 소셜네트워크가 등장하면서 이제는 각 개인이 스스로 미디어가 되는 시대가 열렸다. 개인에게 그 어느 때보다 큰 표현의 자유와 기회가 주어진 셈이다. 아탈리를 따라가다 보면 이러한 자유 역시 긴 역사의 산물임을 알 수 있다.

오늘날 고도화된 자본주의가 세계화의 흐름과 맞물리면서 미디어에 대한 국가의 통제는 거의 불가능해진 반면, 디지털 기술을 독점하는 거대 기업들은 세계를 아우르며 미디어를 장악해가고 있다. GAFA(구글, 애플, 페이스북, 아마존)으로 대변되는 거대 기업들은 알고리즘을 이용하여 개인 정보를 전용하고, 정보 검색은 물론 세계 광고 시장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며 기술적 독재에 가까운 지배적 지위를 남용하고 있다. 정보는 넘쳐나고 생활은 편리해졌지만, 한편으로 정보의 홍수 속에서 가짜뉴스가 넘쳐나고, 진실과 허위를 가려내기 어려운 상황에서 대중은 스스로가 만든 미디어 안에, 자기만의 세계에 잠식되기 십상이다.

아탈리는 이 같은 상황이 지속된다면 결국 인간 개인의 실존마저 위협받게 될 것이라고 우려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방대한 미디어의 역사를 훑고 현재를 진단한 아탈리는 과거에서 길어 올린 변화의 법칙을 바탕으로 미디어의 미래를 전망한다. 인터넷을 비롯한 기존 미디어의 해체와 새로운 미디어의 탄생, 심화되는 인간의 파편화, 고도 감시에서 자율 감시로의 이행, 의식과 의식의 직접적 연결을 가능케 하는 기술의 발전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미래의 미디어가 의미를 가지려면 총체적인 개혁이 필요하다고 말하며 아탈리는 실천적 지침을 제시한다.

먼저 기술을 독점하여 미디어를 장악한 기업의 지위를 국가와 대중이 견제해야 한다. 국가에서는 법률과 제도를 통해 초국적 거대 기업의 독점적 지위를 제한하고 개인정보 보호를 강화해야 하며, 대중은 교육을 통해 비판적 사고 능력을 함양하여 미디어를 주체적으로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 오늘날 저널리즘은 불신과 증오의 대상이 되었고 저널리스트는 사라질지도 모르는 기로에 놓여 있지만, 이런 때일수록 민주주의를 지키고 자유와 평등을 옹호하는 진정한 저널리즘의 보존과 저널리스트 양성이 더욱 중요하다. 아탈리는 이러한 개혁이 결국 거대 플랫폼을 해체하는 전 지구적 싸움이 될 수밖에 없다고 말하며, 이것이 실행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체념의 목소리도 내비친다. 하지만 위기가 심각한 만큼 실천의 필요성은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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